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것 같다. 하늘이 희뿌연 얼굴을 하고 심술을 부리는 날이면 함박눈이 푸실푸실 내려서 온 천지를 하얀색으로 칠한다.
병실의 창가에 서서 눈이 내린 정원을 바라보면 정말 천상에 서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얀 눈꽃은 나무의 크기에 따라 크기가 천차만별이다. 작은 나무에 핀 눈꽃은 활짝 핀 목화밭을 련상케하고 커다란 소나무 가지에 얹힌 눈꽃은 하얀 다리아가 활짝 피여있는 모습을 련상케하여 보는 이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어릴적 나의 고향에도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눈이 제일 많이 내릴 때는 어른들의 무릎까지 내려서 눈길을 헤치며 학교로 갔던 기억이 또렷하다. 지금처럼 든든한 겨울옷차림이여도 모르겠는데 온기가 사라진지 오랜 신발에 헐거운 솜바지밑으로 스며드는 겨울 추위는 우리의 몸을 꽁꽁 얼려놓아 애들은 저마다 학교에 도착하기 바쁘게 눈길에 젖은 신발을 말리느라 난로 앞에 옹기종기 앉는다.
춥고 배고팠던 시절이여서 그렇게 느꼈는지 몰라도 아무튼 내 추억 속의 겨울은 그리 아름답지도 랑만적이지도 않았다. 남보다 더 추위를 타는 체질이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해마다 찾아오는 겨울이 그리 반가운 손님은 아니였던것 같다. 그래도 긴긴 겨울을 맞고 보내기를 반복하며 나는 인내와 끈기를 배웠고 겨울의 추위가 아무리 사나워도 참고 견디다보면 그 또한 지나간다는 것도 알게 되였다.
어린 시절만큼이나 올해 겨울은 나에게 만만치 않은 추위였다. 타향에서 처음으로 맞는 겨울이여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난생 처음으로 하는 간병일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뛰여들었기에 더 속을 졸이며 애를 태웠던것 같다. 중환자를 돌보는 일도 힘들지만 두뼘 남짓한 침상에 몸을 옹크리고 랭기가 스며드는 창밑에 몸을 바싹 붙이고 누워 있노라면 자신의 처지가 불쌍해서 눈물이 나왔고 먼저 떠난 남편 생각에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 누가 이런 일을 하라고 등을 떠민 것도 아니고 스스로 선택한 일임에도 서러워나는 건 어쩔수 없었다. 감기몸살에 시달리면서도 쉬지도 못하고 밤새 환자를 돌보느라면 지쳐서 당장 쓰러질것 같지만 환자를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에 마음대로 자리에 드러누울 수도 없었다. 그렇게 랭기를 고스란히 맞으며 일하다보니 몸에 이런저런 이상 증상들이 나타났지만 나는 슬픔과 괴로움을 잊기 위해 더 미친듯이 일을 했다.
이국땅에서 간병일을 시작한 것도 마음의 괴로움을 잊고 먼저 떠난이에 대한 미안함을 덜어내고 내 마음에 조금이라도 평화를 얻기 위해 시작한 일이니 살가죽이 벗겨지고 이몸이 부서진들 어떠하랴.
간병일을 하면서 어지럽고 힘든 것보다도 더 견디기 힘든건 사람이 사람에 대한 차별과 멸시이다.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그 고마움을 느낄 대신 돈주고 쓰는 사람이니 마음대로해도 되지라는 얄팍한 생각과 직업에 대한 차별이 그 고마운 마음을 가끔씩 잊게 하는것 같아 생각이 깊어진다. 얼마전 교통사고로 다리를 상한 아저씨 한분을 간병하게 되였는데 기어이 장애인 화장실이 아닌 대중화장실을 사용하겠다고 딱 버티는지라 방법없이 휠체어를 밀고 좁은 공용화장실로 들어갔다. 서서 일을 보던 사람들이 놀라거나 불쾌한 기색을 보이는지라 내가 얼굴이 뜨거워 죄송합니다를 반복했다. 그런데 그것이 한번으로 끝나면 좋겠는데 하루에도 몇번씩 공용화장실을 사용하겠다고 우기는지라 내가 안된다고 했더니 청소하는 아줌마가 남녀화장실을 가리면서 일하는 걸 봤냐고 나무람하면서 간병인이 그런 것도 못하면 관두라는 식으로 말하는 바람에 일을 관둘번 한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환자나 보호자분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간병일을 천하게 여기거나 돈을 줬으니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 혹은 머슴을 부리듯 대하는 분들이 가끔 있어 참 씁쓸할 때가 있다. 요즘처럼 백세시대에 가족이 돌볼 수 없는 환자들을 대신 돌봐주는 도우미가 있다는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그런 고마움을 단지 돈으로 샀다고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한참 잘못된 생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병이 나아서 퇴원하는 환자분이나 보호자분이 머리 숙여 “고맙다”고 인사할 때면 이 사회에 조금이나마 필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괜히 가슴이 뿌듯해진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포에 대해 편견을 가진 분들이 아직도 있어 다 때려치우고 집으로 돌아가고픈 생각이 간절할 때도 많았다. 그래도 마음을 다독여주고 격려해주는 동료들이 있어서 하루하루를 참고 견디며 자기앞에 놓인 일을 열심히 하고 정성을 다해 환자들을 돌보는 것으로 교포라는 편견의 벽을 없애려 노력하고 있다.
나만이 아닌 교포라 불리는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가정의 행복과 안녕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면서 타향에서 어렵고 힘든 일에 자신의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그 누가 알아주든 말든 그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말없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 누군가 한국에서 번 돈은 뼈돈이라고 하더니 어쩌다가 간병일을 하면서 그 말의 깊은 뜻을 온몸으로 느낀다.
2월도 막 끝나가는 시간의 길에서 매섭던 추위도 한풀 꺾인듯 싶다. 음달에 남아있던 몇줌 안되는 눈들도 이제 막 녹아버릴 모양이다. 해살에 비친 산수유 나무가지들이 유난히 파랗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이 겨울의 그 끝자락에서 봄의 도래를 기다리며 나의 마음에도 파아란 꿈이 빠끔히 머리를 내밀고 있다. 떠돌이 생활을 접고 고향에 안착하는 그날 나는 다시 필을 잡고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삶이 아닌 오로지 나만을 위한 삶을 살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