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차원의 주름
나는 어디에서 왔을가?
이 물음은 터지지 않은 폭탄처럼
빗장뼈 아래 세치 깊이에 박혀있다
왜 이곳에 왔을가?
사명은 마트 령수증처럼
바람에 구겨져 구름이 되였다가
비로 부서지고
머리 우에 떨어져도
아무도 주으려 하지 않는다
나를 어떻게 느끼는가?
네비게이션 지도 우의 작은 흰점
밝게 빛나지만
새로 고침을 할 때마다 사라진다
존재는 픽셀처럼
백만배 확대해도 여전히 공허한 점이고
내가 연필로 그은 선은
지우개에 의해 끊임없이 의심받지만
시작도 끝도 확정할 수 없다
개미는 노트의 격자 속을 맴돌며
평면 우에서 몸부림치고
액자 가장자리의 잉크 자국은
그가 넘을 수 없는 경계다
나의 그림자는
접힌 편지지처럼
길어졌다 짧아졌다 한다
3차원을 헷갈리게 하는 꿈은
누군가 몰래 숨겨둔 네번째 지도일가?
“나는 누구인가?”
이 물음은 목젖에서 구르며
익지 않은 열매처럼
계절과 계절 사이의 틈새에 매달려 있다
부정적 감정의 늪
분노는 달궈진 철사이고
혐오는 끈적한 풀
불안은 모래시계의 카운트다운이다
락담은 물이 새는 선실이고
우울은 눈을 가린 검은 천조각이다
고통은 살 속 깊이 박힌 가시이고
공포는 옷장 뒤에 숨은 검은 그림자이다
수치는 바래버린 라벨이고
실망은 텅 빈 메일함이다
질투는 이웃의 정원 울타리이고
원망은 반복 재생되는 낡은 테이프이다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통제를 잃은 맹수떼처럼
나를 함정 속으로 몰아넣는다
나는 탈출할 생각은 하지 않고
구뎅이 바닥에 웅크려 앉아
“하필 왜 나야?”고 고함지른다
끊임없이 미끄러져 ‘과거’로 떨어지고
바나나 껍질을 밟은 듯 언덕 아래로 굴러굴러
함정의 밑바닥으로 스며든다
–모두가 다 아는 진리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는
돌을 관통한 글자처럼
아무도 지울 수 없다”
나는 왜 ‘결과’만 두려워하고
‘원인’은 외면하는가?
나는 개미처럼 문제 속을 맴돈다
베일을 벗기면 안개 아래엔
오직 나 자신뿐
잊힌 씨앗처럼
어둠 속에서 곰팡이가 피여난다
나의 관찰자
나는 수백만 비트의 정보를 흡수했지만
뇌는 0.1%도 해석하지 못한다
비를 받으려 뚫린 체처럼 서있노라면
걸러지는 것은 언제나 체념뿐이다
이것을 믿어도 될가?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든것인가?
수억년의 DNA는
오래된 덩굴처럼 내 척추를 휘감고
수백겁의 무의식은
심해의 암류처럼 나를 밀어붙인다
하나는 ‘과거’를, 다른 하나는 ‘미래’를 웨치는
두 심판관처럼 싸우지만
지금, 여기 서있는 나는 무시만 당한다
나는 데카르트에게 답변한다
“나는 ‘생각하는 나를’ 본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나 자신의 관찰자다
의식의 강가에 서서
나 자신이 어떻게 쓸려가는지
그리고 어떻게 버티며 서있는지를 본다
조용히…
방안의 주인공
벽돌을 날라와
돌벽을 쌓아 방을 만들고
그 안에 나를 앉혀둔다
그리고 두눈을 감은 채
진정한 나의 주인을 찾는다
깊은 산 속에 입산할 필요도
특별한 지도를 따를 필요도 없다
창틈으로 끼여드는 바람소리는
지금 이 순간의 속삭임이고
손등에 내려앉는 해살은
지금 이 순간의 온도이며
심장이 뛰는 소리는
지금 이 순간의 북소리이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나를 위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나를 위해
내 안의 나를 불러본다
“주인공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는 숨 쉬는 틈새에 있고
매번 ‘나는 나를 본다’는 순간에 있다
밝고 맑게
마침내 흙을 찾은 씨앗처럼
지금, 땅을 뚫고 솟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