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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나의 살던 고향은 - 성송권

2026-05-27 10:17:21

내가 살던 고향은 굽이굽이 칠백리 두만강의 중하류에 위치한 량수향 소재지이다. 마을에서 북으로 십오리 올라가면 좀 너른 마을이 있는데 동전촌이라 불렀다.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동쪽의 습지판이란 뜻에서 온 이름이란다. 확실히 논밭이 많은 곳이였다.

남향장을 하고 들어 앉은 마을의 뒤산 언덕 기슭에는 십여헥타르의 과수원이 있었다.

봄이면 사과배꽃, 살구꽃, 복숭아꽃, 오얏꽃들이 만발하여 하얀 꽃동산을 이루었고 그 향기가 온 동네에 풍기여 낮에는 벌들이 붕붕 이꽃저꽃 찾아다니면서 꿀을 빚었다. 교교한 달밤이면 하루 일을 끝낸 사람들이 꽃향기 속에서 평화로운 밤을 즐겼다.

마을앞 시내물을 건너면 수십헥타르의 무연한 논밭이 펼쳐지는데 가을이면 땅이 꺼지게 열린 황금 벼파도가 바람에 넘실넘실 춤추며 낟알 향기를 실어와 풍년의 희열을 안겨주군 했다.

우리 마을에는 깊은 북쪽 골안에서부터 내려오는 맑은 물이 마을 앞을 감돌아 무심히 흘렀다.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눈에 보였다. 나는 늘 형들에게 이끌려 개울가에서 놀았다.

그 물줄기는 어린 시절의 수영장이였고 목욕탕이였다. 장마철에 물이 불어나면 널판자 떼목을 만들어 타고 물살을 가르면서 내려가는 짜릿함을 즐겼다. 여러 작은 물줄기들이 한곳으로 모여 이루어진 곳이 바로 우리의 놀이터이며 농민들의 삶의 터전인 넓은 논밭으로 흘러드는 감로수였다.

시내가 주변에는 버드나무가 많았으며 우리는 늘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물먹은 나무가지를 잘라 껍질을 벗긴후에 소쿠리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고 가을이면 가늘고 긴 가지에 무우오가리, 배추잎, 무우 우거지같은 것을 꿰여 추녀밑에 달아 말려 긴긴 겨울에 여러가지 무침, 쌈, 국을 만들어 먹었다.

봄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때면 새하얀 솜털같은 버들강아지가 푸른 하늘을 수놓았다.

그 나무 사이에 논밭에 물을 대느라 골짜기를 막은 큰 웅덩이가 골마다 있었는데 낚시군들의 보금자리였다.

학교에서 오후 하학을 마치면 부랴부랴 숙제를 하고는 호리호리한 긴 버드나무 낚시대를 들고 갈대밭을 살금살금 헤치고 조심조심 좀 깊은 물 웅덩이에 접근한다. 지렁이를 꿴 낚시대를 물깊은 곳에 던지고 주의깊게 쫑대를 살핀다. 우리의 목표는 장마철에 두만강에서 내려온 붕어를 낚아 내는 것이였다. 붕어가 안잡혀도 괜찮다. 버들치도 있고 미꾸라지를 한사발 푼히 낚을 때도 있었다.

학교가 쉬는 날이면 작은 채발을 가지고 물줄기가 두갈래로 흐르는 곳에서 하나의 물줄기를 막고 물고기를 잡는다. 등이 검고 배가 흰 큼직한 버들치, 얼룩얼룩한 돌쫑개, 그외도 이름 모르는 물고기들이 많이 잡힌다. 한날절이 되면 모닥불을 지피고 구워서 버들나무 재에 찍어 먹는다. 그 맛 또한 향긋하여 재미가 쏠쏠했다.

60년대는 집집마다 가난하여 이것은 큰 향수였다. 처서가 지나면서 날이 서서히 가을문턱으로 가면 논밭 물도랑에 미꾸라지가 강으로부터 떠내려 온다.

해마다 절기를 맞춰 우리는 채발을 만들고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질 무렵이면 논도랑에서 흘러내리는 물에 채발을 여러개 놓고 기다린다. 모기의 성화에 우등불을 지피고 쑥을 태우면서 미꾸리 잡기에 전념한다. 날이 흐리고 캄캄한 밤이면 더 많은 미꾸리가 흘러내리는데 하루 저녁에 한통은 문제없이 잡는다. 이튿날 아침 어머니가 잘 손질한 물고기를 깨끗하게 씻어 해빛이 잘 드는 마루에 널어 놓으면 장기환자여서 일밭에 못 나가시는 아버지가 파리잡이로 죽기내기로 달려 드는 쉬파리를 쫓으면서 말리운다. 그러다 손님이 오면 말린 물고기를 푹 쪄 마른 고추와 함께 볶아놓으면 둘이 먹다 한사람이 없어져도 모른다.

추웠지만 따뜻했던 그 시절 겨울에는 개천의 강바람이 유난히 차가왔다.추위가 한바탕 온 동네를 휘감고 있으면 그 나름대로 재미있는 시간이 돌아온다.

강변 전체가 썰매장과 스케이트장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량날 썰매, 외날 썰매, 스케이트를 타고 나무가지로 만든 채로 작은 돌을 자유자재로 드리블하다 골문에 집어넣는다. 그렇게 아쉬운 추위를 달랜다. 강이 얼음판으로 변했을 때 바닥에 금을 내면 우아래로 출렁인다. 얼음바닥이 출렁다리처럼 흔들리고 이 놀이를 하다 보면 얼음장이 깨져 모두 물에 빠지기도 한다. 집에 가면 혼날까봐 불을 지피고 신과 양말, 옷을 말린다. 그러다 부주의로 옷이나 양말을 태우고 마음 졸이며 집으로 가는 얼굴에는 긴장감이 가득하다. 젖은 옷으로 가면 덜 혼나는데 굳이 옷과 양말에 구멍을 내여 엄마의 화난 얼굴과 맞닥뜨린다. 일이 커지고 한바탕 큰소리가 나면 강변은 우리의 눈길에서 멀어지고 자치기에 열중한다.

구슬치기, 딱지치기에 시간이 가는줄 모르고 저녁 무렵이면 술래잡기가 시작된다. 하나하나 술래에 잡힌다. 꾀꼬리에도 끝까지 안나오는 녀석들이 있다. 가만히 집에 갔기때문이다.

우리의 고향은 친구들이 그리워지게 만든 수많은 추억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내 추억 속에는 그가 있는데 그의 추억에는 내가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 함께한 추억들인데 나는 기억이 없는 추억이 친구들의 입을 통해서 고스란히 나의 가슴 속으로 스며든다.

세월은 흘러도 사람은 변치 않는다. 가을이면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코스모스가 피여난다. 그렇게 가을이 무르익을 시간이 되였다. 문화시설이 흔치 못했던 그 시절 동네 청년들이 문예선전대를 꾸리고 한달에 한번 로천 영화를 돌리면서 동네를 즐겁게 해준다.

8월 중순이면 한전 세벌 기음과 수전 기음을 끝내고 한숨 돌린다. 이때면 마을에 잔치가 벌어진다. 운동장에 가득한 사람들이 생산소대 별로 나뉘어 축구, 달리기, 줄당기기, 물동이 이고 달리기, 바느실 꿰기 등 시합을 펼친다. 촌의 가을운동대회다. 서로 경쟁하다보니 술을 드신 분들은 목소리가 높아지고 다툼이 심해진다. 힘은 들지만 사람들과 단합이 되고 풍물소리에 두둥실 어깨춤이 절로 난다. 한살 한살 먹어가며 동네 애경사에 적극 손을 보탰다. 경사에는 생산소대 별로 소를 잡고 떡치고 야단들이다.

세월이 흘러흘러 고향에는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났다. 마을 앞으로 고속철과 고속도로가 지나갔고 강변에 콘크리트 돌다리도 놓였다. 아버지 허리띠처럼 가늘고 굽은 논두렁 길도 허리를 쫙쫙 폈고 다락논도 원전화되였다.

그 옛날 올망졸망 초라하던 초가집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벽돌 기와집이 땅 차고 보기좋게 늘어섰다. 아직도 고향에 계시는 칠십대 중반의 형님에게 “낚시나 갈까요?”라고 말하고 싶다.

찬비가 내리는 완연한 늦가을이다. 이제 흰서리 내리는 고향의 저 산기슭에 하얀 구절초가 만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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