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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버지 손은 약손 - 김순옥

2026-07-10 11:10:55

아버지는 2017년 11월 28일 96세에 인생을 마감하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남들은 아버지가 건강하게 장수하시고 복하게 돌아가셨으니 너무 상심하지 말라며 나를 위로했다. 엄마보다 십년 넘게 우리와 함께 지낸 아버지는 우리한데 짐이 되지 않았으며 돌아가실 때까지 나라에서 주는 우대금으로 생활을 하셨다. 아버지는 항상 허약한 나를 어루만져 주셨으며 남보다 힘이 약하면 꾸준한 견지력을 갖추고 공부를 열심히 하여 지혜가 있어야 살아남는다고 가르쳤다. 나는 아버지의 바다같은 사랑을 잊을 수가 없다.

아버지는 키는 180cm이고 부리부리한 쌍거풀 눈, 덩실한 코마루에 어깨가 쫙 펴진 체격이 반듯한 아주 멋진 남자였다. 마음도 아주 착하여 다른 사람을 잘 돌보고 대범하며 운동도 잘하셨다. 달리기는 따를 사람이 없으며 경기에 나가면 무조건 일등을 하셨고 축구도 아주 잘 찼다. 특히 아버지는 힘장수였다. 내가 여덟살 때 룡수공사와 투도공사가 합하여 운동대회를 하였다. 씨름에 나선 아버지는 만나는 상대마다 쉽게 이기고 결승전까지 진출하셨다. 그때 아버지 년세가 마흔셋이였다. 비록 년세는 많아도 모든 적수들을 이기고 끝내 일등이란 영예로 황소 한마리를 상으로 탔다. 온 마을에서는 경사가 났다고 축하하며 난리났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무척 좋아했다. 아버지는 항상 비실바실하게 태여난 나를 특별히 보살폈다. 어린 시절 나는 페염, 기관지염으로 앓다보니 기침을 달고 살았다. 기침을 너무 심하게 할 때에는 밤을 새군 하였다. 어느 하루였다. 밤 늦게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콜록거리며 잠을 자지 못하는 내가 너무도 안쓰러워 밤중에 불을 지펴서 물을 끓인후 더운 물에 꿀을 타서 마시게 하고는 따뜻한 손으로 잔등을 가볍게 만져주셨다. 신기하게도 끊임없던 기침이 띄염띄염해지다가 멈추어 나는 사르르 잠이 들었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는 촌에서 촌간부로 활약하셨다. 아버지는 화룡에 있는 현정부로 자주 회의하러 가셨는데 한번 회의하러 가시면 빠르면 삼일이 걸리고 늦으면 보름이나 걸렸다. 다른 애들은 엄마가 외출하면 손꼽아 기다리지만 나는 반대로 아버지를 손꼽아 기다렸다. 매일 버스 시간만 되면 마을 밖에 있는 탈곡장에서 목을 빼들고 아버지가 오시기를 기다렸다. 

며칠이 지나면 아버지가 오신다. 멀리서 걸어오는 아버지를 보면 나는 달려간다. 아버지는 “이쁜 셋째딸 아버지를 기다렸구나”라고 하면서 하늘 높이 안아주신다. 아버지는 가방에서 사탕 몇알을 꺼내서 나에게 주군 하셨다. 때론 귤도 사오셨다. 아버지는 귤을 우리 형제들에게 두알씩만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우리 몰래 감추셨다. 감춘 귤은 내가 심하게 기침할 때면 한알씩 꺼내여 나만 주셨다. 심술이 난 동생들이 언니만 준다면서 집을 발칵 뒤졌으나 끝내 귤을 찾지 못하고 헛물만 켰다. 후에 안 일이지만 아버지는 항상 찌그러진 광주리에 낡은 솜을 담고 그 속에 귤을 감추군 하였다. 

해마다 마을 남정네들이 개추럼 몇번씩 했는데 쌀이 귀한 세월에는 집집마다 아버지들이 드실 밥을 밥통에 담아가군 했다. 우리 아버지는 개탕을 드시고는 내가 눈에 밟혀서 매번 밥을 담아 간 밥통에 개탕을 담아 가지고 오셨다. 아버지는 다른 애들이 깨여나기전에 얼른 개탕을 먹어라면서 나를 깨웠다. 자다가도 개탕이란 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는 따뜻하고 맛있는 개탕을 게눈 감추듯 먹었다. 아버지가 이렇게 정성을 다하여 키웠지만 허약하게 태여난 나는 여전히 앓기만 하였다. 

어느덧 비실비실 앓던 나도 초중생이 되였다. 중학교는 집에서 십여리 잘되는 거리에 있어서 허약한 나는 결석할 때가 많았다. 초중 2학년 겨울 어느날, 강추위를 무릅쓰고 등교한 나는 리유없이 오후부터 입이 비뚤어지기 시작하였다. 너의 입이 한쪽으로 간다면서 웃는 애들도 있고 빨리 병원에 가라고 재촉하는 애들도 있었다. 나는 약 먹고 치료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병들기는 쉬워도 치료가 잘 되지 않았다. 4개월 침 맞고 약 먹고 토방법을 다 써도 입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으며 점점 코끝도 삐뚤어지고 눈도 한쪽으로 쏠렸다. 나는 “평생 입이 삐뚤면 어떻게 할가”라는 생각에 부모님 몰래 자주 울었다. 

온집 식구들이 삐뚤어진 내 입 때문에 애간장을 태우고 있을 때 우리집에 아버지의 사촌동생인 오촌 숙부가 일보러 왔었다. 숙부님은 나를 자세히 보더니 나처럼 입이 삐뚠 친구가 있었는데 지금은 치료가 잘 되여 입이 제자리로 돌아왔다면서 그 친구를 찾아가자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나를 위하여 먼길도 마다하지 않고 그 친구를 찾아 끝내 약을 사왔다. 아버지는 사온 약을 가루를 내고 술을 넣어 잘 버무린후 면보에 싸서 내 얼굴에 붙쳐주고는 또 회의하러 가셨다. 아버지가 회의하러 가신후 6시간 동안 약을 붙였더니 약독으로 얼굴에 콩알같은 물집이 생기고 벌겋게 퉁퉁 부었으며 화독으로 익어드는 아픔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삐뚠 입이 돌아올 기대감으로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눈물을 똑똑 떨구었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는 나의 얼굴을 보시더니 “아픔을 참고 긴 시간 견디여주어 장하다”며 눈물을 흘리는 나를 위로해주셨으며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도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내 아픔을 덜어주기 위하여 밤중에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김치 움에가 생배추를 가져왔다. 아버지는 배추잎을 뜯어 손바닥 우에 놓고 숨이 죽게 톡톡 두드린후 나의 얼굴에 붙쳐주셨다. 화상을 입었던 나의 얼굴은 차디찬 배추잎 덕분에 화독이 빠지면서 아픔이 좀 가라앉았다. 그후 한달가량 시간이 지나 얼굴의 상처가 회복되면서 내 입도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먼길을 다녀 약을 구해오신 아버지와 숙부님께 너무도 감사하여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나는 항상 아버지의 아픈 손가락이였다. 부모님 곁에서 나는 밭일을 하루도 하지 않고 허약하다는 리유로 곱게 자라 시집을 갔다. 그러나 시집에서는 나에게 양보하지 않았다. 농촌집으로 시집간 나는 매일 밭일을 할 줄 몰라 눈물을 흘렸고 시집에서 따돌림을 당하였으며 농사일을 배우느라 엄청 고생하였다. 아버지는 시집간 나를 더는 품을 수 없게 되자 손수 쓰기 좋은 호미를 만들어주시고 낫도 따로 챙겨주셨다. 아버지는 모내기철에는 항상 다른 형제들을 우리집에 보내여 모내기를 돕게 하셨으며 가을에도 꼭 방조군을 보내주셨다. 비록 나는 농사일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아버지와 형제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마을에서 모든 농사일을 제일 먼저 끝낼 수 있었다. 아버지는 항상 다른 딸들 앞에서 “순옥이는 몸이 허약하니 농사철에는 너희들이 항상 도와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여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힘든 일들은 다른 딸들한테 시키고 나한테는 힘은 적게 들어도 인내성이 필요한 일들을 시켰다. 아버지는 허약한 신체보다 삶에 대해 옳바른 태도가 중요하다며 다른 사람한테 기대지 않고 자립하여 살기를 권고하였으며 나도 인생을 꼭 잘 살수 있다고 응원해주셨다… 

몇십년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가 위급하다는 언니의 전화를 받고 나는 허둥지둥 택시를 타고 아버지 집으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다. 나는 급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를 안고 목놓아 울었다… 몇년전 나는 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쳤다. 그후로는 머리가 몹시 아파 고생했다. 글이라도 좀 쓰려고 집중하면 머리에 쥐가 나 당장 터질 것처럼 아팠다. 옛날부터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돌아가신 분의 손을 잡고 아픈 부위를 만지며 간절히 청을 들면 돌아가신 분의 령혼이 아픈 사람을 도와 병을 낫게 한다고 한다. 그래서 큰언니는 아버지를 붙잡고 통곡하는 나의 머리에 아버지 손을 얹어 내 머리를 쓸어 만지면서 “아버지~ 아버지~ 순옥이 머리가 몹씨 아파요. 아버지~ 아버지 도와주세요. 순옥이 병을 아버지가 다 갖고 가세요. 순옥이는 아버지가 제일 이뻐하는 딸이니까 꼭 순옥이 골병을 낫게 해주옵소”라고 애원하며 아버지한테 빌었다. 나도 아버지를 부르며 흐느껴 울면서도 “아버지~ 아버지 내 머리를 안 아프게 해줍소”하면서 아버지 손을 쥐고 간곡히 청을 들었다. 

비록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지만 아버지 손은 여전히 나한테는 약손이 되여 나의 머리를 어루만져주셨다… 자식은 부모앞에서 항상 제 욕심만 차린다. 아버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지만 생전에 효도 한번 제대로 못한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한테 병을 낫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자신이 더없이 부끄러웠다… 나는 마음이 찢어지듯 아프고 두눈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애뜻한 눈물이 두볼을 타고 샘처럼 흘렀다. 나는 점점 식어가는 아버지를 안고 애타게 불렀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세상에 태여나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허약한 나를 잘 보살펴 주시고 애지중지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버지~ 아버지”하고 목이 쉬도록 부르고 불러도 아버지는 두 눈을 꼭 감으시고 대답이 없었다. 나는 찢어지는 마음을 달래며 “아버지, 나의 존경하는 아버지, 불효한 이 딸에 대한 근심과 걱정을 훌훌 털어버리고 고통과 아픔이 없는 하늘 나라로 훨훨 날아 가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두손 모아 기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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