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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산시 흥광촌 오경호 당지부서기의 향촌진흥 이야기

2025-12-25 11:22:22

"마을 어르신들을 잘 모시고 그들이 만년에 행복과 존엄을 느끼게 하는 것이 제 일입니다." 밀산시 화평조선족향 흥광촌(和平朝鲜族乡兴光村)당지부서기이자 촌장인 오경호 씨(吴景昊 54세)의 말은 간결하지만 그속에는 20년에 걸친 뜨거운 열정과 헌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2005년 남방 외자기업의 직장을 뒤로한 그의 귀향은 한 마을의 운명을 바꾸는 시작이였다. 

흥광촌 조선족마을의 이야기

흥광촌은 80년도에 인구가 많을때는 295호에 905명이 살고 있었다. 현재는 25호에 45명이 살고 있다. 45명중에서도 35명이 60세이상이며 최고령 로인이 87세이다.  토지면적이 5976무, 인구당 평균 4.5무, 이는 주변 마을들에 비해 3분의 1 정도의 적은 토지에 속한다. 쌀값도 근당 3원좌우로 쌀농사를 해서는 부유해질수 없는 선천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하기에 예전부터 살림이 구차하여 빈곤촌으로 알려진 곳이다. 그나마 마을사람들은 마을 동쪽을 지나는 밀산시에서 흥개호관광지로 통하는 길옆에 음식점을 차려서 부업으로 얼마간의 수입을 올릴수가 있었다. 

오경호씨는 흥광소학교, 동명초중을 거쳐 밀산조선족중학교를 졸업하였다. 당시 고중을 다닐때에만 해도 한 학급에 문과생 40여명, 리과생 30여명 합계 70여명이 되였다. 

고중을 졸업하고 흥광촌의 탄지부서기, 민병련장을 하다가 러시아 장사를 3년했다. 1998년에는 대대 출납을 맡았다. 그후 남방으로 돈벌이를 떠났는데 강소성 서주(徐州)전자공장에서 설비기술자로 근무했다. 그리고 2003년도에는 광동성 심천(深圳)에서 2년반 외자기업에 근무하기도 하였다. 그의 이러한 풍부한 경험들은 고향에 돌아와 일처리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되였다. 

그러다가 마을사람들의 부름을 받고 2005년도에 다시 귀향하여 마을의 회계로 근무하게 되였다. 

당시 심천의 외자기업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마을의 어르신들이 자꾸 전화와서 고향에 돌아오라고 설득작업을 하였다. 마을에 젊은이들이 점점 사라지고 로인들만 늘어나니 똑똑한 젊은이 한명이라도 와서 마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였다. 어려서부터 흥광촌에 태줄을 묻고 이곳에서 자란 오경호씨는 고향 어르신들의 부름을 차마 거절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연히 남방의 직장생활을 버리고 고향마을에 돌아와 향촌건설에 온몸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황차 당시 마을에는 부모님과 현숙한 안해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이 있지 않는가. 

"그래 마을에 돌아가서 빈곤촌의 모자를 벗어던지자. 내 손으로 마을을 부유촌으로 만들어보자."

광동 심천에서 마을로 돌아오는 긴 려정의 기차안에서 오경호씨는 이같은 결심을 여러번 다짐했다.   

농촌마을에 아파트 건설로부터 변신 시작

오경호씨는 2012년부터 촌당지부서기를 맡았는데 당시 촌장 량규씨와 함께 마을에 아파트를 짓는 사업을 시작하였다. 

2012년 새농촌건설의 주요한 항목인 주민주택 건설에 착수했다. 건축면적이 4800평방미터인 5층 층집 3동을 건설하여 68호가 입주할수있는 새로운  주택구역을 건설하였는데 총투자액이 천만원에 달하였다.

5년후인 2017년도에 입주하게 되였다. 1년에 10만원씩 들어가는 겨울 난방비 해결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되였다. 이에 대비하여 난방비만 자체로 내면 임대료를 내지 않고 거주할 수 있는 령활한 정책을 펼쳤다. 초반 4호가 입주하면서부터 점차 증가해 현재는 입주호가 45호, 아파트운영이 정상궤도에 들어섰다. 당시 아파트 판매가격은 평방미터당 1500원이였다. 현재 4층을 남기고 기본상 다 판매하였다.

2005년 11월 마을로 돌아온 오경호씨는 그해 말 흥개호유람구로 통하는 도로옆에 동성(东城)개고기음식점을 차려 현재까지 20여년 운영하고 있다. 음식점은 마음씨 후한 오경호씨의 부인이 직접 운영하고 있다. 깨끗한 환경과 조선족음식 특유의 맛, 그리고 인심좋은 서비스로 동성음식점은 현재까지 20년 성업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여름 관광철에는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인기가 많다.  

그는 2018년 1월부터 지부서기 겸 촌장을 맡고 있다. 우선 마을의 경제부터 살리자. 이것이 오경호 지부서기 겸 촌장의 취임때 세운 목표였다. 

부임당시 마을살림은 구차했다. 당시 흥광촌 장부에는 2만원밖에 남지 않았다. 

정부지원 유치하여 농기계 구입

경제를 살리는 첫번째 조치가 바로 농기계 구입이였다. 

발품을 팔아 향과 시 유관부문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면서 농기계 지원신청을 하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2020년에 드디어 비준이 내려왔다. 밀산시 민족종교국에서 현금이 아닌 농기계를 사서 흥광촌에 지원해준 것이다. 처음에 지원한 농기계 가치는 119만원, 연후 차차 늘려서 180만원에 달하는 농기계가 마을에 도착하였다.

오경호 서기는 알뜰한 살림군의 솜씨로 이 기계들을 사용하였는데 농망기에는 농기계를 대외에 임대해주어 매년 15만원의 입대수입을 올렸다. 

지속적인 노력으로 2021년도에 국가 민족사무국으로부터 또다시 157만원 가치의 농기계 바인더(打捆机)를 지원 받았다.  바인더 1년 임대수입만 15만 7천원에 달했다. 이렇게 되여 매년 농기계만으로 30여만원의 순수입을 올리는 쾌거를 달성하였다. 

이밖에 국가중앙전용지원자금 50만원으로 밀산시내 중심 상업가옥을 사서 임대를 주고 있는데 년 임대료수입이 2.5만원에 달한다. 

이외 지원해준 농기계를 리용하여 기동지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사를 짓고 있는데 그 수입만 년간 20만원에 달한다. 

이런저런 수입을 다 합하여 사상 처음으로 100만원 저축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민족문화홍보와 관광수입 추진

지난해 6월 27일 저녁, 밀산시 화평조선족향 흥광촌의 '여름흥광(夏日兴光)' 조선족민속촌 캠핑장이 성대하게 개막되였다. 밀산시위 상무위원, 선전부장 주정이 개막을 선포했으며 한영계 부시장이 축사를 했다.

흥광촌에서는 마을동쪽에 있는 공간을 리용하여 1800평방미터의 야외무대를 만들고 밀산시 조선족촌에서 륜번으로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15일간 진행된 이번 여름철 캠핑무대 필요성에 대해 오경호 당지부서기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여름흥광(夏日红光)'활동의 개시는 야간 경제의 새로운 하이라이트일 뿐만 아니라 촌민과 시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소비 업그레이드를 추진하기 위한 중요한 조치입니다. '여름흥광'이 밀산 시민들의 마음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고 창업자들이 재능을 발휘하고 꿈을 이룰 수 있는 무대가 되였으면 합니다."

여름이 되여 어둠이 깔리면 화려한 불꽃이 하늘로 치솟고 번화하고 화려한 '흥광야시장'이 문을 열면서 이색적인 조선족 음식들이 시민과 관광객을 맞이한다. 민족특색의 다채로운 공연은 관객들의 환호소리를 자아냈고 력동적인 음악에 맞춰 모두 함께 손을 잡고 어깨를 나란히 하며 춤을 추었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은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의 열정을 불태웠다. 무대우의 멋진 공연은 박수갈채를 받았고 무대 아래의 텐트는 시민들로 가득 찼다. 신선한 저녁 바람 속에서 모두들 맛있는 음식을 맛보고 술잔을 돌리면서 여름밤을 불태웠다.

행사장은 캠핑장, 우등불캠핑장, 미식구역으로 구분되며 20개의 부스와 10개의 캠핑텐트가 설치되고 새로운 부스, 새로운 시설, 새로운 장비 등도 지속적으로 추가되였으며 부스의 임대료는 촌에 2만여원의 수입을 가져다 주었다. 야간시장 경제는 촌민들의 소득을 증가시키고 도시 경제 발전의 새로운 성장을 이끌었다. 오경호서기는"새해에도 흥광촌에서는 화평조선족향정부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캠핑장 건설 및 관리를 계속 강화하고 캠핑관광의 서비스 품질과 안전을 개선할 것"이라며 "우리민족 특색활동을 활성화하고 야간 관광 프로젝트와 마을 특색자원 통합을 실현하여 향촌진흥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마을과 어르신들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 

돈이 생기니 마을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편의시설 건설과 서비스가 뒤따랐다. 

대대사무실 북쪽에 밀산에서 가장 크고 좋은 1000평방미터 되는 마을문구장을 건설하였다. 원 밀산시규획관리국 부국장으로 퇴직한 조선족 맹소군씨를 건설고문으로 청하여 밀산시에서도 으뜸가는 일류의 문구장을 건설하였다. 금년에 오픈된 35만원이 투자된 인공잔디가 파랗게 펼쳐진 문구장에서 마을 어르신들은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문구운동을 즐길수가 있게 되였다면서 너도나도 엄지손가락을 흔들었다. 

"마을 어르신들을 잘 모시고 이들이 만년생활에 행복감과 존엄감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경호 당지부서기의 꿈이고 분투목표이다. 

오경호 서기가 마을사람들을 위하여 한 두번째 프로젝트는 바로 고기준 농촌토지건설(高标准农田建设)이다. 

흥광촌의 경작지 대부분이 지세가 낮은 저습지에 위치해 있어서 가물거나 홍수에 특히 취약하였다. 하다보니 산량은 린근촌보다 적게 나기가 일쑤였다. 

오경호 서기는 상급부문의 지원을 받아 땅을 고르게 하고 기계우물을 설치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경작지 밭을 고르게 하는데 380만원, 영구성적인 논밭길을 만드는데 60만원, 5대의 기계우물을 설치하는데 100여만원이 드는  큰 프로젝트였다. 홍수와 가뭄에 취약했던 농토를 첨단 기계와 수리 시설로 무장한 안정적인 농장으로 바꾸는 력사적인 작업이 시작된것이다. 척박한 경작지가 오경호서기의 손에서 점차 풍작을 안아오는 옥토로 변모해갔다. 

"우리 마을이 오경호 서기 때 탈변하여 이제는 편하고 살기 좋은 동네로 변신했습니다. 저는 마을의 어른신들이 이렇게 칭찬할때까지 노력할겁니다."

흙냄새를 찾아 고향에 돌아온지 장장 20년, 초심을 잃지 않고 마을을 위해 열심히 뛰여다니는 오서기의 마음속에서 우러러 나온 말이다. 

당과 정부의 좋은 정책과 오경호서기를 위수로 하는 마을사람들의 노력으로 흥광촌의 앞날에 장미빛 미래가 기다릴것이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박영만 기자 맹고군 특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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