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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상식의 장벽 - 채송화

2026-03-11 15:07:05

어느 해 할빈의 겨울,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이 찌프려 있었다. 눈이 내릴 조짐이였다. 할빈에 첫눈이 내리던 날이였다. 출근하는 나에게 안해가 우산을 건네며 쓰고 가라고 했다. 눈이 내려 녹으면 옷과 머리가 젖는다는 것이였다. 한국에서는 눈 오는 날에 우산을 쓰고 다닌단다. 나는 처음에는 쑥스럽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런대로 우산을 들고 출근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한 동료 친구와 점심 식사 후 건강을 챙길 겸 거리를 걷는 습관이 있었다. 하늘에 구멍이 뚫렸는지 그날 점심시간에도 아침부터 내리던 싸락눈이 계속 내렸다. 나는 자연스럽게 우산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그것도 할빈시의 중심가인 중앙대가로 말이다.

점심시간이라 거리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회사 대문을 나서며 안해가 챙겨준 우산을 펼쳐 들었다. 동행하던 친구는 웃으며 나보고 저 멀리 가라고 했다. 겨울에 남자가 우산을 들고 다니다니,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니 부끄러워 같이 가기 창피하다는 것이였다. 한겨울에 우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였다. 그것도 사내 녀석이… 동행하는 자신도 낯이 깎인다고 했다. 우산을 든 나 자신도 다소 쑥스러웠다. 다행히 우산을 든 녀자가 우리 앞을 지나갔다. 나는 저도 모르게 “우산 든 사람 있네…”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조금 더 걸으니 또 우산을 든 녀자가 마주쳐 걸어왔다.

“보라, 겨울에 우산을 들고 다니잖아…”

나는 변명이라도 하듯 중얼거렸다. 동행하던 친구는 들었는지 말았는지 아무 대답이 없었다.

한겨울에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이상한 짓으로간주하며 상식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야 하고 상식에서 벗어난 ‘이상한’ 짓을 해서는 안되는 줄 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며 오십여년을 살아온 것 같다.

직장에서 있었던 우스운 일이 하나 더 있다. 사람들은 보통 화장실에 들어가 용무를 본 후 손을 씻는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인가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손을 씻고 들어가 소변을 본 후 나왔다. 북경에 사는 한 친구가 알려준 덕분에 생활 습관을 바꾸었다. 북경 사람들은 남자가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손을 씻고 들어간단다. 그래야 손에 묻은 세균 때문에 감염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도리가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소변 보기 전에 손을 씻는 습관이 생겼다. 나의 이런 모습을 본 직장 동료는 ‘이상하다’고 말했다.

또 화장실 이야기다. 퇴직 후 려행을 떠나 어느 도시에 도착했다. 고속렬차를 타려고 기차역에 도착해 화장실을 찾았다. 멀리서 화장실 하나가 보여 그곳으로 갔더니 녀자전용 화장실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남자라는 글자는 보이지 않았다. 의아하게 생각하며 돌아서서 옆 건물로 걸어갔다. 그곳도 화장실이였다. 이 화장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대로 입구에 남, 녀라는 두글자가 모두 적혀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화장실을 지을 때 남녀 1:1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남녀 화장실 칸을 같은 개수로 똑같이 짓는다. 그런데 어디를 가나 녀자화장실 앞에는 대기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바로 남녀의 화장실 사용 시간 차이 때문이다. 도리대로 하면 녀자화장실 칸을 남자화장실보다 더 늘이면 되지 않는가? 이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우리는 그저 남녀 1:1이라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지금 와 보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남녀 화장실이 있고 그 옆에 별도로 녀자 전용 화장실을 새로 설치한 그 기차역이야말로 간단한 문제를 쉽게 해결한 것 같다.

지금 우리는 고정관념이라는 보이지 않는 거미줄에 묶여 있는지도 모른다. 동네에서 흰돼지만 보고 자란 사람은 돼지털이 다 희다고 우기고 흑돼지만 보고 자란 사람은 돼지털이 다 검다고 우긴다. 상식의 장벽에 아집만 생겼다.

옛날 우리는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이 상식이였고 지구가 아주 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대과학은 지구는 평평한 것이 아니라 둥글고 우주 공간에서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립증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아주 간단한 도리인 것 같지만 이런 상식의 장벽을 뚫는 데는 몇백년, 아니 몇천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바로 이런 상식의 장벽을 넘어서야 과학이 발전할 수 있었다.

상식은 누구나 알고 있고 일반적으로 당연시하는 생각이다. 바로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식의 장벽이 생긴다. 때로는 상식의 장벽이 우리를 고정관념에 가두어 놓고 옛사고의 늪에서 헤여나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우리는 기술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발전 과정의 최대 장애는 기술이 아니라 관념이다. 우리는 아직도 케케묵은 상식에서 벗어나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그만큼 우리가 낡은 상식에 길들여져 있다는 말이다.

이젠 상식의 장벽에서 벗어나 좀 더 합리적으로, 좀 더 과학적으로 살수는 없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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