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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고 민 - 박인

2025-10-15 14:50:08

요즘 금이는 날이 갈수록 단가마안의 개미처럼 안절부절 못했다. 외손녀의 첫돌 생일이 눈앞에 다가는데 생일상에 놓을 돈때문에 고민이다. 요즘은 첫돌 생일도 결혼식 못지 않게 굉장하게 쇤다. 그리고 첫돌 생일상에 놓는 돈도 웬만한 형편이면 이만원씩 놓는다.

아무리 혼자 사는 과부몸이라도 만원 돈은 놓아야겠는데 금이의 생활형편에 그 만원을 갖추는 것은 버거웠다.

금이는 기업에서 정년퇴직한 후 허리 디스크때문에 남들이 다 가는 외국에도 못 가고 삼천원도 안되는 월급으로 겨우 생활을 영위해가고 있다. 그렇다고 사돈들과 숱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달랑 오천원을 들고 나가려니 체면이 서지 않을 것 같았다.

남들보다 각별히 체면에 신경을 쓰는 금이였다. 남편이 차사고로 일찍 돌아간 후 금이는 혼자 몸으로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외동딸을 곱게 키워 대학공부를 시키고 시집까지 보냈다.

딸이 결혼식을 올릴 때는 손님이 별로 많치 않았다. 친척들도 대부분 외국에 나가 있다보니 손님이 거퍼 열상도 되나마나 했다.

금이는 고민하던 끝에 사회구역 주임사업을 하는 친구를 찾아가서 사정을 이야기했다. 결혼식날 사회구역의 녀성 30명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부조는 한푼도 받지 않을테니 한복차림에 와서 춤추고 먹어주면 된다고 했다.

과연 약속대로 결혼식 날 사회구역의 녀성들이 찾아와 15상을 채워 결혼식장은 별로 썰렁하지 않았다.

생일상에 놓을 돈을 꿔서라도 마련하자. 근데 누구한테서 꾸겠는가. 서시장에서 신발 매대를 하는 희자를 찾아갈가? 아니면 맥주점을 경영하는 선희를 찾아갈가? 아니다, 그래도 남자 동창들한테서 꾸는 것이 나을상 싶다. 언젠가 한번 희자한테서 돈을 꾼적이 있었는데 돈을 받지 못할가봐 그런지 한달이 되기전에 재촉전화가 걸려오고 집까지 찾아와서 진땀을 뺀적이 있었다.

그뒤부터 금이는 바쁜 대목에 돈을 꿀 일이 있으면 남자동창들한테서 꿔서 썼다.

금이는 남자 동창들한테 퍼그나 인기가 있었다. 50대 중반이 넘었지만 그녀는 보기 좋은 체격에 해반주그레한 얼굴을 가져 동년배들보다 10년은 더 젊어보인다.

동창모임이 있을 때마다 남자들은 서로 금이를 자기 옆에 앉히느라 자리싸움을 벌리군 했다. 그때마다 다른 녀자동창들은 아니꼬운 눈길로 남자들을 째려보면서 다음부터는 아예 금이를 부르지 말라고 대놓고 말했다.

그런데 남자동창들의 돈을 꾸면 재촉질은 뜸한 반면에 또 다른 고민이 있다. 돈을 꿔준 빌미로 주말이나 명절이면 전화가 쉴새없이 걸려온다.

“금이, 래일이 성탄절인데 우리 맥주 한잔 할가?”

“금이, 주말인데 래일 모아산에 등산 갈가?”

“금이, 래일 함께 낚시 갈래?”

그럴 때마다 금이는 대방의 맘을 상하지 않게 듣기좋게 에둘러 대느라고 진땀을 벌벌 흘리군 했다.

남자들의 성화를 받는게 귀찮지만 그래도 녀자들보다 남자들의 돈을 꾸는게 더 편할 것 같았다.

그런데 누구한테서 꿀가? (중고차를 경영하는 충이를 찾을가? 아니, 그는 녀자를 각별히 밝힌다고 이름 났어. 노래방 가서 춤을 출 때도 구레나룻을 녀자 동창들의 얼굴에 대고 쓱쓱 문질러대는 그런 스타일야. 부동산을 경영하는 준이를 찾을가? 돈은 많지만 속이 음특해 동창모임 때마다 나를 자기 옆에 앉히지 못해 안절부절 못해.)

반복적으로 고민하던 끝에 금이는 병원에서 외과 의사로 근무하는 군이를 선택했다. 평소에도 깔끔하고 거동이 점잖아서 녀자동창생들에게 인기가 만땅이였다.

금이는 스마트폰을 열고 군이의 핸폰번호를 눌렀다. 군이가 인츰 전화를 받았다. 금이의 급한 사정 이야기를 듣던 군이는 통쾌하게 알았다며 저녁퇴근 후 6시에 모이자커피솝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그제야 금이는 마치 가슴에서 무거운 돌을 내려놓은듯이 개운해났다.

저녁 약속시간이 다가오자 금이는 연한 화장을 하고 하늘색 티에 까만 긴치마를 받쳐 입고 택시에 올라 약속한 지점으로 떠났다.

먼저 도착한 그녀는 조용하고 아늑한 단칸방에 홀로 앉아 군이를 기다리면서 오만가지 잡생각에 사로잡혔다.

그가 왜서 쾌히 돈을 꿔주겠다고 했을가? 동창생의 정을 봐서? 아니면 그도 다른 동창남자들처럼 내 반반한 얼굴을 탐해서? 아니,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근데 겉으로 점잔을 빼는 남자들이 속이 더 음특해, 만약 커피를 마신 후에 또 다른 장소로 옮기자면 어떻게 핑게를 대야지? 옳지, 딸과 사위가 저녁에 자기집으로 손녀 생일쇠는 일때문에 토론하러 온다고 말하자. 근데 남의 돈을 꾸고도 거짓말을 하자니 속이 내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따라갔다가 그가 혹시 과분한 행동이라도 하면 꾼 돈을 그 자리서 돌려줘야지.

에구 무자식이 상팔자야. 내가 왜서 딸자식때문에 이 맘고생이야. 글구 체면이 뭐길래, 자리를 보고 다리를 펴라고 돈이 있으면 있는대로 생일상에 놓으면 그만이지, 돈을 꿔가면서 개도 안먹는 자존심과 허영심을 지키려고 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스마트폰의 액정을 들여다보니 6시반이 넘었다. 근데 군이는 도무지 나타나지 않았다. 속이 바질바질 탔다. 혹시 돈을 꿔주기가 싫어 시간을 질질 끄는게 아닐가?

“띨리링, 띨리링”

느닷없이 스마트폰의 위챗 음성이 조용한 커피숍에 울렸다.

급기야 스마트폰을 열어 보니 군이가 문자를 보내왔다.

“미안해, 갑자기 수술환자가 들어 와서 갈 것 같지 못해. 돈은 집에 가서 위챗으로 보내 줄게.”

(하느님 맙시사. 세상에 이런 고마운 동창도 있나!)

금이는 금방까지 여러가지 잡생각을 하면서 군이를 험하게 생각한 자신이 더없이 미워나면서 얼굴이 확 붉어졌다.

금이는 그 자리에서 군이한테 문자를 보냈다.

“고마워, 잘 쓸게.”

외손녀의 첫돐 생일은 생각대로 순조롭게 잘 치러졌다.

그런데 석달 후의 어느날, 딸이 느닷없이 집에 찾아와 남편과 리혼했다면서 외손녀를 금이한테 맡길 줄이야!

아직 외손녀의 첫돐 생일 때 꾼 돈도 갚지 못했는데. 금이한테는 또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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