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에 흰구름이 뭉게뭉게 피여나고 따뜻한 해볕이 소구역 구석구석을 따사롭게 비추는 9월의 어느날 우리 소구역에 엄마 고양이와 새끼고양이 두마리가 나타났다.
두달 전에도 엄마고양이는 가끔씩 새끼 두마리를 데리고 우리 소구역에 나타나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고양이 엄마는 나무에도 오르내리며 자기의 재간을 새끼들한테 배워주고 귀여운 새끼고양이들은 엄마를 따라 기술을 련마하느라 나무를 오르고 내리면서 무척 귀엽게 놀았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나는 새끼고양이를 붙잡아 안아보고 싶었다. 내가 새끼고양이한테 접근하면 엄마 고양이는 무섭게 소리내며 털을 곧두세우고 눈알을 굴리며 어찌나 사납게 달려드는지 새끼 언저리에도 가지못했다. 나는 만져볼 생각을 아예 버리고 먼 발치에서 고양이 가족이 즐겁게 뛰노는 전경을 보면서 세상에서 모성애만큼 큰 사랑은 없다며 고양이 엄마를 자랑스러운 눈길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나 오늘에 만난 어미 고양이는 두달전에 보았던 다정한 모성애는 어디로 갔는지 새끼고양이들을 돌보지 않을 뿐더러 자기를 따르면 흉악하게 털을 세우며 소리를 찌르고 가까이에 접근하면 사정없이 귀빰을 때렸다. 엄마한테 봉변을 당한 새끼고양이들은 영문을 모른채 저만치 떨어져서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따라다녔다. 아마도 엄마가 새끼들더러 이젠 독립하여 자기절로 살아가라고 혹독하게 훈육을 하는 것 같았다.
엄마라면 자식을 자립심이 있고 독립할수 있게끔 키워야 언제 어디서든지 자식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 남을 것이다. 고양이 엄마가 새끼고양이를 바르게 키우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현재 사회를 돌아보게 된다. 지금은 집집마다 아이들이 왕이다. 쥐면 부서질까봐 놓으면 다칠까바 로심초사하며 키운다. 애들이 뭘 요구하면 뭘 사주고 심지어 10살이 넘어도 양말까지 신겨주며 키우는 집이 수두룩하다. 결혼 후에도 부모가 퇴직비를 절약하여 아들, 딸한테 생활비를 보태주는 집들도 흔하다.
우리는 팔형제가 조롱조롱 태여 났기에 엄마 사랑을 별로 받지 못하고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자랐다. 락후하고 가난한 세월 탓에 배부르게 먹지 못하고 따뜻하게 입지도 못했다. 그때 그 시절에는 누구네 집이나 생활이 비슷하였기에 원망도 없었다. 누구나 생일이 돌아와도 빛다른 음식은커녕 배도 채울수 없었다. 선물이란 상상도 할 수가 없었으며 모든 걸 자립해야 했다. 가난했기에 우리는 어려서부터 구멍난 옷과 양말, 신같은 것을 저절로 기워야 했다. 엄마가 일밭에서 늦게 돌아오기 때문에 때시걱도 우리가 도맡아 했으며 동생들도 우리끼리 돌보며 키워야했다.
어려서부터 모든 걸 자기절로 했기에 홀로서기를 일찍이 련습했다. 한해 두해 커가면서 나의 마음속으로 장차 커서 결혼하고 엄마가 되면 자식을 애지중지 사랑하며 아무일도 시키지 않고 곱게곱게 키우기로 결심했다.
드디여 25세 꽃나이에 결혼하여 아들, 딸을 낳아 세상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애지중지 키웠다. 특히 둘째로 태여난 딸에 대해서는 특별히 관심하며 빨래 한번 시키지 않았다. “녀자 아이는 집에서 곱게 키워야 시집도 잘 간다”며 그저 공부만 잘하고 도덕에 어긋나는 일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딸애도 엄마의 마음을 알았는지 공부를 잘하고 바르게 잘 커서 대학시험에서 625점이란 높은 성적을 따냈다.
비록 중점대학에 입학했지만 엄마곁을 떠난 딸애는 대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매일 눈물을 흘렸다. 침대정리, 옷정리, 빨래도 할 줄 몰라 한침실에 있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자립하지 못하는 딸애는 엄청 고생하였으며 2개월 동안이나 눈물을 흘렸다. 대학교에 가기 전에 딸애한테 이런 일들을 일찍감치 가르쳐 주었더라면 아무일 없었겠는데 라고 생각하며 후회막급이였다. 딸애는 눈물을 흘리며 가사를 가르쳐주지 않은 엄마를 원망하며 같은 침실에 있는 친구들한테서 모든 걸 배우며 힘들게 대학교 생활에 적응했다.
딸애는 어느덧 대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에 통과하여 정법 계통에 취직했다. 딸애한테 평시에 가사를 시키지 않았기에 감자 껍질을 깎는 것도 서투렀다. 늦게나마 교훈을 얻은 나는 이런 딸애에게 계속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하지 않았다. 며칠후 출근하는 딸애를 집에 두고 나는 돈 벌러 한국으로 갔다. 집에 혼자 남은 딸애는 부득불 먹고 살기 위해 료리를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내가 1년후에 집에 왔을 때에는 딸애는 그동안 고생하며 자립한 덕분에 가무일을 능란하게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성장하는 딸애를 보면서 자식은 귀하다고 어루만지지만 말고 어려서부터 적당히 가사도 시키고 가르치며 키워야 된다는 도리를 깨달았다.
몇년후 딸애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들까지 낳았다. 지금은 단위에서 맡은바 일을 착실하게 잘하여 해마다 선진사업일군으로 표창받고 있을 뿐만아니라 가정에서도 살림살이를 알뜰하게 하며 가정을 화목하게 잘 꾸리며 아이도 바르게 잘 키우고 있다.
물질이 풍요롭고 발전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 엄마들은 자식들한데 어려서부터 자립성을 키워주어 언제든지 독립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
미물인 고양이도 후대를 자립하도록 엄격하게 키우는데 인지능력이 발전한 고급동물인 사람이 그 위해성을 깨치지 못하니 비애가 아닐 수 있다. 후대들이 자립능력이 강하고 강대해져야 나라가 희망이 있고 수천년간 이어진 효문화가 제대로 발전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