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늘이 쏟아진다
북륙의 눈보라가 와와 소리친다
마른 나무 흔들어대다가
얼어붙은 전보대 탕탕 두드리다가
바람벽에 이마를 쪼며 잉잉 울기도 한다
아득히 먼 서북쪽에서 우우 불어와
동남쪽으로 우야와야 고래고래
잠 잘 궁리 집어치라는 듯
쉴새없이 다그쳐댄다
그렇게 겨울밤은 깊어만 가고
고향 찾아 집 나가신 아버지
어디에서 떨고 계시는지
찾아헤매는 마음 바질바질 타든다
2
아버지는 여든 하고도 여섯
그 어려운 크고 작은 고개들을
잘도 넘으시더니
어느 고개목에서 정신줄 놓으셨는지
치매를 앓고 계신다
방금 밥상을 물리시고도
배고프다고 호통 치시고
짬만 나면 고향 찾아 가신다며
신발끈 동여매시던 아버지
눈 깜빡하는 사이
어느새 집 나가셔
어디론가 사라진 아버지
사람 찾는 전단지를 들고
번잡한 사거리를 배회하면서
드넓은 도시의
골목골목을 누비면서
애달프게 부르는
아버지! 아버지!
3
아직 코물자국 마르지 않던 여섯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위고
배고파 우는 세살난 누이동생
등에 업고 밥동냥 다니던
울 아빠
아직은 어른들 앞에서
재롱을 부려야 할 나이에
가정의 대들보를 떠메던 아빠는
잔뼈도 채 굵지 않은 열여섯살에
돈 많이 벌어서 잘 살아보겠다고
금의환향의 꿈을 안고
일본으로 건너가 십수년
살 터지게
뼈 부서지게
만신창이 되도록 일하고 일해도
가난한 사람 부자되는 세상은 아니였으니
더 나은 세상이 어디멘가
막연한 꿈을 안고 찾아온 만주땅
혼신을 다 하여 일궈낸 터전
궂은 일 마른 일 가리지 않고
청춘을 갈아 넣은 이 땅에서
마침내 덕망 높은 지역의
인민대표로 위풍당당
살아오신 80성상
오매불망 두고 온 고향 못 잊어
평생을 움켜쥔 그 옹고집
한복 바지저고리에 하얀 대님
두루마기 속에 꽁꽁 싸둔
충청도 사투리
- 싫어유
그 한 마디면 황소가 끌어도 꿈쩍 않던
- 알았어유
그 한 마디로 황소보다 더 억세게
일하시던 아버지
4
고향이 무엇이길레
세월이 무엇이건데
강산이 변한다는 십년이
한번 두번 서너번 일여덟번
그렇게 흐르고 바뀌고 변해도
고향 향한 일편단심에
실금 하나 가지 않았던
아버지
정신줄 놓은 환각 속에서도
용케도 더듬어낸 기억의 그 한쪼각
고향
고향
고향!
5~6년 춘하추동 고향 찾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헤매던 길
천리였을까
만리였던까
5
천신만고 끝에
다시 찾은 아버지
무너진 가슴에 얼굴을 묻고
이 딸이 불효하여 떠나시나요
흐느끼는 딸의 어깨 어루만지며
- 후유, 내가 고향 찾아 떠났다가
니들 고생만 시켰구먼그려
그 무거운 입 속에서
간신히 흘러나온 탄식소리
그리고 난생 처음 본
뼈 속까지 스며드는
아버지의 피같은 눈물
6
이제는 하늘나라 가셔서
오매에도 그리던 고향
마음껏 굽어보고 계시나요
그 한맺힌 설음
고향의 바다에
훌훌 털어버리셨나요
오늘도 태안 앞 바닷가
쑥 한 줌으로
쑥 내음 풀풀 날리시는
아아 우리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