어디로 갈가?
앞에 놓인 길은 두 갈래
선택은 내 몫이다
어디로 가도 길이지만
결과는 같을 수 없다
미리 알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예 주저앉을 수도 없다
그리고 두 갈래를 하나로
꼴 수도 없는 일이다
어쩜 혹독한 시련이다
선택은 오직 하나
그 장본인은 바로 나다
비우지 못한 욕심이다
나무는 따로 선택이 없다
평생 추구 하나에 충성이다
초석처럼 견고한 믿음
선택이 없는 것이 선택이다
명과 암은 동시적이지만
밝은 길은 오직 한 갈래이다
인생 다역
사는 자체가 예술이다
언제 어디서나 체현된다
“안녕하세요?”
직장 동료들과의 아침인사다
그냥 스치면 서운하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그냥 스칠 수 없다
하다 못헤“감사합니다”
응해주는 게 상식이다
진정에서든 체면에서든
나에게 주어진 역이다
나는 엄마의 아들이고
안해의 남편이고
아들의 아빠이고
손군의 할아버지이고
녀동생의 오빠이고
상사의 부하이고
직장의 동료이고
학생의 선생님이고
......
감당하는 역마다 각이하다
어느 한 역도 소홀할 수 없다
어느 한 장면도 대충 메울 수 없다
내가 해야 할 바는 따로 주어진다
웃어야 할 때 울 수 없고
울어야 할 때 웃을 수도 없다
언어는 신분에 어울려야 하고
행위는 분위기에 따라야 하고
역할은 맡은 바에 준해야 한다
하루의 막이 열리면
하루의 역으로 석양을 맞고
새해가 시작되면
새로운 역으로 한해를 마무리고
10년20년30년 세월 따라
때때로 바뀌는 역으로 살고 지고
사는 자체가 다채롭다
다채롭지 않으면 인생 아닐만큼
사는 자체가 의미이다
무의미란 존재할 수 없을만큼
역마다 다 잘 할 수는 없겠지만
한두개는 뾰족해야 보람 아니랴
어쩜 하나만이라도 출중하다면
인생에 미안하진 않다고 자위한다
책
명상하는 고요한 호수
외로울 땐 대화 상대이고
괴로울 땐 한을 푸는 천사
언제 어디서나 편한 지기
정갈한 삶의 거울이다
궁금한 것 없는 척척박사
잠긴 세상 여는 열쇠이고
마음에 길을 뚫은 굴착기
어둠 속의 등불이며
갈림길의 지시등이다
고금중외를 넘나들며
무형의 나래 선사하는 너는
내 성장에 절실한 영양소
오던 길 가는 길이 보이고
가야 할 길 또한 확실하다
바람이야 불든 말든
이미 떠났으면 화살이다
과녁을 겨냥한 직진 행로
일자로 쭉 달릴 수밖에
또 다른 지름길은 없다
자신이 할 따름이라 한다
넘어졌다 일어서지 않으면
그 자리는 종점일 수 밖에
또 다른 생존은 불가능하다
흘끔흘끔 남의 눈치 보거나
바람 탓해봐야 보탬이 되랴
떠난 길이기에 가는 것이다
가지 않을 수 없어 가는 것이다
가야 하는 길에서 돌아선다면
그 길은 다시 차례지지 않는다
오직 한결같이 가도 가도 가도
여한이 남는 처절한 외길이다
나이
고래희를 눈 앞에 두니
세월이 고속렬차로 변했나봐
하루가 삼추는 어디 가고
하루가 분초같이 달리냐
먼 것이 먼 것 아니더라
닿고 보면 지척이더라
모든 험난도 뚫고나면
오히려 그리움이 되듯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
욕심이 먼저 질러가서
되는 일 따로 없더라
주어진 하루를 하루답게 살고
차례진 행운을 소중히 여기며
모든 인연에 먼저 감사하고
가지고 있는 현실에 만족한다면
세월 어찌 탓하랴
착실하게 살다가
때가 됐다고 부르면
후회없이 조용히 따라가리다
치솔이 일곱개인 사내에게
나의 몇 수 안되는 수장시에는
‘치솔이 일곱개인 사내’도
정중에서 빙그레 웃고 있다
눈물을 뺄만큼 슬프디 슬픈
시에 반해 시인은 밝디 밝아
한결같이 찬연한 아침노을이다
풋풋한 정냄새가 코를 찌르는
시행마다 넘치는 장국향기에
사무치게 그리운 고향이 떠오른다
떠돌이 삶을 일축한 그림에는
진한 그리움이 살아 숨 쉬고
아릿한 생활이 수줍게 얼굴 붉히고 있다
내 치솔통 하나 갖춰놓고 잔치 벌리려는
더는 속일 수 없는 절실한 소망 앞에서
내 눈은 왜 소낙비를 맞고 있는지 모르겠다
치약이 떨어져 맨물에 치솔질하던 이야기는
우리 집에 와서 우리 식구들에게 웃으며 하고
치솔 하나 가지고 와서 우리 집에도 두기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