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기회를 리용해 나는 아버지와 함께 산동성 곡부(曲阜)로 문화 려행을 다녀왔다. 이번 려행에서는 주로 공자박물관, 공묘(孔庙),니산(尼山)대학당 방문을 통해 유교문화와 공자의 유교사상에 대해 많은 것을 리해하게 되였다. 3박 4일의 려행은 조금 피곤했으나 기분은 줄곧 유쾌했다.
첫날(7월8일) 여러 가지 일들이 발생했다. 아침 5시에 예약한 택시가 제시간에 오지 않았고 또 내가 전화로 확인하지 않아서... 하마터면 차를 타지 못할 뻔했다. 또 역 입구에서 나는 내 가방과 비슷한 다른 려행객의 가방을 가져갈 뻔했다. 추후의 려행에서 교훈으로 삼아야겠다.
이번 려행의 목적지인 곡부는 전국 10대 위생 도시이며 유명한 관광 도시이다. 그러나 국내외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주된 원인은 곡부에서 위대한 사상가인 공자가 태여났기 때문이다. 공자의 유교사상은 중국 문화와 교육에 깊은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세계 문화 유산의 중요한 부분이 되였다. 이것이 많은 국내외의 관광객이 곡부를 찾는 주요인으로 여겨진다.
곡부에 도착한 날 저녁 나와 아버지는 한국에서 오신 아버지의 친구(芮教授)와 함께 호텔 옆의 '유교채관(儒教菜馆)'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마침 예교수님은 나의 선배로 그는 연변대학교 중문학부를 졸업했다. 이번에 산동성 곡부에서 열리는 학술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곡부로 오셨다. 예교수님은 학문이 뛰여날 뿐만 아니라 인품도 좋아 보였다. 향후 나는 선배님을 인생의 롤모델을 삼아 학업에 더욱 정진할 것이다.
둘째 날(7월9일) 오전에는 우선 택시를 타고 공자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은 무료로 개방되였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공자의 유학사상이였다. 공자가 주장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은 여전히 작금의 국제 관계에 적용된다고 아버지께서 나에게 알려주었다.
국내 통치에서 공자는 '성자인심(圣者仁心)'을 강조하여 백성들에게 '인정(仁政)'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 관계에서 '이화위귀(以和为贵)'를 강조한 공자는 효(孝)와 례(礼), 숭(崇)의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여 선배와 부모님을 존경할 것을 강조하고 상사와 동료에게 례의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국가 간의 침략과 충돌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화이부동'이 사라진 것과 관련된다. 또한 우리사회에 로인을 관심하지 않는 불효(不孝)가 많은 것은 현대인의 생활에서 공자가 제창한 유교의 인(仁), 의(义), 효(孝), 숭(崇) 등의 (生活)준칙이 점차 잊혀져 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 사회에는 공자의 유교사상이 여전히 필요하다. 나는 곡부 견학을 통해 공자가 주장한 '화목하고 질서 있는'국제적 환경과 사회적 조화가 필요하는 것을 절감했다.
공자가 제시한 '대동사회(大同社会)'의 골자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례의를 지키고 자유롭고 화목한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현재 중국 사회는 이미 초요(小康)사회에 진입했다. 이는 공자가 주장한 대동사회의 첫 번째 단계이다. 현재 중국의 백성들은 원바오(温饱)를 해결했고 작금의 중국 사회 치안 수준도 크게 향상되였다.
공자 박물관을 관광한 후 현지의 공묘(孔庙)를 견학했다. 오후부터 저녁까지는 니산(尼山)대학당에서 공연과 불꽃놀이를 구경했다. 공연에는 무술, 춤, 력사극 등으로 매우 다양했다. 유교문화와 현지의 생활 풍습이 충분히 융합된 공연은 매우 다채롭고 인상이 깊었다.
3박 4일의 산동 곡부 려행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공자의 유교사상을 리해했다. 훌륭한 선배님을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 금번 려행을 통해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유용한 지식을 습득하게 되였다.
끝으로 이번 려행에 관련된 경비를 마련해 주시고 곡부 려행을 지지해 준 어머님께 감사의 인사와 고마움을 전해 드린다.
/김경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