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의 여름이 시나브로
열광의 무대를 떠나고 있다
극한더위가 지구촌을 강타하고
괴물장마의 기억은 문명의 옷자락에
아픈 흔적을 남기였다
재난의 꼬리를 물고 일어서는
작은 소망 하나는 어느 계곡에 누워
코를 골고
심사가 까불까불한 어느
나그네는 푸른 산에 불 지피며
휘파람을 슬슬 분다
늦더위는 계속되고 지친 령혼들은
늦장마가 되여 아우성친다
아마도 겨울이 오려나 보다
가을 일기
그리움이 쌓여 산이 되였다
우뢰소리가 모여 강이 되였다
흘린 땀이 낟알이 되고
흘린 피가 꽃이 되였다
도망치는 구름을 붙잡지 마라
떠나가는 기러기를 애닲아 마라
서늘한 강엔 또 다시
풍년의 노래가 떠 흐를 것이니
바람의 강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이기에
이토록 내 가슴 흔드느냐
성씨도 이름도 없는 바람아
주소도 고향도 없는 바람아
너 다시금 내 곁에
흠뻑 익은 가을을 데려다 주렴아
령혼의 언어
너의 판도라 상자를
여는 열쇠는 어디 숨었나
진실의 옷자락이
잡은 손 스치면
마침내 녹 쓴 문은 열리고
새 하늘이 웃는 그 속에
령혼의 언어는
별을 만지는 새가 되리라
가을 절벽
세월은 가면서 오는 것
모든 것이 가도 사랑은 남는다
내곁을 스쳐간 이들이 남긴 것은
슬픈 그리움만이 아닌 것을
허허롭게 웃는 저 천공에
찢어진 내 마음이
기발처럼 펄럭이고 있으니
락엽이 춤추는 이 가을날
흘러가는 벽계수만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울더라
터널
열린 땅의 틈새로
트럭이 드나들고
바람이 드나들고
계절보다 앞선
성급한 생각이 드나든다
가을
저 사람의 어깨가 무겁다
저 사람은 자꾸만 고개 숙인다
해살의 무게에 눌리워 고개 숙인다
안개
그녀는
어제 밤의 그 일이
부끄럽나봐
면사포로 꽁꽁
얼굴 가렸네
다가서리
가진 것 죄다 내려놓고
빈 손으로
빈 몸으로
님 앞에 다가서리
더 깊어진 눈으로
읽으리
님의 속살 읽으리
가는 날
보석같은 추억 안고
님 앞에 다가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