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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엄마의 유산- 정정숙

2026-02-05 15:04:37

하늘에서는 마치 밑창빠진 듯이 비줄기가 내려와 땅에 살처럼 꽂힌다.

창밖에서 주룩주룩 내리는 비소리에 내 마음이 부산하다.

눈이 오면 친구가 그립고 비가 오면 왜서인지 고인이 그리워난다. 오늘따라 엄마가 유별나게 그리워진다.

나의 손에는 색 바랜 엄마 사진 한장이 쥐어져 있다. 볼수록 정답고 자애롭고 착한 어머니이다. 어머니의 피부색은 눈같이 희고 쌍겹진 두 눈에서는 항상 광채가 돌고 예지로 빛났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우리 엄마를 두고 러시아 미녀같다고도 했고 또 외국 영화배우같다고 칭찬들이 자자했다. 엄마는 시부모를 잘 공대했고 시동생들을 극진히 사랑해 주었으며 올망졸망한 우리 6남매를 애지중지 잘 키워냈다.

엄마는 항상 자식들한테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타일렀다. 비록 가정은 구차했지만 우리 집은 늘 화기애애 했으며 집안에서는 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돌이켜보면 엄마의 존재야말로 빛과 공기와 같았으며 추우면 더운 바람 주고 더우면 선선한 바람을 보내주는 에어컨같은 존재였다.

이처럼 단란하고 행복한 우리 가정에 불행이 덮칠 줄 누가 상상했으랴… 1960년 겨울 설한풍이 휘몰아치는 대한 날에 뜻밖에도 13살 되던 나의 둘째오빠가 급성 신염으로 세상을 떠나갔다.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엄마는 하늘이 무정타고 대성통곡하면서 뒤산에 언 땅을 파헤치고 자기의 살점을 묻어야 했다. 삼검불처럼 머리가 푸시시하고 옷차림이 란잡하고 완전히 실성해버린 엄마를 큰오빠가 엉엉 소리내 울면서 달랬다.

“엄마 어서 빨리 집으로 가요. 막내 동생이 배고파하는데 어떻게 해요?”

그 소리에 정신이 펄쩍 들었는지 엄마는 입술이 터지도록 꼭 깨물고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움직이며 집으로 향했다.

태여난지 한달되는 막내동생이 언니 품에서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다. 엄마는 피눈물을 삼키며 막내한테 젖가슴을 내주었다. 하지만 몸이고 마음이고 땅땅 얼어붙은 상황에 어디서 젖이 나오겠는가? 엄마의 심정을 알 수 없는 막내는 젖이 안 나온다고 발버둥치며 울었다. 엄마는 막내마저 잃을가봐 으스러지게 끌어안았다.

그 이후부터 엄마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하얗고 말쑥하던 얼굴이 누르끄레해지고 수척해갔다. 설상가상으로 온 집안의 기둥이였던 아버지가 척주결핵으로 몸져 누워 꼼짝 못하게 되였다. 모든 짐이 가냘픈 엄마의 두 어깨를 지지눌렀다. 엄마는 눈앞이 캄캄해났고 억장이 무너졌다. 생각할수록 살길이 막막하기만 했다.

그렇게 모진 풍파로 하여 엄마는 웃음과 결별하고 말았다. 꼼짝 못하는 남편을 두고 말똥말똥 눈뜨고 자기만 쳐다보는 자식들을 저버리고 죽어버릴 권한도 없었다.

하지만 “녀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엄마야말로 그랬다. 엄마는 생계를 위하여 일했다. 100근 되는 감자국수 토리를 메여 날랐고 60여근되는 사과배 광주리도 악을 쓰고 메여 날랐다.

엄마는 날마다 닥치는대로 막일을 찾아했다. 그처럼 무거운 시멘트 포대도 나르면서 돈 벌어 아버지의 병치료를 하고 어린 자식들을 억척스레 키웠다. 그러면서도 자식들을 올바르게 키워야 한다는 신조만은 굽히지 않았다. 늘 우리들에게 “원칙을 어기지 말고 남을 해치지 말고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였다. 지금도 엄마의 그 말씀이 나의 귀전에서 맴돌아친다.

‘꼬리없는 소’라 불리던 엄마였건만 어느 날인가 심한 영양실조로 일하다가 쓰러지며 허리를 크게 상하였다. 그때 엄마의 나이 50세였지만 이미 치아마저 거의 다 빠져나갔고 머리는 언녕 파뿌리가 되여 환갑을 훨씬 넘긴 파파늙은이처럼 돼 보였다. 매일이다 싶이 늘어나는 얼굴의 주름살은 눈물겨운 고난이 엄마한테 남겨준 뼈아픈 흔적이였다. 더는 무거운 로동을 할 수 없게 된 엄마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얼음과자 대를 깎으면서 적지만 소비돈이라도 벌기 위해 이를 악물고 일하였다. 굳은 살이 박힌 손바닥에 물집이 터져 진창이 되였으며 손등은 소나무껍질처럼 갈라 터지고 거칠어졌다.

녀자란 결혼하고 자식을 낳으면 어머니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을 감당해야 하고 자식을 위해 헌신적으로 발 벗고 나서야 하며 견강하고 자상하고 부드럽게 사랑을 줄 수 있는 녀성이여야 한다. 우리 엄마가 그랬다.

엄마는 평생 쓰라린 아픔을 가슴 속에 묻어버렸고 많은 슬픔과 고통을 헤쳐나가면서 갖은 역경을 이겨냈다. 우리 엄마를 보면 현처량모가 무엇인지를 대뜸 알아낼 수 있다. 쪼들린 생활 속에서 어린 자식들을 어엿하게 성장시키면서 아버지가 쩍하면 술투정을 부려도 원망 한마디 없이 대범하게 올바른 삶을 영위해가기 위해 모든 걸 참고 감내하였다.

엄마의 운명은 정말 파란만장하였다. 어느 사이 자식들이 다 성장하여 인젠 효도를 받으며 편안한 로후를 보내야 할 때가 되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돌발성 뇌출혈로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

75세, 지금에 딱 내 나이다. 이제 겨우 마음 편히 앉아 락을 볼 때에 이르자 그만 세상을 떠날줄이야?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려운 가정형편에 그 흔한 파마머리 한번 못해보고 화장품 한번 만져보지도 못하고 산뜻한 치마저고리 한번 입어보지도 못하시고…

엄마는 자식을 업어 키우느라 등이 휘였건만 자식들은 커서도 휘여든 엄마 등을 펴드리지 못했다. 엄마가 세상을 뜬 후에야 생전에 뜨거운 물 한컵이라도 더 대접을 못해 드렸을까… 라는 이런저런 후회만 뼈저리게 안겨온다.

추석날 나는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워 하염없이 추석달을 바라보며 내가 지은 시 한수를 보내 드렸다.


추석달 바라보며


푸른 밤하늘 둥그런 추석달 속에서

무명치마 입으시고 환히 웃으시는

울 엄마


하얀 피부 하얀 머리결이

늘 천사 같으신

울 엄마


평생 일만 하시느라

언제 춤 추실 생각이나 하셨겠어요

생활에 시달리시며

어찌 노래할 생각이나 하셨겠어요


오늘은 상아와 더불어

달이 무색하도록 즐기세요


엄마가 살아계시면 올해 년세가 만 106세이다.

나는 두 손 모아 엄마가 가는 길은 마냥 꽃길이기를 빌고 또 빈다. 울 엄마가 자식들한테 남겨준 것은 금전도 재물도 아니다. 엄마가 남겨준 ‘유산’은 바로 “사람이란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간곡한 당부 뿐이였다.

우리 형제들은 한자리에 모일 때마다 엄마가 남겨놓은 이 소중한 유산을 고이 간직하고 저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마음으로 평생을 다 할 것을 다지고 또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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