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팔남매중 다섯번째 아이로 태여났다. 우로 언니 둘과 오빠 둘이 있고 아래로 녀동생 셋이나 있다. 우리는 팔남매가 자라다보니 언제 한번 엄마한테 응석을 부려본 적이 없고 누렁지 먹겠다고 흥~ 흥 해본 적도 없으며 공부를 잘하여도 엄마의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다. 엄마는 우리를 먹여 살리기도 벅찼다.
그 고난의 세월에 그래도 할머니는 나를 아주 이뻐하셨다. 지금은 집집마다 세수수건을 쌓아놓고 쓰지만 우리가 자랄 때는 온집식구가 수건 하나를 쓰면서 살았다. 결혼집에서 선물받았던 많은 수건들을 정리하면서 나는 할머니 생각에 눈굽이 젖어오른다.
우리 할머니는 걀죽한 얼굴에 반달같은 눈섭, 호수처럼 맑은 눈, 늘씬한 몸매를 가진 수양버들같은 녀인이다. 비상한 머리에 뛰여난 일솜씨로 남자들도 “저리 가라”하는 능력있는 우리 할머니다.
할머니는 재간도 있지만 도량도 넓으셔서 온마을 사람들을 마음에 품었다. 잔치집부터 환갑집까지 동네 경사때면 할머니가 콩나물부터 떡까지 맡았다. 스물여섯 꽃나이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들 둘을 고이 키우시며 재혼도 안하고 평생을 두 아들을 위하여 다 바쳐왔다.
어렸을 때에는 몰랐지만 나이들면서 할머니가 더 존경스럽고 간절히 보고 싶다. 군일이 있을 때면 할머니는 엿부터 시작하여 여러가지 떡에 술까지 빚으셨는데 들기름도 엄청 잘 짜셨다. 바느질도 이쁘게 잘하셔서 손자손녀들이 서로 자기 옷을 기워달라고 할머니한테 졸랐다.
지금은 집집마다 녀자애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인형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자랄 때에는 인형을 갖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항상 애기베개를 갖고 놀아서 엄마한테 혼나군 했다.
어느 하루, 나는 천오리로 애기베개를 동여매고 내 옷을 입히고 업은 후 손으로 잔등을 다독이며 “애기자장, 애기자장”하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때마침 일밭에서 돌아온 엄마는 애기베개를 업고 있는 나를 보더니 화가 치밀어 “애기베개를 갖고 놀면 애기가 운다”고 꽥 소리치면서 내 잔등에 있는 애기베개를 와락 잡아챘다. 그 바람에 나는 훌렁 나가 넘어져 머리가 새알만큼 불어났다. 나는 머리를 만지면서 서럽게 울었다.
이 광경을 보시던 할머니는 너무도 화가 치밀어서 비자루로 엄마의 엉덩이를 두번이나 때리면서 “그게 뭐 그리도 화날 일이라고 아이를 잡소”하며 엄마를 혼내 주셨다. 나는 잉잉 울다가 분풀이를 해주시는 할머니가 너무도 고마웠다.
할머니는 나를 품에 안아주시면서 “할머니가 인형을 만들어 주겠으니 다시는 애기베개를 갖고 놀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할머니는 갖고 온 보따리를 풀어헤치더니 보따리 속에서 꽃수건 하나를 꺼내셨다. 할머니는 꽃수건을 량쪽으로 돌돌 말아 꺾어쥐고는 끈으로 인형머리를 만들고 묶으셨다. 잠깐사이에 수건은 인형으로 변하였다. 할머니는 새 수건으로 만든 폭신폭신한 인형을 나한테 주시면서 “이 인형은 누구도 주지 말고 너 혼자만 갖고 놀아라”라고 말씀하셨다. 애기베개보다 훨씬 이쁜 인형을 선물받은 나는 온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였으며 너무도 좋아서 인형을 안고 온 동네를 다니며 자랑하였다. 할머니가 만들어준 수건인형은 그때로 부터 우리 친구들에게 보급되였으며 누구나 꽃수건 하나만 있으면 이쁜 인형을 만들 수 있었다. 우리 친구들은 자기절로 만든 인형을 가지고 재미나게 마음껏 ‘새감지 놀이’도 하고 애기놀음도 놀았다.
할머니는 큰아버지네와 함께 지냈다. 엄마의 사랑이 부족한 나는 일곱살부터 기차를 타고 룡정에 있는 할머니한테 놀러다녔다. 할머니의 눈길만 보아도 할머니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마음으로 느꼈다. 동생이 셋이나 있기에 나는 엄마 품에 안겨본 기억이 없으며 오로지 할머니 품에 안겨 말랑말랑한 할머니 유방을 조물락조물락 주물어도 보고 보드러운 젖가슴을 만지던 생각뿐이다.
할머니는 항상 흰 천으로 만든 널찍한 팬티를 입으셨는데 팬티앞에는 커다란 빈침을 꽂은 호주머니가 달려있었으며 호주머니에는 항상 동전 여러 잎이 들어있었다. 저녁이면 할머니품에 안긴 내가 동전이 들어있는 호주머니를 만지면 절렁절렁대며 동전소리가 난다. 할머니는 큰엄마가 절렁대는 동전소리를 듣고 눈치라도 챌가봐 바삐 내 손을 잡고 “가만 있어라. 래일 얼음과자를 사줄게”하며 나를 품에 안아주셨다. 할머니는 항상 아끼던 동전으로 나한테 얼음과자를 사주었으며 집에 올 때면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 동전을 손수건에 싸서 주군 하였다.
할머니는 내가 떠날 때면 늘쌍 길모퉁이에 서서 나를 배웅하셨는데 추운 겨울이나 무더운 여름이거나를 막론하고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팡이를 짚고 서있었다. 할머니와 점점 멀어져가는 나는 아쉬움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군 했다. 한해 두해 늙어만 가는 할머니가 안스러워 눈에서는 눈물이 두줄로 샘처럼 솟아 두볼을 타고 턱을 지나 발등에 뚝뚝 떨어진다. 할머니 생각만 해도 정겹고 따뜻하며 그리워지며 할머니품은 언제나 나를 덥혀 주고 할머니 사랑은 지금도 나를 울린다.
할머니는 항상 하얀 한복저고리에 회색치마를 입으셨고 흰색 앞치마를 걸쳤으며 머리는 곱게 빗어 틀어올리고 흰색 비녀를 꽂았다.
세월은 빨리도 흘러 나도 할머니가 되였다.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신지도 38년이란 시간이 흘렀건만 지금도 그 자애로운 할머니의 모습은 나의 머리 속에 또렷이 떠올라 잊혀지지를 않는다.
나는 귀하디 귀한 손자를 키우면서 나를 향한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더욱 깊게 알 수 있었다.
“항상 그리운 할머니! 무조건 내편이 되여주신 할머니! 나도 인젠 할머니가 되였습니다. 할머니 마음에 내가 전부였던 것처럼 나도 손자가 전부입니다. 할머니께서 받은 사랑을 손자한테 되돌려주겠습니다. 할머니, 나를 극진히 이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꿈속에서도 만나고 싶은 할머니 보고 싶습니다”라고 할머니에 대한 짜릿한 나의 마음을 바람에 실어 구름에 보내여 할머니가 계시는 하늘나라에 전했다.
할머니가 만들어준 인형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인형
내가 업은 인형 귀여운 인형
할머니 사랑 넘치네
나는야 이쁜 인형 안고
하늘을 향해 할머니를
소리높이 불러보네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