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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잘 가라 부엉이야- 전영실

2025-11-27 16:33:26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자 나는 전동차에 부엉이를 싣고 곧바로 모아산으로 내달렸다.

커다란 종이상자 안에서 이따금 들려오는 “부엉 부엉” 하는 부엉이의 가냘픈 울음소리가 애간장을 태웠다. 근심스럽고 안스러워 가슴이 답답했으며 금세 다리맥이 풀리는 것만 같았다.

모아산 중턱에 이르러 나는 떨리는 손으로 부엉이를 종이상자에서 꺼내 가슴에 안았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진정시키는 한편 한 생명체에게 보내는 다정다감한 인간애를 전했다.

“잘 가라, 부엉이야. 네 종족을 찾아 가족을 찾아 대자연으로 훨훨 날아가라.”

나는 이렇게 말하며 부엉이를 머리우로 가볍게 들어 올려 날려보냈다. 부엉이는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선회하지도 않고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나무가 우거진 서남쪽 방향으로 날개를 치며 날아올랐다. 어둠 속으로 점점 사라져가는 부엉이를 바라보는 내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괴이기 시작했다. 눈물이 시야를 가리자 부엉이도, 별도, 달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부엉이와 함께 생활해온 일주일이란 시간은 더없이 즐거웠고 행복했으며 또한 가슴이 아프고 쓰리기도 했다. 좀 더 잘해줄 걸, 좀 더 친하게 지낼 걸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사연은 이러했다.

일주일 전 이른 아침, 나는 닭모이를 주려고 나갔다가 마당 한복판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부엉이를 발견했다. 내가 동네집 닭을 쫓는 것처럼 시늉하며 “닭수리야, 웟씨!”하고 외쳤는데도 부엉이는 깜짝하지 않고 날아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손을 내밀어 붙잡자 부엉이는 조건반사적으로 몸을 부르르 떨면서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런데 웬걸, 두어미터도 날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직감적으로 부엉이가 쥐약을 먹었거나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부엉이를 그냥 내버려둔다면 고양이나 개의 먹이가 되고 큰길에 나서면 차에 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두번째로 붙잡았을 때 이상스러울 정도로 부엉이는 반항 한번 하지 않고 공손히 잡혀주었다. 다만 심장의 박동소리가 무섭게 전해왔고 심장이 당장이라도 밖으로 튀여나올 것만 같았다. 몸체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내 손을 붉게 물들였다. 허벅다리 살이 심하게 찢어지고 거기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밤중에 쥐를 잡으러 마을에 내려왔다가 고양이에게 습격을 당한 것 같았다.

부엉이의 몸빛은 회색 바탕에 담황색의 가는 가로 무늬가 있었고 눈은 크고 둥글며 머리 꼭대기에는 귀 모양의 깃털이 있었다. 몸길이는 한뼘 반쯤 되였는데 생김새나 모양새가 동물원에서나 TV에서 보아오던 틀림없는 부엉이였다.

영양 부족인지 덩치에 비해 무게가 형편없이 가벼워 보였다. 산에서 서식하는 야생 부엉이인지, 누구 집에서 기르던 집 부엉이인지는 딱히 알 수 없었다. 나는 솜으로 흐르는 피를 닦아주고 가위로 다친 곳의 털을 깎아주었다. 그리고 집에 있던 옥도정기로 상처를 소독하고 그 우에 운남백약 가루를 듬뿍 뿌려 놓았다. 면봉의 솜을 뜯어 내여 그 우에 살짝 펴 놓고 떨어지지 않게 반창고로 가로세로 몇겹을 부쳤다. 상처가 감염되거나 곪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처치해주는 동안 부엉이는 반항하지 않고 공손히 따라주었다. 이런 걸 보면 부엉이가 우리 집 마당에 들어온 것은 자기를 구해 달라고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성공적으로 처치를 끝내고 부엉이를 텅 빈 닭장 안에 넣고 헌옷을 덮어 해빛을 차단해주었다. 랭장고에서 돼지고기를 꺼내 토막내고 잘게 칼탕쳐 보드랍게 만들었다. 부엉이가 허벅다리를 다쳐 발을 잘 쓸 수 없을 것을 념두에 두고 맞춤형 먹이를 만들어 준 것이다. 닭사료를 푹푹 떠서 구유에 담아 주었고 물을 사발에 가득 담아주었다. 처치도 하고 먹이도 주었으니 한시름이 놓였다. 죽지는 않겠다는 느낌이 들었고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나는 매일마다 닭장을 들여다보며 고기와 닭사료, 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충분히 주었다.

나는 자신이 가축과 가금류에 대한 사랑이 유별나게 많다고 자부한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는 돼지를 길렀는데 나는 자주 돼지풀을 뜯어다 주었고 뜨거운 물을 자주 퍼주었다. 등산을 하다가 막 낳은 양새끼를 보면 안아주었고 송아지를 보면 영상으로 촬영하였다. 시집 와서 만난 남편 역시 축산 개량 사업소에서 일을 했기에 동물과의 접촉이 많았다. 그때 우리 집에서는 승냥이만큼 덩치 큰 세퍼드를 길렀다. 애완견도 애완묘도 여러마리 길렀다. 지금도 열마리의 닭을 치고 있는데 닭을 기른지는 십여년이 훌쩍 넘는다.

3년 전에는 동창이 청도로 병치료를 하러 떠나면서 여섯마리의 기러기를 석달만 봐달라고 부탁하였다. 처음에는 생명가진 동물을 함부로 맡는 것에 대해 망설였으나 그 친구가 꼭 나보고 봐달라고 하기에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하는 수없이 맡아서 하나부터 열까지 배워가며 기러기를 잘 길렀다. 이에 친구들은 나를 ‘기러기 엄마’라고 칭찬했고 나의 정성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고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잘 키웠으면 나를 ‘기러기 엄마’란 별호까지 붙여 주었겠는가? TV에서 ‘동물의 세계’ 프로를 열심히 시청하는데 특히 동물을 구해 주는 장면(차에 친 여우를 구해주거나 수풀 속에 갇힌 사슴을 구해주거나 다리가 부러진 새를 구해 주는 장면)을 볼 때면 나도 저렇게 동물들을 구해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우리 집 마당에 난생 처음으로 상처 입은 부엉이가 찾아왔으니 어찌 잘 살피지 않겠는가? 자연이 나에게 준 선물인 것 같기도 하고 동물 보호 정신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을 거는 것 같기도 했다.

련속 며칠 이어지는 나의 지성어린 보살핌과 관심 속에서 부엉이의 상처는 예상 외로 빨리 치유되였고 원기도 백퍼센트 완전히 회복되였다. 닷새되는 날에 자연으로 돌려보내려 했는데 혹시나 하는 념려에 일주일을 채워 놓아주게 되였다.

부엉이는 내 손안에서 벗어나서 10초도 안 되는 짧은 사이에 하늘 높이 솟았다가 어딘가로 종적없이 사라졌다.

멀리 날아나 시야에서 벗어난 이 부엉이는 틀림없는 야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대자연에 익숙하고 잘 적응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부엉이는 필경 부엉이다. 은인도 모르고 은혜도 모른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서 그저 살아갈 뿐이다.

요즘 날이 어두워지면 가끔씩 부엉이가 그리워지고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부엉이에 대한 미움도 원망도 섭섭함도 없다. 오로지 더 높이, 더 멀리로 훨훨 날고 또 날아주기를 바랄 뿐이고 영원토록 두번 다시 상봉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의사가 병이 완치되여 퇴원하는 환자에게 “안녕히 가세요, 또 오세요”란 말을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나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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