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흥안령 서쪽기슭에서 쏟아져 내린 우유르강(乌裕尔河)이 굽이쳐 흐른다. 파란만장함도, 활달함도 없이 그저 제멋대로 흘러가는 강물이지만 여기에서 자룽(扎龙)습지가 형성되여 그 독특한 불굴의 기개와 여운을 만들어냈다. 21만헥타르의 습지와 독특한 내륙 수역 환경, 원시적인 갈대늪의 경지로 진귀한 물새들에게 천연 보호소를 제공하고 있다. 260여종의 조류가 번식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이 모여 있는 이곳에는 천마리에 가까운 두루미(丹顶鹤)들이 습지를 새의 락원, 학의 고향으로 꾸몄다.
우유르강이 굽이쳐 흐른다.
흑룡강 자룽국가급 자연보호구에서는 생태문명 이야기와 학 사육의 정서가 어우러져 오랜 력사를 자랑한다. 자룽의 희귀한 물새들의 양육 이야기는 바로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이야기이다. 자룽의 생태보호 이야기는 '맑은 하늘 구름우에 학이 늘어서 생태계를 룡강으로 이끈다'(晴空一鹤排云上,便引生态到龙江)는 생태문명 건설 이야기이다.
사육(笼养)에서 야생화 비상훈련(训飞)까지
학에 매료되여 구름우에 서다(鹤类纵情“排云上”)
이른 아침 첫 햇살이 갈대늪에 내리쬐자 양학인(养鹤人) 서혜(徐惠)는 물고기가 가득 담긴 그릇을 들고 갈대밭으로 들어갔다. 손을 흔들자 두루미 한 쌍이 갈대밭에서 몸을 내밀어 물우에 떨어진 물고기를 가볍게 쪼았다.
학에 매료되여 학과 함께 한 16년, 서혜는 학을 기르고 학을 보호하고 학을 촬영한다. 학은 그의 자식이자 취향이 맞는 친구이다.
"나는 위챗 걸음수를 다 껐다. 위쳇 모멘트표지를 매일 점령하기가 민망스럽다." 서혜는 매일 새벽 서너시에 학에게 와서 먹이를 주고 청소하고 서로 우울리며 순호(巡护)한다. 서혜는 항상 7시에 아침을 먹고 이어서 하루 일을 시작한다. 이따금 저녁 7시가 넘어서 보호구에 와 두마리의 '스타학'(明星鹤)을 옆 2미터 언덕으로 안내하여 석양 노을과 함께 신나게 춤을 추는 두루미의 아름다운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다.
이렇게 하루종일 움직이면 걸음 수에서 그를 당할 자가 없다. "그때 위챗 운동 표지를 점령하면 많은 친구들이 ‘좋아요’를 눌러주는데 다들 부러워했어요." 서혜는 상처투성이인 두 손을 비비며 지칠 줄 모르고 자신의 경력을 공유한다.
서혜는 조석으로 학과 함께 지내는 까닭인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손짓 발짓이다. 서혜는 "두루미들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는 것이 가장 즐겁다. 이 몇년간 보호구는 두루미들의 야생화 비상훈련 등을 통해 야생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도와 루적 350여마리를 방류했으며 야외 감시 등을 통해 모두 잘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야생화 비상훈련팀 팀장 왕조
야생화 비상훈련팀 팀장 왕조(王朝)도 자룽의 오랜 직원으로 보호구에서 14년째 일하고 있다. 자룽보호구의 야생화 비상훈련기지에서는 하루에 4시간씩 30여마리의 두루미가 언덕뒤에서 서성거리면서 비상훈련원의 기발과 손짓에 따라 바람을 일으키며 관광객들의 머리우로 날아오르고 소택지를 헤엄쳐 가다가 물우에 떨어진 물고기를 쪼아 먹는다고 소개했다. 두루미 야생화 비상훈련사업은 주로 학의 비상능력, 야외 먹이찾기 능력, 자기 방어능력 등을 단련하는데서부터 시작한다.
1970년대말부터 두루미의 사육을 시작한 자룽보호구는 두루미의 생체유전자은행 종군을 조성하여 두루미의 사육에서 산양(散养)으로 탐색과정을 거쳐 1983년 산양 학 종군 야외 월동을 실현했고 1987년 산양 학 종군 후손 야생화사업을 완료했으며 자룽보호구 두루미의 사육에서 산양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야생화경로를 탐색하여 세계 두루미 종 보존을 위한 자룽의 본보기를 마련했고 지금까지 점점 성숙되여 가고 있다.
개체 학 양식으로부터 집단 학 보호로
학 보호사업이 전승되다
자룽에 왜 학이 있는가? 호수의 수계가 발달하여 기후가 좋아 물새의 먹이가 풍부하고 갈대가 우거져 있어 두루미들이 휴양하며 천적을 피해 사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때 자룽보호구에서는 사람과 새가 땅을 다투는 상황이 벌어져 각종 생물자원이 감소세를 보였다. 두루미의 안전하고 쾌적한 생육 환경을 조성하여 그 번창을 돕는 것은 여러 세대의 자룽인들이 끊임없이 분투하는 사업이다.
"내가 자룽에 와서 사육사가 된 뒤 삼촌을 따라다니며 공부했는데 학을 기르는 것 외에 학의 둥지를 깨끗이 하고 알을 낳는 주기를 기록하며 학의 파일(档案)을 정리했다. 내 삼촌이 바로 서건봉(徐建峰)인데 나의 손을 잡고 하나 하나 배워주었다"고 말했다. 서건봉 하면 서혜는 추억에 잠긴다.
서건봉과 서수견 (徐秀娟)은 학의 도시 백성들마다 평생 기억하는 이름이다. 이들은 두루미 생육의 전 주기를 알아냈고 자룽 희귀조류 보호, 생태환경 보호사업을 두 손으로 떠받들었다. 오늘날 학을 기르는 군체는 점점 더 커지고 있고 자룽보호구는 3세대 학을 양식하는 힘으로 충만되여 있다.
"삼촌의 딸 서탁(徐卓)씨는 보호구 과학연구선전교육센터에서 일하는데 전기차를 타고 야외로 나가 학을 구경하고 때로는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 야생학 서식지를 익히도록 안내해 달라고 나를 부르기도 한다." 서혜의 이야기를 통해 깔끔한 90대 소녀가 야외로 행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학시절 자룽려행을 한번 다녀왔다는 리유만으로 1994년생인 고가(高歌)는 앞으로 이곳에 남아 살 것을 택했다. "나는 후룬벨(呼伦贝尔) 출신이다. 대학은 운남성 곤명에서 다녔는데 제3의 도시를 선택해서 분투하려는 것은 자룽의 생태환경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자룽보호구 과학연구선전교육센터는 고가와 같은 신생력량 2명을 맞이하여 주로 자룽보호구 야생동식물의 과학모니터링에 종사하고 있다. 그들은 자룽보호구에 온지 1년도 채 않되지만 각종 동적인 과학연구데이터를 채집하고 분석함으로써 마치 반세기동안 자룽보호구의 야생동식물과 함께 한 것 같으며 의연히 자룽에 뿌리 내리기로 선택했다.
저녁, 서혜(우)는 보호구내의 야생 두루미들을 순방하고 있다.
습지 복구로부터 학 주제활동까지
학문화로 생태문명 해석
미풍이 불자 갈대가 천천히 허리를 굽혀 위에 앉은 잠자리를 놀라게 했다. 두루미 몇 마리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그 사이 회색 재두루미(白枕鹤) 몇마리가 날개를 퍼덕이자 관광객들이 재빨리 발걸음을 다그쳐 삼삼오오 관학대(观鹤台)로 모여들었다.
서혜와 보호구 내의 두루미는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정경은 자연이 다시 한번 자룽에 보내준 생태선물이다.
2020년 흑룡강성 자룽국가급자연보호구 관리국 2급 연구원 왕문봉은 자룽의 변화를 견증했다.
2002년부터 중부 눈강인수공사를 통해 자룽습지에 물을 공급하고 있으며 이후 점차 장기적인 물공급 메커니즘을 구축하여 자룽습지의 생태복원이 진전되고 있다. 2000년부터 2020년까지 자룽보호구의 식생생산량(植被生产总量)을 두 배로 늘리고 명수(明水面)면적은 2001년 130㎢에서 600㎢ 이상으로 확대했다. 2018년 1기 자룽습지 핵심지역 주민 생태이전을 완료하여 효과적으로 발전과 보호의 갈등을 해소했다.
학명습지(鹤鸣湿地)
"자룽보호구의 생태가 좋은지, 이 동물들을 보면 알겠지만 겨울을 나고 오는 기러기를 많이 봤는데 예전엔 없었던 것 같아요." 학의 도시 사진애호가인 마영(马颖)은 말을 하는 사이 장화를 올리며 두루미와 기러기의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얕은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올해 58세이다. 조국의 좋은 강산을 두루 다녔지만 유독 고향에 애착이 간다. 학의 도시 사람으로서 자랑스럽고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자룽보호구에는 직원이든 관광객이든 촬영애호가든 물론하고 ‘습지 보호 선전원’이라는 공통한 신분이 있다.
우유르강은 자룽습지의 복지 깊은 곳까지 흘러들어간다.
왕문봉은 사회각계의 도움으로 자룽습지를 보호하는 것이 국제 습지보호의 모범이 됐다고 자부했다. 자룽습지모델의 영향으로 우리 성은 전국 최대의 성급 습지보호관리체계를 형성했다. 다년간 자룽보호구는 여러 중요한 국제회의와 과학연구프로젝트에서 습지와 학류의 양생경험을 공유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생태명함을 건네주었다. 생태관광, 과학교육, 문화창의… 그리고 더 다양한 선전교육활동으로 새로운 시대 학의 도시발전의 서막을 열었다.
자룽습지는 촬영애호가들의 천당이기도 하다.
매년 자룽습지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학을 구경하러 온다.
여름의 자룽습지는 마치 푸른 보물이 송눈평원에 박혀 있고 굴곡진 물길은 반짝이는 은빛 리본처럼 얽혀 있어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학의 도시 주민들이 생태환경보호사업의 책임과 지혜를 발휘해 만들어 낸 '학문화'도 전해지고 있다.
출처: 흑룡강일보
편역: 남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