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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더 생기있게, 문물이야기를 잘 하는 것은 내 평생사명"

-전시문화 달인 한광운 이야기

2023-04-03 13:29:10

1960년에 건립된 연변박물관은 지방력사와 조선족민족특색을 일체화한 종합성박물관이다. 2009년에 국가2급박물관으로 선정되였으며 무료로 개방되고 있다. 현 관사는 자치주 창립 60돐되던 2012년에 개관하였으며 부지면적은 2만평방미터, 전시면적은 7200평방미터이다. 소장문물은 근 1만 5000점에 달하는데 그중 국가 진귀문물은 500여점으로 고대문물, 근현대문물과 조선족민속문물로 구성되였다. 현재 3대 기본진렬인 '조선족민속전시', '천추정기-중국조선족혁명투쟁사전시', '연변출토문물전시' 그리고 '연변력정-연변조선족자치주성과전시' 특별전시가 있으며 박물관은 '전국100개 중점박물관', 국가민족단결진보교육기지, 중국화교국제문화교류기지, 성애국주의교육기지, 성당사교육기지, 성사회과학보급기지로 일찍 국가 AAAA급 관광지로 선정됐다.

2015년 7월 16일은 연변인민 모두가 기리는 날이다. 이날은 습근평 총서기가 연변에 고찰 온 날로써 총서기는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첫 장소로 연변박물관을 향했다. 총서기는 이날 '조선족민속전시'와 '연변주성과전시'를 참관했다. 제18차 당대회이래 습근평 총서기는 백여차례 문물사업에 대한 중요정신을 지시했는 바 시종 '문물 보호를 첫자리에 놓아야', '문물이 살아있는 듯 이야기를 잘 해야'(让文物活起来)는 주제론술을 제기했다. 제19기 중앙위원회 제6차전체회의에서는 '문물 및 문화유산 보호'를 처음으로 당의 력사결의에 포함했다…

'문물 수집과 전시 및 문화유산 보호와 전승' 사업을 천직으로 대하며 장장 37년 동안 문물이야기를 해온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연변박물관 연구관원, 연변무형문화유산전문가 소조 성원 한광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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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물이야기를 하고 있는 한광운

유물을 보배로 여기다

한광운은 1963년 훈춘 삼가자향 동강자촌 태생으로 1983년도에 연변대학 력사학부에 입학, 1987년도에 룡정시조선족민속박물관에 배치받았다. 그가 태여난 곳은 한족과 만족이 많았다. 그속의 조선족마을에서 한광운은 어릴 때부터 우리의 수전농사를 봐오면서 초고중을 다녔다.

1982년에 설립된 룡정시조선족민속박물관은 시외 동산부근에 위치했으며 인재도 많이 수요되였다. 그때 차상춘 제1임관장은 "정말로 이 어려운 박물관사업을 할 것인가?"라고 물었는데 그는 명쾌히 대답했다. 그때부터 한광운은 문물과 끊을 수 없는 평생인연을 맺었다.

룡정시조선족민속박물관에서 근무하는 15년 동안 한광운은 500점 넘는 문물을 수집, 정리해냈다. 박물관은 초기단계에는 자료를 수집해 보관하는 장소로서의 의미가 강했지만 이제는 밖으로 드러내서 보이게 하는 전시로 시각적향연을 선사하고 있는데 이는 박물관의 주된 역할이다. 하여 한광운은 많은 소중한 문화유물들을 조사하고 연구했으며 내용을 담아 박물관에 전시하는데에 필사의 노력을 경주했다.

1989년, 그가 훈춘시 마천자향에서 수집하여 전시한 상여는 지난 시기 우리의 상여문화를 여실히 보여주는 문물이다. 이는 한광운이 수집한 가장 진귀한 문물로 국가1급문물로 등재됐다. 상여는 황두라고도 하는데 사람이 죽은 후 시체를 운송하는 도구로서 모양은 가마와 비슷하나 더 길고 몸체는 집처럼 만들어 각가지 장식을 하였다. 마을마다 공동기금으로 마련하고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상여집(황두막)에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마다 썼다. 상여를 메는 사람은 상여꾼, 황두꾼이라 하여 주로 마을공동 두레, 품앗이로 이뤄진다. 사람은 인간세상에 태여나 온갖 고락을 다 겪는데 죽을 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화려하게 떠나라고 하여 조상들은 상여를 잘 꾸며 만들었다고 한다. 한광운에 의하면 이는 인생의례의 중요한 한부분으로서 이러한 문물들의 배후이야기를 착실히 잘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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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1급문물 '상여'(진품)

시종 조상에 대한 존경심, 문물에 대한 애착심, 문화에 대한 자긍심으로 한광운은 문물수집을 대했으며 선배들과 함께 길 떠나 길 때에는 한달이나 바깥에서 문물수집에만 매진할 때도 있었다.

"그때는 수집한 문물들을 소달구지에 싣고 다녔어요. 교통이 아주 불편할 때라 20~30리쯤 걷는 것은 그저 보통일이였죠. 그래도 문물들과의 만남이 설레였으며 보람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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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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놋바늘집

실로 그는 남들은 저어할 수도 있는 유물을 보배로 여겼다. 한광운은 유물은 조상들이 물려준 것으로 어떤 슬기와 마음이 담겨져있다고 말한다. 또한 이를 집집마다 잘 간직하고 보관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가 수집한 은장도와 귀주머니는 국가3급유물로 등재됐다. 은장도는 은으로 장식한 작은 칼로 남녀가 몸에 지니는 노리개 또는 호신용 칼이다. 귀주머니는 조그만 소지품이나 동전 등을 넣고 입술에 주름을 잡아 졸라매어 허리에 차거나 손에 들고 다니는 장신구이다. 비단 헝겊으로 만들어 수를 놓거나 금박을 박기도 하는데, 옛날에는 주로 녀성들이 지녔다고 한다. 룡정에서 수집한 문물인데 소장자가 가족의 유물이라며 내놓지를 않아 설득을 반복한 끝에 겨우 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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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장도

한 가문의 계통과 혈통관계를 적어 기록한 이른바 '족보'도 귀중한 문물이다. 특수 년대 가문들에서 족보를 김치움과 지붕 대들보에도 숨겼고 땅에 파묻으며 보관하고자 했지만 여전히 많은 족보들이 불태워졌다. 박씨, 최씨, 한씨, 리씨 등 80가지 족보 중 20여가지를 한광운이 수집했으니 그의 족보에 대한 애착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1988년, 흑룡강에서 수집작업을 할 때 한씨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개산툰진에 청주한씨 족보를 지닌 할아버지가 계신다고 알려줬다. 출장에서 돌아온 한광운은 한할아버지댁부터 찾았다. 소중한 것이라 처음에는 내놓기를 꺼려했다. 한광운의 거듭되는 설명 끝에 한할아버지는 마침내 족보가 박물관에서 오래오래 기념될 수 있기를 동의했다…

문물 전시와 학술

문물은 문화의 산물로 정치, 경제, 예술, 법률 따위의 문화에 관한 모든 것을 일컫으며 수집 전시 외에서 연구가 필요하다.

1992년 한광운은 조직의 안배로 국가문물국 산동성태안훈련중심에 참가했는데 이곳에서 한달반 동안 '문물이란 무엇인가?', '민속학은 무엇인가'의 학습을 체계적으로 접하게 되였다. 한광운은 그때가 29살이였으며 50여명 되는 학원들과 절에서 지내며 열심했던 공부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거기에 중국민속학회 부리사장이자 국제아시아민속학회 회장 도립번(陶立璠)과의 인연은 훗날 그가 중국민속학회, 국제아시아민속학회의 각종 학술회의, 행사에 참가할 기반을 마련해줬다. 돌아온 후 그는 룡정시조선족민속박물관 관장으로 임명됐으며 장장 15년간 거기서 근무하다가 2001년 9월 연변박물관으로 조동되였으며 한동안 부관장직을 담당하기도 했다.

박물관전시는 운영방식에 따라서 고정전시 외에 류동전시도 있다. 룡정시조선족민속박물관에서 근무하던 시절 한광운은 해마다 두차례 학교와 가두 등에 내려가 류동전시를 펼치며 더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문물이야기를 잘 전하기에 노력했다.

한편 2002년 국제아시아민속학회에 가입하면서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국제아시아민속학회가 주관하는 국내외 학술연구회 및 국제교류회의 등에 적극 참가, 20여차례의 중요발표를 하면서 민속문물 전시에 대한 지식을 한층 련마하며 전문가들과 교류했다.

특히 곤명에서 열린 '아시아민족박물관관장 및 인류학자포럼'(2006년)과 한국에서 열린 '향촌민속과 수렵문화 학술회의'(2007년), '산간문화 학술회의'(2008년), '강문화학술회의'(2008년), '중한단오문화 학술연구회의'(2009년) 등 수십차례 학술회의는 그에게 신선한 문화적 자극과 동력으로 되였다. 이를 실제와 응용해 국내외 여러 도시들 박물관, 민속관과 형제관계를 맺고 상호전시를 펼치면서 한광운은 다시한번 박물관인으로서의 문화지킴이, 문화전파자의 역할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특히 2007년부터 2012년까지, 한광운은 본업인 문물 수집과 정리도 게을리 하지 않으며 대량의 답사를 진행했다. 그는 연변은 물론 흑룡강성 목단강 지역에서 조선족과 만족 민풍에 대해 일련 조사를 진행하며 풍부한 민속소재들을 접했는데 20만자가량의 조사자료를 써내기도 했다. 2013년부터 일년 동안에는 길림성 룡정시, 안도현, 왕청현, 길림시, 통화시, 장백현 그리고 료녕성 본계시, 환인현, 단동시; 흑룡강성 할빈시를 다니면서 '조선족농악무'전시에 필요한 도편자료 5000장과 실물 100점을 수집하면서 시종일관 문물공작에 대한 열정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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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룡정시삼합진부유촌에서 민간답사를(좌2)

2012년, 한광운은 현 연변박물관의 민속전시 전반 내용설계작업을 맡기도 했다. 민속전시는 주로 첫머리에 조선족이주력사를 소개하고 이어서 농경민족이라는 주제로 생산풍속, 생활풍속, 의례풍속, 명절풍속 및 기타 문화예술적인 내용들을 전시한다. 조선족 전통팔간기와집이 1:1비례로 조성된 것은 연변박물관 민속전시에서 있어본 적 없는 참신한 시도였다. 한광운에 의하면 이는 훈춘시 회룡봉촌의 한 팔간집을 모방한 것이고 기와는 룡정 명동에서 직접 수집한 문물이다. 그의 우직한 노력으로 이 민속전시는 '전국박물관정품10대전시 우수상'을 받았다.

图片'조선족민속전시'가 '전국박물관정품10대전시 우수상'에 선정

다년간 한광운은 룡정시조선족민속박물관, 도문시박물관, 화룡시진달래민속촌, 왕청현조선족농악무박물관, 조양천진태흥촌중공동만특위유적지 등 20여곳 전시 지도와 '조선족해금음악', '조선족떡제작기예', '조선족돌솥비빔밥제작기예', '조선족농악무', '조선족농악장단' 등 무형문화유산 국가급, 성급 항목 신청사업에서 자문지도를 적극 맡으며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 특히 도문시박물관은 연변주에서 뒤늦게 설립된 박물관이다보니 자료 수집과 보존, 관리, 전시수단, 보급에 이르기까지 한광운의 가르침이 많았다. 관장 김철수는 '1993년도에 설립된 도문시박물관은 처음에는 전시가 없고 주요하게 문물 보호가 위주였습니다. 좁은 공간이지만 문물은 구전했어요. 지도를 통해 립체적 평면적으로 300여점 문물을 전시하게 됐습니다'고 밝혔다.

선후로 발표된 '민속유물의 보존과 리용에서의 박물관의 역할에 대해 말하다', '조선족 농경문화에 대해 말하다', '박물관의 새로운 과제-무형문화유산의 전시에 대해 이야기하다', '장백산 지역의 수렵문화', '두만강 하류 연안의 수역문화', '조선족 민족성씨 연구' 등 40여편 론문과 '조선족 민속공예', '조선족 민속놀이', '조선족 무형문화유산 사진록', '조선족 민속연구 제5집', '중국조선족전통복식', '연변향토문화연구문집' 등 전문 저서들에서 그가 ‘문물이야기’를 잘하는 욋길에서 민속과 문물에 대한 깊은 연구를 거듭했음을 알 수 있다.

'문물'과의 대화, '문물이야기'를 잘 해야

지난해 5월, 중앙정치국 중화문명탐원공정 진행 관련 제39차집체학습회의에서 습근평 총서기는 다시금 중국문명력사연구전략에 대해 문물과 문화유산은 중화민족의 유전자와 혈맥으로 불가재생, 불가대체한 문명자원이라고 강조하면서 이는 력사자각과 문화자신감의 부호라고 지적했다. 대체로 문물의 수집 및 연구가치는 력사적가치, 예술적가치, 용도적가치 등으로 나뉘며 최근은 특히 문물과 문화유산에 대한 보호, 연구 공작이 중요시되는 시점이다.

사실 오래된 것, 낡은 것과 녹이 쓴 것은 볼품없는 물건일지도 모른다. 먼지가 쌓였고 변두리도 뭉텅 떨어져나갔다.

"수집과 전시외에 연구와 해석이 아주 중요해요. '문물'과의 대화로 '문물이야기'를 잘 기록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죠"

례를 들자면 온돌문화에 나타나는 생활용품이다. 소반, 다듬이대, 장롱, 화로, 방석, 연상 등등 용구들은 왜서 방바닥에 놓이게 설계되였는지, 어째서 시집갈 때 없는 살림에도 그릇만은 준비해가는지, 예로부터 숟가락과 젓가락은 어째서 임자가 정해지는지 등의 배후이야기를 잘 해야 한다는 것이 한광운의 생각이다...

이렇듯 그는 연변박물관 연구관원, 연변무형문화유산전문가 소조 성원을 맡으며 연변향토문화연구회를 설립해 우리 문물과 문화유산 보호을 사명으로 로심초사해왔다. 지난 박물관생애 37년은 여기저기 문물을 찾아 숨가쁘게 달려온 날들이였다. 퇴직을 앞둔 현재에도 그는 세시풍속, 생활풍속, 인생례속, 민간문예 등을 아우르는 대형 조선족민속전시를 기획(공동)하고 있다.

문명은 물과 같으며 소리없이 만물을 적신다. 그속에 문물은 한세대 한세대들의 정신문화발전에 자양분과 인도적역할을 한다. 그 시절 그때 그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가? 그들은 어떤 것들을 사용했는가? 한광운이 전하는 '문물이야기'는 또 어떤 이야기로 공명을 줄지 기대된다.

/류설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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