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단 얼마라도 쓸모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남들의 인정도, 쓸모의 크기도 중요하지 않다. 그 쓸모가 아주 작은 것, 미소한 것일지라도 오롯이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나 자신에게 말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나 스스로 이 세상을 ‘졸업’할 때까지 ‘무용지물’이 되고 싶지는 않다. 비록 마음대로 되지 않을 일이지만 이런 마음가짐으로 여생을 함께 해나가려 한다.
이젠 고래희에 접어든 인생의 늦가을, 간혹 가다 소외감이 스멀스멀 스친다. 마치 가전제품이 수명의 하반기에 이르러 부속품들이 하나 둘 고장나 ‘사용불가’ 판결을 받듯이 이 나이가 되면 사회나 타인에게 아직 쓸모가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아직 누군가에게, 사회에 쓸모가 있는 사람인지를.
내가 어릴 적, 아버지께서 “이제 나는 성 쌓고 남은 돌이 되였구나”라고 하시며 늘 탄식하시던 일이 지금도 가끔씩 떠오른다. 년세가 드시니 아마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이라 여기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그럴 때면 산에 올라 사색에 잠기셨다. 그 시간만이 마음을 개운하게 한다고 하셨다.
젊었을 때는 사회와 가정에서 중책을 지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누구나 챙기고 아꼈던, 가성비 높은 사람이였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나였으니 말이다. 자식들도 예전에는 내가 조금만 눈에 띄지 않아도 애타게 기다렸으며 나의 존재는 그들에게 공기와 같았다. 이제는 각자 가정을 꾸리고 독립했으니 나는 있으면 더 좋긴 하지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되여버렸다. 그 쓸모가 줄거나 할인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슬픈 사실이지만 내가 어디까지나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마주하며 나는 다시금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나는 쓸모있는 사람인가고.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쓸모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엄연한 과제가 내 앞에 놓여 있다.
정년 퇴직후 공업기업에서 중견 역할을 할 때도 나는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였다. 그러다 외손녀를 돌보는 일이 내 어깨에 떨어져 하던 일을 접고 북경으로 가게 되였다. 처음에는 허전함과 비관이 밀려왔다. “이제 헐렁한 ‘몸뻬’ 바람에 아이나 보는 탈망살이 신세가 되였구나.” 사회에서의 내 가치는 이제 ‘제로’가 되여버렸다는 생각에 앞이 막막해지군 했다.
북경에 가서 외손녀를 보며 되풀이되는 심리적 갈등과 제2의 인생을 고민하던 중 외손녀의 그 순수한 눈을 마주하며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비록 회사에서의 역할은 끝났지만 외손녀를 돌보는 것은 딸이 사회에 나가 기여할 수 있도록 돕는 일임을 깨달았다. 나는 간접적으로나마 여전히 사회와 련결되여 있으니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이런 마음가짐으로 육아도 새 시대를 키우는 성스러운 일이라 여기니 외손녀의 생기 넘치는 기운을 받아 마음도 젊어지고 힘이 샘 솟는 듯 했다. 부모 노릇을 다시 하며 쓸모있는 사람이라는 성취감은 육아를 더없이 값지게 만들었다.
그런데 일이란 늘 그렇듯이 산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산이 기다린다. 이제 칠순에 들어선 나이에 친손녀를 돌보는 새로운 중책이 나의 두 어깨에 고스란히 떨어졌다. 가냘프고 지친 몸을 겨우 가늠하며 다시 아이를 봐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적 압박감과 막막함에 눈앞이 아찔하기도 했다.
몸은 이미 극도로 지쳐 있었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마음 먹기에 따라 그 무게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심리상태를 잘 조절해야겠다는 절박함이 밀려왔다.
힘들겠지만 최선을 다해 해내자. 내가 아이를 봐주면 그 대신 의사인 며느리가 병원에서 많은 환자를 구하는 일을 할 수 있다. 나도 그 일에 간접적으로나마 한몫 단단히 참여한 셈이니 여전히 쓸모 있는 사람일 것이 아닌가. 게다가 사랑스러운 손녀에게 사랑을 주고 그 순수한 기운을 받아 나도 다시 젊어지는 기분이다.
이를 통해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직접이든 간접이든 사회에서든 가정에서든 누군가를 돕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나에게는 소중한 의미였다.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내 힘과 위치에서 누군가에게 정신적, 육체적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아플 때 물 한그릇이라도 건네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니 캄캄하던 마음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여전히 이 사회와 가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일원이다. 생명력과 생활력이 넘치는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자부감이 마음을 치유하고 내 마음을 젊어지게 한다. 어떤 각도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비록 하는 일이 보잘 것 없어 보여도 스스로 가치를 느낀다면 그 사람은 쓸모 있는 사람이다. 쓸모 있는 사람으로, 생명력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때 여생은 한층 더 보람찰 것이다.
이 나이임에도 자아개발과 관리에 끊임없이 노력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멋진 황혼을 수놓아가는 쓸모있는 사람으로 될 수 있다는, 보다 가치있는 인생의 마지막 ‘졸업장’을 받을 수 있으리란 생각에 마음이 충만해진다.
이제는 마음이 가볍다. 나는 여전히 쓸모 있는 사람으로 되기에 힘쓸 것이다. 내가 있는 이 자리, 가정이든 사회든 나는 나대로의 역할이 있다. 그 믿음이 나를 젊게 하고 힘이 나게 한다.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의미를 부여하느냐가 진정한 쓸모를 가늠한다. 쓸모 있는 사람으로 산다면 비록 늦가을이라 해도 인생은 보람으로 가득할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나만의 ‘쓸모’를 찾아 하루를 시작한다. 비록 황혼이 깊어가도 내가 걸어온 길 그리고 앞으로 걸을 길 그 모두가 모여 나의 인생을 수놓는다. 최후의 마무리까지 오직 생리상의 곤혹만 피면할 수 있다면 이 지구촌에서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