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혈맥에 샘 솟는 음악유전자 하상주 등 음악청소년들의 소중한 음악꿈 키워내
그들은 발전의 물결로서 음악도시 미래의 무한 가능성 대표한다
당신이 할빈의 골목골목을 산책하다보면 어디서나 쉽게 보이는 음악기호들에 놀랄 것이다. 이 도시에는 백년된 교향악단이 있고 또 중국에서 가장 긴 국가급 음악축제 '할빈여름음악회'가 있다. 음악과 도시생활의 융합, 이로써 돋보이는 '음악도시'의 튼튼한 문화저력은 전 아시아 지역에서도 할빈이 유일하다.
조명이 하나둘 켜지자 할빈 교향악단 음악시즌 개막음악회가 시작되였다. 할빈 콘서트홀에 앉은 타지에서 온 관광객 진씨, 처음이라 이 도시에 대한 료해가 별로 없는 그는 이곳을 관광시작의 첫 정거장으로 삼았다. "저명 지휘자인 탕목해가 전하는 청각 향연은 그야말로 굉장하다!" 그녀는 흥미진진하게 소감을 전했다.
14세의 첼리스트 하상주도 이 음악회에 대한 기대가 크다. '목신오후전주곡(牧神午后前奏曲)'이 울려퍼지자 무대 우 직업 연주가 행렬에서 나이는 어리지만 패기 넘친 그의 모습이 보인다. 아름다운 선률이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와 악단의 화려한 교향악장과 합친다.
여름방학을 리용하여 우수한 교향악단과 지휘대가와 합작하게 된데 대해 하상주는 "교향악 공연은 악사들이 작품의 내포와 구조에 대한 리해 그리고 다른 연주자들과 호흡을 중요시 한다. 관객들의 기대어린 눈빛과 마주하고 진심 어린 박수소리를 들을 때 음악작품 창작 격정이 더욱더 솟아난다."라고 대답했다.
작년 그는 제11회 차이코프스키청소년음악대회 중국예선에서 두각을 나타내 첼로조 3갑에 올랐다. 많은 우수한 선배들과 함께 이렇듯 수준 높은 음악공연에 참가한 그는 무대 체험, 전문가 지도로 꿈을 쫓는 길에서 많은 자신감을 얻었단다.
하상주는 5살에 피아노를 배웠고 7살 때 할빈소년궁에서 계몽스승인 첼리스트 석영을 만났다. 하상주는 첼로의 따뜻하고 순수한 소리에 단번에 끌려 좋아하게 되였다고 고백했다.
사실 음악문화가 오랫동안 전승, 발전된 할빈이라는 도시의 혈맥에서 샘 솟는 음악 유전자가 그를 키우고 있었다. 소년 하상주의 성장사를 돌이켜볼 때 그는 9살에 이미 할빈대극장 아동합창단원으로 선정되였고 이탈리아제노바오페라단과 시칠리아합창단이 공연한 '투란도트(图兰朵)'와 '포난시가(布兰诗歌)'에 참가했다. 줄곧 세계적인 톱극장에서 세계적인 대가들과 함께 해온 그의 마음 속에는 음악을 열애하는 씨앗이 심어졌다. 그리고 10살 때 진룡축몽(辰龙筑梦)음악공정대가반 성원이 되여 국제적으로 유명한 첼리스트 왕건과 만나 첼로예술에 대한 깨달음을 나눴다. 그후 그는 또 작곡에 푹 빠졌다. 그가 창작한 음악작품은 폭발적인 상상을 하게 만드는데 마치 사상의 준마를 타고 대지를 미친 듯이 달리는 느낌이란다.
음악홰불은 세세대대 이어졌고 인재는 속출했다. 부경진, 리쌍강, 김철림, 곽송, 류석진… 중국 음악계에서 할빈태생 음악인들의 역할은 막강하다. 한세대 또 한세대의 음악인재들이 바로 이 '음악도시'에서 전국, 세계로 나가 이름을 떨쳤다. 할빈음악박물관 명인벽을 보는 이마다 "이렇게 많은 음악가들이 할빈에 깊은 감정과 운명적인 인연을 갖고 있다니."하며 감개무량함을 느낀다. 명인벽에 이름을 올린 수많은 음악인재들은 모두가 이 아름다운 흑토가 키워낸 명인들이다.
눈부신 다이아몬드는 련마와 담금질을 필요로 한다. 올해 8월 할빈콘서트홀에서는 '용솟음쳐라, 뒷물결!(奔涌吧,后浪!)'청소년예술전시시리즈음악회를 내놓았는데 하상주가 이 청년예술가의 부화계획에 합류되였다. 이어 14일, 그의 첼로독주음악회가 할빈콘서트홀에서 펼쳐졌다.
그들은 뒷물결이고 시급히 피어나야 할 왕성한 력량으로 '음악도시' 미래의 무한 가능성을 대표한다.
할빈은 미래 음악가들을 돕고 지속가능한 진로를 만들어주며 '음악도시' 건설에 량질의 신선한 예술력량을 불어넣고 있다. 하상주와 그의 동료들은 첫 수혜자로 되여 이번 공연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보여줬다. 좋은 시대를 만난 그들은 행운스러운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지금은 꿈이 있는 자에게 무대가 부족하지 않고 실력있는 자는 반드시 빛을 발할 수 있는 그런 시대이기때문이다.
음악도시 문화전통 전승은 설소리의 새로운 사명이며 그가 반생을 떠나 돌아와서도 여전히 노력하는 방향이다
그는 솔선수범하여 더 많은 아이들이 음악을 사랑하도록 인도했다
"음악은 색채가 있다. 서로 다른 음색은 서로 다른 감정, 명암, 추위와 따뜻함, 강함과 부드러움을 표현해낼 수 있다. 음악은 들을 수 있을 뿐만아니라 볼 수도 있고 심지어 만질 수도 있다."
대가 설소리의 수업을 방청하는 것은 마치 한차례 훌륭한 예술감상 수업을 체험하는 기분이다. 그의 독특한 비유는 교학분위기를 더욱 생동감 있고 재밌게 한다. 오늘날 국제음악계의 걸출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음악 교육가인 설소리는 시종 음악교육에 대한 사명을 품고 있다.
8월 23일, 설소리는 모교인 흑룡강예술직업대학에 돌아와 청년교사 주막에게 '맥을 짚고 진찰하라.'고 강조했다. 악구 처리부터 감정표현까지, 그는 직접 시범을 보이며 주막의 현 상황을 진맥했다. "내가 하늘 끝까지 가더라도 모교는 영원히 내 마음의 귀착지이자 항구이다." 예술꿈을 키워준 출항지인 모교로 돌아온 설소리의 감개무량한 얘기이다. 그는 17살에 흑룡강성예술학교(흑룡강예술직업대학) 기악전업반에 입학했고 학교 관현악대 수석, 바이올린 독주를 맡았다.
설소리는 자신의 예술길을 되돌아볼 때 할빈이라는 도시의 음악 문화전통이 그에게 미친 영향을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할빈은 내가 음악꿈을 꾸고 키우던 요람이다. 나는 6살 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아버지는 할빈오페라 교향악단 부수석을 맡았고 어머니는 흑룡강성 가무극장 무용대 무용수였다. 그 덕분으로 나는 대부분 동년시절을 극장의 련습실, 관중석, 무대 뒤에서 보냈다."설소리가 회상했다.
1986년, 설소리는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튼음악대학에 입학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 교육가인 앨리스와 에른노 훈필드 자매를 스승으로 삼고 예술가 학위를 취득했으며 앨리스 훈펠드의 지도 아래 요아힘(约阿希姆)학파의 중국 후계자로 되였다. 그러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은사가 창립한 훈필드 현악 경기를 할빈에 도입했다. 그의 노력으로 2014년, 2016년, 2018년에 훈필드 현악 경기는 '할빈여름음악회'에서 세차례나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훈필드 현악 경기는 현재 전 세계에서 영향력과 권위를 지닌 종합 현악 경기로 부상했다.
2021년, 할빈 훈필드 현악 경기가 세계국제음악경기련맹 리사회 구성원으로 뽑혔는데 60년 이래 처음으로 여기에 선정된 중국 구성원 단위이다.
설소리는 "근년래 할빈은 줄곧 할빈콘서트홀, 할빈대극장, 할빈음악대학, 할빈음악박물관 등 일련의 지표적 건축 시공과 하드웨어 시설의 락성과 사용, '음악도시'라는 국제 문화 브랜드 가치를 향상시켜왔다. 음악은 도시의 더욱 다원화된 매력을 보여주고 도시의 기질을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다."라고 밝혔다.
음악도시의 문화전통을 전승하는 것은 설소리의 새로운 사명이고 그가 반생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노력하는 방향이다. 한편 그는 할빈 훈필드 현악 경기의 예술 총감독을 맡고 최고의 음악 경기로 우수한 재능을 가진 젊은 음악가들을 격려하며 현지 음악인재와 전 세계 음악 엘리트들에게 좋은 전시 무대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할빈에 음악 교육과 연주 예술 분야의 국제 최고급 교류 플랫폼을 구축해왔다. 다른 한편, 매번 할빈으로 돌아갈 때마다 그는 대량의 시간과 정력을 투입하여 할빈의 음악 새싹들에게 더 많은 조력을 제공하고 예술세계의 문을 열어줬다. 그는 "우리의 '음악도시' 할빈은 더욱 광범위한 플랫폼과 인재들을 육성해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할빈음악박물관에서 설소리와 50명의 어린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우수리선가'를 리허설하고 있었는데 그들 중 가장 어린 연주자는 겨우 4살 반이다. 설소리는 재미있게 아이들과 '쾌락금동(快乐琴童)'의 리념을 공유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연주해야 음악의 씨앗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할빈소아바이올린예술단 전시장 앞에서 설소리는 아버지 설징잠이 50년 동안 바이올린 교육 사업에 힘쓴 사적을 얘기하고 있었다. 설징잠은 업무 여가를 리용하여 줄곧 할빈시소년궁, 청년궁, 할빈사범대학, 흑룡강성예술직업대학 등에서 바이올린 교육 지도와 리허설 공연 활동을 했으며 어머니 장국화의 공동 제안과 추진 하에 '할빈소아바이올린예술단'을 창립했다. 이들은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는 아이들의 음악생애를 밝혀주는 등대였다.
근년래 이미 고령에 들어선 부모님의 뒤를 이어 설소리는 할빈소아바이올린예술단의 리허설 지도 업무를 꼭 자신이 맡는다고 한다. 8월 10일, 할빈음악청에서 그는 할빈소아바이올린예술단의 어린이들을 데리고 성공적으로 '우수리선가' 무대를 마쳤다.
할빈공업대학부중 초중 2학년에 다니는 왕완빈은 설징잠, 설소리 부자의 학생이다. 그녀는 "설소리 선생님을 따라 공연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나는 음악을 사랑하는 긍정적 에너지의 청소년이 되고 싶다. 훈련은 더이상 지루한 일이 아니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음악이 없는 인생은 불완전하다. 모든 아이들은 성장 단계에서 반드시 충분한 음악심미교육을 받아야 한다. 대부분의 금동들은 전문적인 길을 걷지 못한다. 하지만 체계적인 음악학습을 통해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고전음악 소비집단이 되고 도시 문화발전의 초석이 된다." 설소리는 자신이 먼저 모범을 보여주며 더 많은 아이들이 음악을 사랑할 것을 바랬다.
도시가 음악과 련결되면 어떤 기묘한 화학반응이 일어날가? 한차례의 독특한 '광장'음악회가 할빈 구석구석에서 열풍을 일으켰다.
할빈홍수방지기념탑 아래에서, 할빈기차역 북광장 대합실안에서, 중앙대로 거리에서… 설소리는 어ㄴ이들과 함께 '나와 나의 조국', '우수리선가'를 연주했다. 온 거리가 음표로, 곳곳이 멜로디로 가득차 랑만적이다. 시민과 관광객들도 박자에 따라 가볍게 합창하고 어울려 춤을 추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 '음악도시'의 예술 농도를 온마음으로 느끼며 할빈여름의 독특한 매력을 체험했다. 그날 이 '음악도시' 상공에 끊김없이 울려퍼진 음악은 뭇사람들 마음 속에 긴 여운으로 남아있다…
출처: 흑룡강일보
편역: 류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