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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매운탕- 남옥란

2025-11-18 10:15:23

방정맞게도 친구와 만나기로 한 약속 당일은 마가을 궂은비가 질척거리는 날이였다. 정자가 정한 장소는 해란강판점 일층, 경사진 올라막을 넘어 위생실 앞 46호 자리였다. 문에 들어서서 목을 늘려 보니 꼬불머리 둘이 나와 등지고 앉아있었다. 한명은 정자일테고, 다른 한명은 누구지? 의문이 머리를 맴돌며 그들 앞으로 다가섰다.

정자는 동행한 숙이를 가리키며 미리 알리지 못한 점을 언급했다. 역시나 전부터 둘은 마을에서나 학교에서나 그림자처럽 붙어다니던 짝꿍이였으니 함께 오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인사치레가 끝난후 숙이의 첫마디는 나를 놀라게 했다.

“너는 좋겠다. 남편이 건재하고 달마다 생활 보장금도 받으니 늘으막에 생활이 걱정 없겠지. 우리는 이 나이에 남편을 잃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후…” 

정자도 “우리 팔자는 왜 이렇게 뒤틀렸을까?”라며 한숨을 쉬였다.

알고 보니 숙이는 남편과 사별했고 정자는 물리적 별거중(졸혼)이였다. 세월은 우리를 이끌고 너무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어릴적 기세등등하던 그들이 이제는 이가 빠진 호랑이가 되였다. 불쌍하고 측은한 생각이 들면서 동정이 갔다. 숙이는 내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며 쑥스럽게 이야기를 꺼내군 했다. 푼수없는 말이 숙이의 입에서 튀여나올 때마다 정자는 숙이의 옆구리를 찔렀다. 나는 한눈으로 보고 다른 한눈은 지그시 감고서 그들의 이야기에 끼여들 때도 있고 묵묵부답하면서 침묵을 지킬 때도 있었다.

소학교시절에 우리 셋은 한 마을에서 자라며 학교를 다녔다. 길가의 애솔나무와 수양버들이 우리를 반겼고 봄에는 소수레를 타고 여름에는 풀꽃을 꺾으며 가을에는 쌀내음을 맡으며 학교를 오갔다. 자연은 사계절 아름다왔지만 우리 사이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았다. 따스한 봄바람이 불 때도 있고 천둥번개가 치며 소낙비가 내릴 때도 있고 싸늘한 가을바람이 불 때도 있었다.

친구가 셋이면 한명은 왕따를 당한다는 말이 맞는 말이였다. 두 볼이 축 처진 숙이와 가느다란 눈귀가 우로 째진 정자는 우쭐거리며 나를 골려주곤 했다. 나는 그들 앞에서 주눅들고 구겨질 때가 많았다. 내가 당한 원인은 암만 생각해도 가정배경 때문인 것 같았다. 숙이의 아버지는 생산대 대장이였고 어머니는 젊고 아름다왔다. 또 뒤심이 되여주는 끌끌한 오빠가 있었다. 정자의 어머니는 에너지가 넘쳐나고 재간이 많아서 생산대 부녀대장을 맡고 있었다. 반면 내 부모는 로동력을 상실한 약체였고 우리 집은 마을에서 가장 가난했다. 그때 생산대장과 부녀대장은 마을에서 큰 권력을 휘둘렀다.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경제력이 가장 큰 힘이 되고 부모가 힘깨나 쓰고 드세야 아이들도 우쭐할 구석이 생긴다는 진리를 나는 소학교 시절부터 깨달았던 것 같다.

시간은 다시 50년 전으로 거스른다. 나는 공부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다. 숙이, 정자와 겨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부에서 두각을 내미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학교로 가는 길은 여전히 그 신작로였다. 나는 길옆 도랑가에서 혼자 걸으며 암송 숙제를 했다. 과당시간에도 모든 정력을 공부에 집중시켰다. 숙이와 정자가 시끄럽게 굴어도 신경쓰지 않았다. 이렇게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며 숙이의 학습위원 자리를 내가 차지했다. 그때부터 숙이는 더 로골적으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묵묵히 참았고 맞서지도 않았다. 1대 2여서 내가 승산할 확률은 거의 령이였기 때문이다. 애들에게서 라이벌 의식보다는 인간의 기본적인 잠재 의식, 질투와 남이 잘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원시적인 약점이 작간한 것이다. 

생각에 잠겨서 먹다 보니 매운탕이 말라들고 있었다. 나는 복무원을 손짓하며 “쟈탕쟈탕!”하고 소리쳤다. 한 주전자 가득한 탕을 붓고 가스불을 높이니 또 보글보글 끓기 시작한다. 나는 가마굽에 가라앉은 뼈다구와 온갖 찌꺼기들을 건져냈다. 보기에 한결 투명해진 매운탕이다. 마치도 50년 세월 동안 내 마음속에 가라앉았던 앙금을 걸러낸 듯 깔끔하고 시원해보였다. 거기에 수타면 한사리를 넣고 끓기를 기다렸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다섯번의 강산이 변하는 동안 우리는 몸도 마음도 늙었다. 풀이 죽었다. 여느때 고양이처럼 발톱을 치켜 세우고 달려들던 그 기세가 사라진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나면서 내가 이겼다는 것을 실감했지만 왜서인지 기쁘지는 않았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맞는 말이다. 동년의 불유쾌한 추억일지라도 나는 우리 단발머리 셋이 학교로 다니던 고향의 그 신작로, 버들방천, 문둥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던 전설의 언덕우 수수밭을 머리 속에 또렷하게 새겼다. 미운정, 고운정도 정은 정인데 지금에 와서 마음을 비우고 관용을 베풀지 못할 리유가 무엇일가? 어차피 우리 셋은 한 고향이라는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세월에 부대끼면서 몸과 마음을 키우지 않았던가?

말말중에 숙이는 80세 고령인 이모와 친구하며 여생을 보내려고 고향에 왔고 정자는 다시 외국에 가서 딸애의 뒤시중을 하면서 밥을 얻어먹겠다고 하였다. 숙이는 이모가 그나마 위생실 출입은 별문제니 품팔이를 하면서라도 소비돈을 좀 벌었으면 하는 의향을 내비치였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묵묵하니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정자는 “얘 옥아! 니가 그래도 여기에서 오래 살았으니 인적 관계가 넓고 여러모로 익숙하지, 숙이에게 일자리를 알선해 주려마”라고 말했다.

“내가? 뭘 어떻게, 우리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어? 그 나이에 마담이나 복무원 같은 일을 할순 없고, 가정부 일밖에 없는데 그것이라도 돼?” 그러자 숙이는 오직 돈만 벌 수 있으면 된다고 했다. 나는 바로 옆집 아줌마에게 전화를 넣어 전번에 부탁받았던 그 집에 숙이를 소개했다.

20대 초반에 타성에 시집 가서 자리잡고 애 둘을 낳고 잘 산다고 들었는데 터새가 되여 돌아왔다. ‘락엽귀근’이라고 할까?

우리가 장난치며 싸우고 화합하면서 학교로 오가던 길은 나중에 내가 세상을 향해 걸어가는 기초가 되였다. 그 짧은 오리길을 통해 나는 천리길을 무난히 걷는 법을 익혔다. 그 길에서 나는 험악한 세상을 어떻게 피하고 헤치며 걸어갈지를 배웠고 진창길과 굽은길을 걸어가는 요령을 터득했으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가야 하는지도 수없이 연습했다. 철학적 사유가 머리 속에 단단히 뿌리내렸고 그것은 그 애들이 내게 선사한 평생 잊을 수 없는 반면 교재이자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이 되였다.

매운탕 한가마를 깨끗이 비우는 사이 나는 여지껏 나를 괴롭혔던 그 애들에 대한 찝찝한 원망과 과거를 모두 지워버렸다. 홀가분했다.

매운탕은 그 강렬한 매운 맛과 구수한 국물이 어우러져 우리들 사이의 대화와 화해를 돕는 특별한 음식으로 부상했다. 뜨거운 국물을 나누어 마시며 땀을 흘리고 매운 맛에 얼굴을 찡그리다가도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들이 오랜 친구들 사이의 갈등을 풀어주는 것 같았다.

매운탕의 ‘통쾌한’ 맛은 사람들을 더 가깝게 만들며 결국 뜨겁고 강렬한 론쟁도 훈훈한 대화로 마무리되는 매운탕의 매력을 나는 새삼스레 느끼였다.

숙이와 정자는 배부른 흥에 겨운 듯 옥수수 수염 차를 마시며 주정 아닌 주정을 이어갔다. 정자가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었다.

“얘, 옥이야. 어쩌겠어, 리해하려고 해. 그때 너는 선생님에게 위신이 있었으니까 질투가 나더라. 그래서 너한테 스트레스를 푼 거야. 어릴적 일인데, 이제 용서해.”

한참 침묵이 흐르고 나는 고래희 나이에 맞는 한마디를 어물어물 던졌다. “이제 우리가 뭐 더 바랄 수 있겠어? 이제는 자신을 위해 살아야지. 중요한 건 누가 무병하게 가장 오래 사느냐 하는거야. 최후로 남는 사람이 승자야.”

“그러게, 그말이 맞아. 우리 오래 살자, 화이팅!”

숙이와 정자는 젓가락 장단으로 맞장구를 쳤다. 세상에, 녀자들은 술을 마시지 않아도 얄팍한 입술과 팔락팔락 뛰는 심장으로 주정하는 재주가 있다. 그게 약점일까? 아니면 우점일까?

산전수전 다 겪은 늙은 몸이 기력을 잃고 호물때기가 되여 화합을 이룬 우리. 인생이란 것이 이렇게 간단한데 왜 아직도 세상 사람들은 천년 만년을 살 듯이 우쭐거리고 질투라는 주머니에 처넣고 목을 조르며 어리석게 사는지?

셋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밖으로 나오니 오던 비는 뚝 끊기고 하늘이 맑게 웃고 있었다. 세상은 어쩐지 그 한순간처럼 때때로 맑게 개여 웃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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