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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평] 아픔과 불안으로 완성되는 세월 이미지 - 한광천

2025-11-05 12:41:59

계절따라 초겨울의 입구에서 그에 걸맞는 시 한수를 만난다. 바로 한영남의 <계절이 홍시 하나로 남으면>이다. 이 시는 동양적인 선(禅)의 맛과 실존주의적 사고가 담긴 수준 높은 단시로 극도로 간결한 이미지를 통해 삶이 시간 속에서 마주하는 처경과 선택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차근차근 그 진미를 음미해 보자.

1. 핵심 이미지: 홍시- 생명의 마지막 온기

시인이 '홍시 하나'를 핵심 이미지로 선택한 것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다.

성숙의 종착점으로 각인되는 홍시는 시간이 다져낸 결정체를 상징하며 계절의 순환 속 마지막 온기와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홍시는 계절의 막바지에서 유일한 지킴이로 상징되고 있다. 만물이 시들어갈 때 '홍시 하나로 남으면'이라는 표현은 황페함 속에서 추켜든 완강한 한점 생명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홍시는 사뭇 따뜻한 색채로 그려지고 있다. 다가올 흰눈의 세계 속에서 이 주황빛은 추위에 맞서는 시각적인 불꽃이 되는 것이다.

2. 구조 설계: 눈과 먼지의 이중적 겹놓임

시는 두가지 이미지의 겹침을 통해 삶이 지니는 무게의 아름다움을 구축한다.

백설(외적인 순수)–먼지(내적인 혼탁)

자연의 압력–기억의 침적물

객관적인 추위–주관적인 창상(沧桑)

이러한 대칭구조는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의 겹놓임을 통해 갈마드는 우리들 삶의 일부에 다름아니다.

3. 경이로운 구절: 커피에 떨어진 재의 현대적인 선의(禅意)

"커피잔에 떨어진 담배재/건지지도 않고 그대로 마셔버리면"은 이 시의 시안(诗眼)이라 할 수 있겠다.

불완전한 수용을 통해 삶의 불순물을 제거하기보다 재를 맛의 일부로 승화시키고 있으며 그 수용을 통한 '마심'을 통해 삶의 본질적인 상태에 대한 온전한 받아들임과 초월로 존재의 용기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또 전통과 현대의 융합 즉 커피(서양)와 선의(동양)가 잔 속에서 화해를 이루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4. 전환의 날개: 까마귀 울음의 역설적 위로

억압적인 기조(基调) 속에서 까마귀의 울음은 예상치 못한 구원을 가져온다.

전통적으로 불길하다고 여겨지는 까마귀가 여기서는 '살만한 세상'의 증인으로 나서면서 상반되는 위로를 건네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아픈 것이 어찌 우리들 뿐이겠는가"라는 말로 개인의 고통을 더 넓은 생명의 배경 속에 위치시키면서 고통의 보편성을 역설하고 있다.

"외로움은 펄럭거려도 좋겠지"라는 시구는 고독에 대한 완전한 풀어줌으로 외로움의 해방을 뜻하고 있다.

5. 궁극적인 지향: 발자국으로 완성되는 세월

결말은 시 전체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하나의 발자국 → 완전해진 세월

미미한 개체 → 거대한 시간

순간의 선택 → 영원한 의미

이와 같은 상징부호들로 견인해낸 결말은 존재의 진의를 한층 까발리면서 삶의 의미는 길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살아낸 순간들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왕유(王维)에서 페명(废名)에 이르는 동양 선시(禅诗)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인의 실존적 불안을 녹여낸다.

무거운 주제를 가벼운 시어들로 풀어내면서 일상적인 이미지로 철학적 사유를 담아낸다든가 또 '뿌우연', '오롯', '펄럭' 등의 시어를 통해 의미의 개방성을 유지시키고 길이가 각각인 시행들을 교차시키면서 호흡의 흐름을 리드하고 있으며 내용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리듬의 조절 역시 돋보이는 점이다.

이 시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비록 계절이 마지막 선물만을 남기고 비록 삶에 눈과 먼지가 쌓인다 해도 우리는 재를 마시는 결단과 까마귀 울음소리 속에서 계속 이 세상에 머무를 용기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세월을 완성하게 하는 그 발자국은 아마도 우리가 지금 찍어가고 있는 바로 이 발자국일지도 모른다.


계절이 홍시 하나로 남으면

한영남

계절이 저렇게 홍시 하나로 남으면

흰눈 흩날려도 괜찮겠지

쌓이는 것이 어찌

흰눈 뿐이겠는가

우리들 휘날리는 검은 눈섭에도

뿌우연 먼지는 쌓여 쌓여

고독을 호소하는가

커피잔에 떨어진 담배재를

건지지도 않고 그대로 마셔버리면

다행히

살만한 세상이라는듯 까마귀도 울어주고

아픈 것이 어찌 우리들 뿐이겠는가

외로움은 펄럭거려도 좋겠지

세월이 발자국 하나로

오롯해질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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