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4일, 흑룡강성장애인련합회 제8차 대표대회가 소집되였다. 회의에서 기자는 회의에 참석한 가목사시장애인련합회 부리사장이며 제13기 전국정협 위원 장려리를 만났다.
전국적으로 이름난 '가장 아름다운 교사' 장려리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으며 이 몇년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가?
장려리가 인터뷰를 받고 있다.
사람을 구하느라 고위 절단 수술을 받은데 대해 후회 안해
장려리는 어려서부터 영광스러운 인민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였다. 뜻을 이룬 후 그는 교사사업에 혼신을 다 했으며 학생의 안전을 위하며 목숨도 아끼지 않다가 두 다리를 잃었다.
이 과거를 떠올리면서 장려리는 원망도 후회도 없었다.
2012년 5월 8일 20시 38분, 버스 한대가 갑자기 통제력을 잃고 한 학생을 향해 돌진했다. 이 위급한 시각에 장려리는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선뜻 나섰다가 차밑에 말려들어 두다리가 분쇄성골절이 되였으며 고위 절단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중앙과 성, 시 지도자들이 장려리의 용감한 행동에 깊은 관심을 돌리고 선후로 여러차례 문안을 갔다. 장려리는 선후로 전국우수교사, 전국 5.1로동메달, 중국청년5.4메달, 전국38홍기수, 전국시대 모범, 전국교서육인모범, 2013년 중국을 감동시킨 인물 등 30여개의 영예칭호를 수여받았다.
중국장애인련합회 지도자가 회의장에서 장려리를 문안하였다.
특수교육 연구생을 전공하여 빛나는 인생을 계속 쓰다
2012년 6월 30일, 장려리는 당기 아래에서 선서를 하고 영광스러운 공산당원이 되였다.
자신을 계속 충실히 하여 인민을 위해 봉사하고 사회에 보답하는 능력을 제고하기 위하여 2013년, 장려리는 북경에서 재활과 의족훈련을 하면서 북경사범대학 특수교육전공 연구생 시험을 준비하였다. 그는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를 악물고 꾸준히 버텼다. 그 해 9월, 그는 뜻대로 특수교육전공 석사연구생이 되였다.
장리리는 한번도 신체 등의 원인으로 수업시간에 청가를 맡은 적이 없으며 각고의 노력으로 2016년 7월 론문 답변을 무사히 통과해 연구생 학업을 마쳤다.
그는 의연함과 인내로 용감하게 전진하여 빛나는 인생 궤적을 이어가기로 결심했다.
장려리가 회의에 참가하였다.
공부에 몰두하고 열심히 선전하여 장애인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
단계적인 회복과 학업을 마친후 장려리는 신속히 임직할 것을 신청하고 더욱 우수한 자신으로 당에 더욱 잘 보답하고 사회에 보답하기를 기대했다.
그는 전심전력으로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이후의 목표로 삼았으며 '문외한'이 되지 않으려고 틈틈이 시간을 리용하여 학습하고 실천하여 선후로 장애인교육, 위탁양육, 가정무장애개조 등 업무를 책임졌다. 그는 인터넷, 위챗 등 현대화수단을 적극 학습, 운용하여 광범한 교류를 진행하고 인터넷공간에서 주류가치관을 전파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고양했다.
2020년 9월부터 장려리는 흑룡강성장애인련합회 위챗공중계정을 열심히 운영하여 장애인련합회 조직이 대외로 선전하는 여론선도진지로 만들었다. 전염병발생기간에 공중계정의 정보발포가 하루도 중단된적 없으며 전염병에 관한 선전칼럼을 개척하고 광범한 장애인친구들을 위해 장애인혜택과 민생정책을 선전하고 법률지식을 보급하며 장애인들의 관심사에 제때에 대답했다. 아울러 전염병예방통제지식을 선전, 보급하고 특수시기 당과 정부가 장애인군체를 관심하고 사랑하는 따뜻한 조치와 행동을 기록하여 전 성 각급 장애인련합회조직, 광범한 장애인일군 및 장애인들이 전염병예방통제에 적극 참여하는 풍채를 보여주었다.
공익에 투신하여 따뜻함과 사랑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다
다년간 장려리는 지속적으로 공익사업에 뛰여들어 따뜻함과 사랑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였다.
그녀는 류수아동들에게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들의 외로운 학교생활을 동반하였다. 빈곤지역에서 기숙생활을 하는 아이들에게 추위를 막을 두꺼운 솜이불을 부치고 장애인 친구의 심리상담원 역할을 하여 그들이 적극적으로 생활에 림하도록 유도하였다. 고향으로 돌아가 일하던 첫 겨울에 10만원의 성금으로 112명의 가정이 빈곤한 중소학생 특히 빈곤한 장애인가정의 아이와 장애학생을 지원하였다. 10만원을 출자하여 가목사시 제19중학교에 빈곤가정학생 장학기금을 설립하였다. 성녀성련합회 집행위원으로서 '춘뢰조학·금추원몽' 공익활동에 적극 참가하여 '성부녀아동기금회'에 선금을 기부하였다. 성소방총대의 '전민소방을 내가 대변한다'는 대형 공익행동에 참가하여 '홍보대사'로 되였다.
지금의 장려리는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맡은바 업무에 충실하면서 장애인친구와 그 친우들과 밀접히 련계하여 자신을 '고상한, 홰불을 들고 장애인의 삶의 길을 밝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출처: 흑룡강일보
편역: 리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