黑龙江日报朝文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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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한 마을에 갔다가 생기지 말었어야 할 이런 장면을 보았다. 신농촌건설계획에 따라 촌지도부에서는 낡은 초가집 두 채를 헐어버리고 시멘트길을 닦은후 길량옆에 꽃과 과일나무를 심고있는데 한 로인이 팔짱을 끼고 “저 초가집은 우리가 귀농들어올때 지은 집이라 헐면 안되는데… 텅빈 마을에 길을 닦아선 뭘해… 과일나무심어 누구 좋은일 하려구…” 이 말을 들은 촌지서가 우리가 이렇게 하는것은 상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고 앞으로 외국으로 나간 사람들의 보금자리를 만드는것이라고 차근차근 설복해도 로인은 고집을 부려 오고 가는 말이 거칠었다.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쌓아온 로인들의 경험과 지혜는 황금으로도 바꿀수 없는 보귀한 재산이다. 우리 조선족들의 된장, 김치, 막걸리 등 식품과 돌잔치, 결혼, 회혼, 산수연 등 전통문화는 수백년동안 로인들 통하여 대를 이어가고 있다. 따라서 부모를 공대하고 로인들의 어려움을 풀어주는 사회풍기가 날이 갈수록 짙어가고 있다.
  • 러시아의 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로 일컽는 레브.톨스토이이는 82세로 영면에 들기 전 2년에 걸쳐 잠언집을 집필했다. 바로 그의 마지막 저서로 알려진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이다. 이 저서는 문장이 간결하여 술술 읽혀 내려가지만 그 내용을 삶 속에서 실천하기는 결코 만만치 않다. 례컨대 그가 쓴 다음의 구절을 보자. ‘잠언집’ 68페지에서 그는 이렇게 갈파하였다. 인간사회는 ‘살인, 도둑질, 정욕, 거짓말, 음주를 다섯 가지 죄로 여긴다. 이들 죄를 피하는 방법은 자기 절제, 소박한 삶, 로동, 겸손, 믿음이다.’ 천만 지당한 말이다. 인생의 로년기에 진입한 우리 세대들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황혼길이 가까워 올수록 더더욱 자기수양과 자아반성을 흔히 하게 된다. 최근 우리 60, 70세대의 한 모임에서 누가 제언하지 않았는데도 저도몰래 인생후반기의 마음가짐에 대하여 서로 표백하게 되였다. 그러면서 공감대를 이룬 것이 바로 “해가 가고 나이가 들수록 느끼는 것은 참회요, 주는 것은 겸손이다”는 것이였다.
  • 말로 많고 탈도 많았던 도쿄올림픽이 드디에 ‘축제의 막’을 내렸다. 당초 2020년 여름에 개최될 예정이였던 도쿄올림픽은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1년간 연기된 것이다. 지난 7월 23일에 시작돼 8월 8일까지 개최된 도쿄올림픽은 코로나19라는 악재 속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코로나 올림픽’이라는 일각의 부정적 시각도 있으나 ‘코로나 포위’ 속에서 치러낸 도쿄올림픽은 성공적이였다. 올림픽이 ‘코로나’를 전승한 것이다. 지구촌 206개 국가와 지역에서 온 최고의 선수들은 17일간의 열띤 승부를 펼쳐 환희와 감동의 순간을 만들어냈다. 올림픽 여운이 은은히 남아 있는 리유이다. 페막식에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공리에 치러진 올림픽’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코로나 악재’를 딛고 올림픽 정신을 빛낸 도쿄올림픽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올림픽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경제학자는 무관중 속에서 치른 도쿄올림픽이 300억달러의 적자를 냈다고 비난했다.
  • ‘육식의 윤리성’에 대한 고민은 꾸준히 해왔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채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면서부터였다. 지금까지 1년 5개월 동안 되도록이면 채식을 하려고 노력해왔다. 물론 가끔씩 얍삽하게 토스트에 들어간 베이건은 고기도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고기를 먹기도 했지만 대체로 거의 모든 식단을 채식으로 해왔다. 채식이 건강에 좋다는 것쯤이야 익히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굳이 나까지 나서서 채식홍보대사가 되려는 것은 아니다. 채식만 답이고 육식을 비판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다. 채식은 어디까지나 스스로와 세상을 위한 보다 나은 선택지 중 하나이다. 다만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채식을 선택했고 고령산모임에도 임신성 당뇨나 철분 부족, 단백질 부족 등 아무런 이상증상 없이 20분 간의 진통만 겪고 건강한 아기를 낳은 사람으로서 익숙한 것을 버리고 다르게 먹을 필요는 있지 않을까 하는 단상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 세상은 워낙 천태만상이고 각양각색이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쌍둥이라해도 철두철미하게 똑같지가 않다. 황차 겉모습이 그럴진대 가려진 내심의 세계는 더더욱 더듬을 수 없이 천양지차다. 그 또한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각자 내재한 저마다의 속성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런 것들을 인정하고 존중함이 없이 왕왕 자신만의 서투른 자대로 급급히 판단하고 단정지으며 선입견으로 판결하는 “법관”으로 거듭날 때가 참 많다. 일전 나는 뜻밖에 심천의 모 무역회사에서 날아온 파일 한 통을 접했다. “안녕하십니까? 너무 오랜만입니다. 절 기억하고 계시지요? 20여년 전 공부를 잘 하지 않고 말썽만 부려 퇴학 당했던 황×× 입니다”
  • 체육수업과 주요 수업을 동일하게 중시하는 것은 학생들에 대한 전면적인 양성과 자질 교육의 기본법칙이다. 그러나 일부 학교와 학부모들은 아직도 체육수업을 주요 과목이 아닌 ‘소과목’으로만 생각하고 체육수업을 점용하거나 주요 과목을 위해 길을 내주고 있다. 그 결과 청소년들의 건강을 해쳐 근시률, 비만률, 우울증… 등이 지속적으로 치솟고 있다. 사실 얼핏 보면 요즘 학생들은 키꼴이 훤칠하고 살결이 곱고 몸집이 커서 아주 튼실해보인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것은 그냥 수박 보듯 겉보기 현상에 불과한 것이다. 일전에 어느 한 중학교의 체육교원으로부터 이런 사실을 알게 되였다. 요즘 학생들이 제일 싫어하는 수업이 체육수업이라는 것이였다. 그러다 보니 국가에서 규정한 체육표준에 도달하는 학생들이 적고 겉보기와 달리 그렇게 ‘씩씩’하지 못하다고 했다.
  • 교육의 질이 높고 낮음에 따라 생활 관념이 엇갈리며 각자는 천양지차의 운명을 맞게 된다. 농촌이 도시보다 교육자원이 턱없이 부족하고 교육질까지 떨어져 학생들의 문화 지식 기초가 도시에 비해 보편적으로 낮다. 이는 발달지역의 좋은 대학교를 지망하려는 농촌 학생들에게는 아주 불리하다. 지력이 높지 못하거나 노력이 결핍해서가 아니라 불균형적인 교육 자원 배분이 도시와 농촌의 엄청난 교육 차이를 도출하여 농촌 학생들의 의지가 흔들리고 가끔 자포자기하는 경향까지 나타나게 되였다. 양몰이군 자식은 계속 양몰이하고 석수쟁이 자식은 평생 돌과 씨름하는 숙명적인 악순환을 멈추게 하는 교육이야말로 진정 취약계층 속에서 한사람도 빠뜨리지 않고 보람찬 삶으로 힘껏 떠밀어주는 희망공정이다. 빈곤구제는 눈앞에 떨어진 생활난의 해결도 급선무이지만 기성세대를 포함한 후대들에 대한 교육을 단단히 틀어쥘 때 미래지향적인 프로젝트가 된다.
  • 얼마 전 민족문화사업단위 오너와 자리를 같이하였는데 그의 몇마디 말에 가슴을 찔리였다. 조선족문화사업을 승계할 후대들이 빠른 속도로 줄고 있어 우리가 퇴직한 후 후계자들이 당장 눈앞의 고민이라는 것이다. 문화인재가 량적으로 격감인 데다 수준마저 가파른 내림길을 걷는데 량과 질의 동시 급강하 량난 위기에 처하여 대책이 필요하다며 호소를 곱씹었다. 20세기 90년대부터 벌어진 인구의 대이동, 해외의 대출국, 출산률 대저하와 함께 숱한 후대들이 민족교육에서 리탈하였던 원인이 오늘의 후계자 부족을 촉발한 것이다. 이 현상 발생은 시간이 오래나 그냥 현재 진행형으로 되고 있어 수많은 지성인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친구는 ‘높은 산을 넘으면 평지가 보인다’며 희망적으로 지났는데 그냥 ‘산 넘어 또 산’이라며 머리를 저었다. 개혁개방의 순풍을 타고 조선족은 세계화 발전의 항선에 올라 혈한을 쏟아왔다.
  • 우리말 속담은 다채로운 생활 속의 풍부한 철리를 담고 있어 때로는 경종으로 때로는 위안으로 때로는 채찍으로 때로는 도로표식으로 되면서 우리들의 일상을 윤택시켜주었다.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열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기실 대다수이다. 무른 나무면 또 모를가 고로쇠나무나 물푸레나무 같은 단단한 나무를 만날 경우 스무번 서른번 찍어도 넘어가지 않는 나무들이 대다수이다. 그런데 열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다고 철석같이 믿어버린다. 그냥 나무 찍기에서 끝나면 좋으련만 살아가면서 닥치는 모든 일들에 이 속담을 대입해보는 것이 문제이다. 만일 이 속담이 천고의 진리라고 한다면 전구의 월프람선을 발견하기 위해 수천번의 실험을 해봤던 에디슨의 발명은 결코 없었을 것이고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포기를 몰랐던 진경윤의 골드바흐문제도 해결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실패 앞에서 주저앉아버린다면 우주탐색은 소설가들의 환상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여야 했을 터이다.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 매서 쓰겠냐”는 속담도 있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일에는 순서가 있으니 그 순서를 밟아서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뜻에서 비롯된 속담이다. 기실 지난 세기 80년대 이후에 태여난 세대들은 바늘을 알아도 실생활에서 사용해본 적은 극히 드물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기껏해야 단추를 다는 정도라고나 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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