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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겨울 동화 (외 5수) - 리영해

2026-04-03 11:17:36

수정같은 별들의 노래가
은빛 바람에 실려 내려와
고요한 마음의 호수에
흩어지는 꽃잎이 되네


파도처럼 쌓인 그리움 우에
흐르는 달빛이 스민
꿈의 실타래를 풀어
내 령혼의 눈을 뜨게 하리


사랑이로구나
태양같은 두 눈이
고요한 내 세상에
불씨를 터뜨리니


수줍은 별빛 속에
흔들리던 고백의 꽃잎이
이제는 네 숨결에
눈보라로 피여오르고


네 무릎 우에 흐르는
시간의 강물 속에서
동화처럼 수놓은
우리의 영원이 내리네


달빛 발효


보름달이 익어
술독에 오르는 밤
수천 빛깔 그릇에
부서진 달빛을
메마른 강바닥에
은조각처럼 부어놓는다


떠도는 유리잔 사이로
흩어진 별빛들이
차가운 유리 우에
이름을 적시네


밤이 깊어
빈 의자에 앉은
바람소리가
부서진 등불을 삼키는 소리


메말랐던 우물에
고인 달빛을 한사발 퍼 올리니
손바닥 우로 온 하늘이 흔들린다


산마루에 걸린 검은 부채
펼쳐지지 않은 명절의 그림자
떠오르는 달이 삼킨
모든 망각의 맛


미움


검은 씨앗 하나
가슴둑에 묻히니
고이던


내 령혼 뜰에
스민 회색 그림자
해살에 베어내니


눈빛 속 그늘진
뿌리까지 뽑히니


어둠이 스스로
빛을 찾나보다


한줄기 은빛 이슬
고인 자리에
사랑이란 이름으로
터밭이 피여나다


꿈길


아침이 유리 조각 사이로
잠든 빛 한송이를 내려놓을 때
펼치지 못한 주름 속에
하루가 접힌 채로 있으니
피여난 것만 쫓지 말라 한다


한낮이 먼 바람에 실어
깨여나지 않은 계절의 봉우리를 보내오니
밟아 보지 못한 땅이
발끝까지 닿아 있는데
높이 선 산만 그리워하지 말라 한다


저녁이 흩어진 구름결에
다 쓰지 못한 밤의 문장을 새길 때
붉은 잉크로 채워지지 않은
빈칸들이 흔들리지만
흐느낌이 마르게 두지 말라 한다


긴 그림자 사이를 걸으며
이슬에 적신 마음을 주었네
세월이 스칠수록
빛깔은 더 짙어져
바람 같은 너를
가슴이라는 들꽃밭에 묻으리


단풍나무


비단빛 구름, 안개 장막 스스로 걷히니
별빛 속삭임, 낮게 흐르는 강물 실이 되어
선채로 잠들어 찬란한 밤을 지키며
꿈속에 멈춘 새벽달을 높이 드높인다


한평생 달빛에 뼈를 적시여 살아가니
사무치는 향기에 나비 혼이 스며들고
향기로운 눈빛으로 옥 나무를 스치면
한줄기 물소리에 이야기꽃 피여나네


산 그림자 흔들릴 때 흩날리는 락엽이
은하수에 적신 발자국 별이 되여
고요히 돌아선 계절의 문턱에 서라
흐르는 달빛에 목숨을 씻는 구름이여


귀향


오래된 그림자여
새벽과 황혼 사이를 맴도는 너와
맺었던 동행의 계약을 접어
고향 별빛에 뿌리내리리라
온 밤하늘을 열어 너를 놓아주니
달빛이 짜 내린 틈새 같도다


내 안의 사막이여
너는 황페함의 다른 이름이 아니리라
네 뜨거운 가르침 아래
한알의 모래도 스승이였으니
바람의 흔적을 읽는 법
고요에 시간의 물결을 새기는 법


이성이 쌓아 올린 등대마저
파도에 기초를 흔들렸건만
빛을 삼키는 용광로 깊은 곳에
억년을 응고한 종유석이 흔들리네
거꾸로 선 숲이 지각을 향해 뻗어 가니
우리는 차가운 불꽃에 박수를 보내였도다


무르익은 모든 인연은
깊은 바다에 가라앉은 등불처럼
다 하지 못한 말들을
수면에 뜬 나이테로 남기네
내 모든 목마른 밤들은
네가 가리킨 위도로 흘러가고


재빛 너머 더 깊은 곳에
이름 모를 불꽃이 회전하니
태초의 빛을 등진 문지기가
여전히 허리를 곧게 펴고
남은 온기와 밤의 거리를 재고 있네


그리하여 나의 귀향은
마침내 허무를 가로지르는 강이 되니
바다에 닿기 직전에야 비로소
네가 펼쳐 보인 광활함을 알겠네
하늘을 끝없이 비추던
그 태초의 바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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