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긋불긋 다채로운 색깔이다
노을 이고 전철에 몸을 싣는 이가 있고
강변을 달리며 조깅하는 이가 있고
어제의 피곤에 묻혀 코고는 이가 있고
왈가닥달가닥 아침상 차리는 이가 있고
바람 일구며 출근길이 바쁜 이가 있고
헐헐 숨 가쁘게 산을 오르는 이가 있고
얼굴 붉히며 피대 세우는 이가 있고
고요를 깨뜨리는 청아한 까치소리 있고
귀를 괄시하는 까마귀소리도 둬 점 있고
쓰레기 뒤번지는 퀴퀴한 냄새가 있고
오늘부로 세상과 등진 호곡소리 있고…
세상 모든 색깔이 겹쳐서 무슨 색인지
딱히 알 수 없는 천자만홍이다
아무튼 그 속에 묻혀있는 나도
무슨 색인지 나 절로 모를 일이다
누군가의 눈에 비쳐진 나의 색깔이 궁금하다
퇴직 감오
모르긴 해도 이 거리 저 거리
한가히 산보하는 나같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딱히 할일 없는 일상이다
시간 맞춰 출근해야 했던
여가에 쪼들리던 어제가
새라새록 그리움이 되는
못나도 한창 못난 오늘이다
발걸음에 힘을 실어봐야
별로 신나는 기분 아니다
누군가 기다리는 이 없고
빨리 도착해야 할 지정된 곳도 없다
깍깍 울어대는 까치소리에도
당장 희소식을 접한 듯
다분히 흥분하던 신경마저
갈앉은 돌처럼 무덤덤하다
아니야, 이건 아니지!
속에서 항의 굴뚝같이 치솟는다
무엇인가 잡아야지
암, 하다 못해 짚오리라도 잡아야지!
물 속에서 허우적이며
구명을 부르는 처량함이다
누군가를 붙들어 세워놓고
아무 말이나 두서없이 하고 싶다
바쁘다를 노래처럼 입에 달고 살던
힘겨운 날들이 눈 앞에서 춤춘다
그런 날들이 파도소리처럼 우렁차다
아무렴, 밤은 필경 길지 않을 것이다
하늘은 마냥 푸르건만
그날의 그림이 하늘처럼
내 마음을 꽉 채웠건만
이따금 바람에 밀려오는
먹장 구름에 음영은 짙어간다
다시 없을 듯 했던 신선함도
세월에 모가 죽어가는 현실
모진 비바람에 나무는 휘우뚱
추위 앞에 푸른 잎은 추억일 뿐이다
굳게 믿었던 영원이란
책에서만 읽을 수 있는
낱말인 듯 하다, 아니라고
우기고 버텨도 설 자리 없다
되돌아갈 수 없는 막무가내
앞으로만 달리는 렬차이기에
한번 내리면 다시 오를 수 없는 생명
내 인생의 기억도 잠시일 뿐이다
눈 감고 야옹
가짜 리혼이 아니다
법정의 인장이 찍힌
엄정한 판결이다
눈을 감으면 편할가?
귀를 막으면 시원할가?
하늘에 물어도 답이 없고
소리쳐 불러도 메아리 없다
근본이 무시된 살풍경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량심이
시뻘건 피를 토한다
더는 참을 수 없어
번개 치고 우뢰 울고
폭우 쏟아붓는다
결코 갈한 땅을 그대로
지켜볼 수 없다는
하늘의 대노(大怒)엔 연유가 있다
도(道)
보이는 것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때론 보이는
존재를 존재할 수 있게 한다
푸름 가득 떠인 나무 앞에서
뿌리를 제쳐놓고 생각할 수 없듯이
출렁이며 흐르는 물결을 보며
그 시원을 외면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다고 무시한다면
보이는 자체가 심히 흔들린다
밖은 안의 부분일 뿐
절대 전부는 아니다
피고 지는 상리가 주어졌기에
생명은 끝없이 이어지는 순환 아니랴!
보이는 생명이 보이지 않는 생명을
못본 체 외면한다면
보이는 존재가 불행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