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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나의 아버지 - 리춘련

2026-06-29 10:54:12

아버지가 가신지도 60년이 넘었구나. 오래될수록 내 마음에 앙금이 남아 나를 괴롭히고 씻을 수 없는 자책감에 눈물이 난다. 아버지는 심성이 여리고 정직하며 착하여 수양이 있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성질이 온순한 편이라 말이 적은 사람이다. 묻는 말만 대답하고 자식들만 보면 환한 웃음으로 화답한다.

그때 시절 드물게 중국글도 볼 줄 알고 우리글도 읽을 줄 알았다. 그래서 우리에게 매사마다 도리로 교육하면서 매를 댈 때는 본인이 회초리를 갖고 오게 해서 장단지를 치면서 훈육했다. 거지가 오면 거저 보내지 않았다. 그때는 동냥을 다니는 사람도 많았는데 아버지는 서슴없이 백미 한사발씩 퍼주었다. 내가 “아버지는 바보야, 우리도 살기 힘든데!”라고 하면, “얘야, 오죽하면 동냥하겠니? 우리는 그래도 집이 있고 가족이 있잖니”라고 타일렀다.

하루는 동생이 엽전을 입에 물고 있으니 노발대발하면서 돈은 귀중품이지만 수천수만의 손을 거쳐 다니기에 아주 더러운 물건이라 했다. 이렇게 솔직하고 정직한 아버지의 교육을 받아 우리 7남매는 성실하게 자랐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흠이 있다면 농사일에 뻐꾹이였다. 젊어서 무얼 했는지 누구도 모른다. 오직 농사일만 안 했다는 것만 안다. 그래서인지 일솜씨가 없어 내가 사회에 참가했을 때 아버지는 생산대 일에서 꼴등 부수를 타고 있었다. 생산대에서 김을 맬 때는 한사람이 네고랑을 안고 끝까지 가는데 아버지는 몇십미터 떨어져서 따라왔다. 딸은 앞에 선 선줄군이고 아버지는 뒤에서 보초군처럼 따라다녔다. 나는 너무 창피해서 울면서 아버지에게 일하러 나오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는 소리를 안 들으려고 악착같이 농사일을 배웠기에 어디서든 선줄군으로 활약했다. 생산대에서 인정받아 부녀대장을 맡고 나의 푸른꿈을 키웠다.

아버지가 농사일을 잘 못하니 생산대에서 부업으로 탄광에 보내 일하게 했다. 한해 겨울 일하고 돌아오더니 기침을 쉴새없이 하였다. 어머니는 이를 해수병이라며 해마다 날이 추워지면 기침을 하다가 이제 봄이 와 따뜻하면 기침도 멎는다고 하셨다. 저녁이면 주무시지도 못하고 베개를 두개씩 올리고 앉아서 날을 밝혔다. 그때 생각하면 나는 왜 그리 바보였는지 모른다. 엄마가 저 병은 못 고친다던 말만 믿고 기침약을 한번도 사드리지 못했던 것이 후회되여 내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 하다. 탄광에 안 가셨더라면… 하는 후회와 원망으로 세상을 살았으니, 말해 무엇하랴?

아버지는 그렇게 좋아하시는 두부도 실컷 못 드셨다. 당시 동네는 두부방이 없어 십리를 가야 살 수 있었고 째지게 가난한 우리 집은 두부를 사먹는다는 것이 큰 사치였다. 명절이면 엄마가 순두부를 만들었는데 그때 아버지가 순두부에 양념을 쳐서 그렇게 맛있게 드시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두부만 보면 아버지 생각에 목이 멘다.

아버지, 우리 아버지, 이제야 이 못난 딸이 무릎 꿇고 용서를 빕니다. 고생만 하다가 떠나신 아버지, 근심 걱정 없는 곳에서 마음 편안하게 하고싶은 일 즐기면서 사세요.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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