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은 늘 같았다.
경비실 문을 나서면 어둠이 먼저 와 있었다. 발걸음은 무겁고 집은 가깝지만 쉽게 닿지 않았다. 문을 열자 따뜻한 국냄새가 퍼졌다. 안해는 아무말 없이 밥을 차리고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마주 앉았다. 숟가락 소리만 조용히 오갔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한번, 두번. 마지못해 받았다.
“누구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저, 리철입니다.”
숟가락이 공중에서 멈췄다.
중국 대련.
밤마다 불이 꺼지지 않던 노래방, 전선 냄새와 땀에 젖은 공기. 그 속을 뛰여다니던 전기 담당인 청년. 리철이였다.
“래일… 식사 한번 모시겠습니다.”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머리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흙바닥우에 쌓인 벽돌과 시멘트 자루, 허리를 펴지 못하던 그의 안해.
“출근하며 집을 짓느라 많이 힘들었겠구먼.”
그 말밖에 하지 못했다.
“애기 엄마, 이 봉투 받으세요.”
리철 와이프의 감동과 눈물.
“앞으로 꼭 보답할게요.”
짧게 답했지만 마음은 오래 흔들렸다.
다음 날, 명동의 회집. 그는 먼저 와 있었다.
몸은 말랐지만 눈은 단단했다. 예전처럼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사장님.”
식탁우에는 금세 음식이 가득 찼다.
“다른 사람은 다 한국에 나와서 돈 버는데 자네는 중국에서 뭘 하고 있나?”
그는 지금 중국에서 조경사업을 하고 일년 수입이 아마 지금 나의 열 배나 될 것 같았다.
그 말이 내 귀에 닿는 순간, 시간은 잠시 멈춘 듯 했다.
나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믿기지 않는 말 앞에서 눈동자가 저절로 커졌다. 가슴 속 어디선가 묵직한 것이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내 아래에서 일하던 사람이였다. 늘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따르던 리철. 그런 그가 이제는 나보다 열 배의 수입을 올리는 사업가가 되여 내 앞에 앉아있었다.
순간 놀라움과 함께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
……
식사가 끝날 무렵, 그는 검은 헌 가방 하나를 안해에게 건넸다.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나는 잠시 멍해졌다. 계산은 내가 했다. 수자를 보는 순간 손에 힘이 풀렸다. 며칠동안 벌어야 했던 돈이 한번에 사라졌다. 서로 만난 것을 약간 후회했다.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차게 느껴졌다.
그날 밤 경비실, TV에서는 웃음소리가 흘렀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리 속에서는 다른 장면이 반복됐다.
카지노, 도박 친구, 비여 있던 금고, 돌아갈 길을 잃던 새벽. 한번 무너지자 모든 것이 무너졌다.
그 때 전화가 울렸다.
안해였다.
“여보… 리철이가 가방을…”
숨이 멎었다.
“돈이 있어요. 현금 천만원요… 그리고 편지 한장…”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안해가 떨리는 목소리로 편지를 읽었다. 그의 말은 길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시간이 담겨 있었다. 벽돌, 시멘트, 젖은 손, 그리고 그날의 봉투 하나.
전화가 끊겼다. 나는 한참을 서있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하늘이 열려 있었다. 별이 유난히 많았고 나는 그걸 오래 바라봤다.
눈이 뜨거워졌다.
참으려 했지만 소용없었고 눈물은 볼을 타고 그대로 흘러내렸다.
그제야 알았다. 무너진 줄 알았던 내 삶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아무렇지 않게 건넸던 작은 손 하나가 시간을 돌아 다시 나를 붙잡고 있다는 것을.
국경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것을 건너온 것은 돈이 아니였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스며든 정이었고 어떤 세월로도 끊어지지 않는 끈끈한 마음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