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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리혼 - 유미화

2026-06-29 10:54:22


부탁이 아니라 통보였다.

“응, 그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는 끊겼다. 짧은 통화였지만 가슴 한켠이 무거워졌다. 그 목소리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이 없었다.

다음 날, 나는 약속시간보다 일찍 다방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볶은 원두향이 부드럽게 퍼졌다.

창가 해빛이 비스듬히 드는 자리에 선자가 앉아있었다.

김이 흐릿하게 오르는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쥔채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전보다 살이 빠져 얼굴선이 또렷해졌고 눈 밑에는 옅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무슨 일이야?”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선자가 고개를 들였다.

눈은 맑았지만 깊게 가라앉아있었다.

“나, 리혼했어.”

순간 말문이 막혔다.

“선자야, 무슨 소리야… 너희 집 잘 살잖아. 남편도 의사고… 다들 부러워했는데.”

선자가 쓰게 웃었다.

“겉으로만 그랬지.”

그녀의 이야기는 천천히 흘러나왔다.

오래된 상처의 딱지를 조심스레 떼여내듯이.

선자는 원래 눈부신 사람이였다.

백옥같은 피부, 윤기 흐르는 검은 머리카락, 단정한 말투. 공부도 잘해 늘 주목받았다.

소개로 만난 남편과 3년 련애끝에 결혼했다.

남편은 중국의 유명한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였다.

결혼초 그는 다정했다. 선자의 어깨에 담요를 덮어주고 늦은 퇴근에는 미안하다며 손을 꼭 잡아주던 사람이였다. 집안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일도 자연스럽게 맡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집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남편은 녀자들을 가까이했다. 병원 동료, 환자 보호자… 리유는 늘 그럴듯했다.

처음에는 웃어넘겼다. 그러나 낯선 향수가 묻은 와이셔츠, 늦은 귀가, 잠긴 휴대전화는 더이상 변명이 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녀자를 집으로 데려왔다.

“잠깐 일 이야기만 하고 갈 거야.”

그 말에 선자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집은 더이상 안식처가 아니였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가슴이 조였고 수화기 너머로는 녀자의 비웃음이 흘러왔다.

“야, 넌 왜 아직도 안 죽니?”

그 말은 칼날처럼 선자의 마음을 깎아냈다.

선자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남편과 대화하려 했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렸다.

하지만 남편은 변하지 않았다.

녀자는 한명이 아니였다. 협박과 조롱의 전화가 이어졌지만 남편은 오히려 선자를 탓했다.

“질투하지 마. 다 착한 사람들이야.” “집에서 애나 잘 보고 우리 부모님이나 잘 모셔.” “난 잠깐이야. 가정은 지킬 거니까 걱정 마.”

선자는 교사였다. 가정의 균렬이 밖으로 새여나갈까 두려워 참고 또 참았다.

그러나 끝내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선자는 짐을 싸들고 다른 도시로 떠났다. 그녀는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고 그 이야기를 했다. 마치 오래전에 읽은 소설의 한장면을 말하듯 담담하게.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아팠다.

3년 후 선자는 다시 나타났다. 더 말랐지만 표정은 이상하리만큼 평온했다.

“다시 같이 살게 됐어.”

남편이 심장수술을 받게 되자 곁에 있던 녀자들은 모두 떠났다. 시댁에서도 등을 돌렸다.

남편은 선자를 찾아와 울며 매달렸고 아들도 아버지가 불쌍해서 용서해 주자고 선자와 말했다.

선자는 결국 병원 침대곁을 지켰다. 밤새 수액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긴 시간을 버텼다.

“그래도… 사람이잖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나 1년 뒤 모든 것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어느 날 밤 술냄새를 풍기며 남편이 녀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오늘은 네가 나가 있어. 요즘 검사가 심해서 려관 잡기 힘들어.”

그 말이 마지막이였다.

선자는 주방으로 걸어갔다. 차가운 바닥의 감촉이 맨발에 전해졌다.

싱크대우의 칼이 희미한 불빛에 번뜩였다.

그 순간, 지난 세월의 모욕과 모멸, 밤마다 삼켜야 했던 울음이 한꺼번에 치밀어올랐다.

그녀는 돌아와 남편의 가슴을 찔렀다.

짧은 비명. 선자는 칼을 내려놓고 외투를 입었다.

새벽 공기는 서늘했고 하늘은 무심하게 푸르렀다.

그녀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경찰서를 향해 걸어갔다.

마치 오랜 짐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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