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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도식, "당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내 평생의 약속이다"

2024-09-30 13:39:54

국경절을 앞두고 기자는 최도식씨를 만났다. 작업실에서 최도식씨는 '총탄흔적 검사에 관한 약간의 기술' PPT 과제를 하고 있었다. 90세 고령의 로인이지만 프로그래밍 소프트웨어를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최도식씨는 연구 기구를 거두면서 기자에게 올해 하는 일들을 소개했다.

그는 년초에 구술사(口述史)의 작업을 마무리하였으며 '최도식 업무 흔적'(제목 잠정)을 집필하고 자신이 11년간 공안부 특채 수사전문가로 일할 때 했던 년간 업무총화보고를 정리하였다. 그는 8월에 해남성 공안청을 협조하여 20여년 전의 총격사건 검사업무를 완수하였다. 

극도의 정교함으로 업계 전설을 쓰다

새중국 공안수사 사업에서 '최도식'이라는 세 글자는 하나의 전설이며 그는 중국의 '홈즈'로 불린다. 그는 전국을 뒤흔든 많은 중요하고 중대한 사건을 해결하는데 기여했다.

군경 습격, 총기 강도 살인...... '백보산 사건'은 한때 전국을 놀라게 했다. 1996년과 1997년, 북경, 신강 두 곳에서 잇달아 총기사건이 발생했는데 현장에 남아있는 몇발의 탄두와 탄피를 제외하고는 아무 단서도 없었다. 공안부에서는 최도식씨를 우룸치로 급히 불렀다.

일하고 있는 최도식씨.

중국 최초로 총탄 흔적을 연구한 전문가 중 한명인 최도식씨는 탄피와 탄두에서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탄도 흔적을 판별하는 독보적인 '묘수'를 익혔다.

최도식씨는 중국의 총탄 흔적 감정 기술이 시작부터 성숙에 이르는 과정을 목격해왔다. 1997년 그는 국제수사기자재 전시회에서 외국에서 개발한 '총탄 흔적 자동 식별 시스템'을 보고 감회가 깊었다.

"외국에서 만들어 내기까지 했는데 우리가 아직 시작을 안했으니까 말이 안되지요. 그래서 저는 우리 나라도 이런 자동식별 시스템을 연구해야 한다며 결심했어요."

어떻게 하면 탄흔을 정확하게 찍어낼 수 있을까? 최도식씨는 기술적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7개의 대학교, 3개의 알루미늄 포일 공장, 3개의 정밀기기 연구소를 차례로 방문해 4가지 모형도를 설계했다. 5년 남짓이 몰두하여 연구한 끝에 탄두 강선의 흔적을 빠른 속도로 정확하게 추출할 수 있는 기술을 발명하였다. 이 기술을 활용해 '탄두 강선 흔적 자동 식별 시스템'을 만들어내 국내 기술 공백을 메웠으며 세계 선진수준까지 도달했다.

'정교함' 을 '극치'로 만들기까지 그는 종래로 태만한 적이 없었다.

2020년 여름, 최도식씨는 자신이 발명한 지문복원시스템을 리용하여 9박 9일간 련속 일하여 목단강시공안국이 제출한 변형지문의 여러곳의 증거특징을 성공적으로 고정시켰다. 올해 2월에도 최도식씨는 한 총기 관련 사건의 난제에서 관건적인 역할을 발휘하였다...... 그는 비정기적으로 일련의 난제 사건의 감정을 맡았으며 매일 과거에 수사했던 전형적인 사례 자료를 정리하면서 기층 수사관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책으로 편집하고 있다.

번잡한 사진 모형, 통계 데이터, 사례 분석은 최도식씨의 손을 거쳐 그림까지 곁들인 조판이 깔끔한 프레젠테이션으로 변했다. 자세히 읽어 보면 내용이 전면적이고 명확하며 리해하기 쉽다.

최도식씨는 최근 몇년간 일과 세끼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집에서 PPT를 정리하며 평생 배우고 쌓은 지식과 경험을 책으로 만들었다.

"생명의 법칙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되여 있지요...... 나는 젊은이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뭔가를 남기고 싶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은혜에 보답하던 데로부터 좋아하기까지, 신앙을 실천하는 힘

"당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말은 최도식씨가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반복한 말이다.

"저는 구사회에서 태여났으며 가난한 농민의 아이였습니다. 나의 생명, 나의 지식은 모두 당이 준 것이며 나는 오로지 보답하려는 생각 뿐입니다. 70여년 동안 나와 함께 해오고 나를 지탱해 준 이런 감사의 마음과 보답하려는 사상, 영원히 당을 따라가는 확고한 신념은 내가 오늘날까지 열심히 일하도록 한 정신적 동력이였습니다." 구순이 넘은 이 로인은 여전히 17세에 중국인민지원군에 입대한 날 우렁차게 울려퍼지던 군가와 군호 소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건강한 모습의 최도식씨.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상급이 맡겨준 모든 일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이건 인민이 나에게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입대한 이듬해에 최도식씨는 입당 지원서에 당과 인민에 대한 무한한 감격을 썼으며 혁명청년의 '초심'도 썼다. 최도식씨는 "당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소박한 념원을 가졌으며 당과 조국에 대한 무한한 사랑은 그의 초심의 출발점이고 신앙의 발단이였다. 그는 지원군 전사에서 형사기술 전문가로 되기까지 이 순수한 신앙으로 인생의 '두 전장'에 필생의 심혈을 기울여왔으며 구순의 고령에도 여전히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다.

최도식씨는 1955년 경찰 생활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7000여건의 흔적과 물증을 한점의 오차도 없이 감정했으며 대부분의 감정 결과는 난제 사건을 해결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퇴직 후에도 그는 여러차례 어려운 사건을 조사하고 해결했다.

"조직이 필요로 할 때마다 나는 부르는 대로 달려갈 것입니다." 퇴직한 지 오래 된 최도식씨는 여전히 수사 일선을 지키고 있다. 최근 몇년간 그는 밖에 나가 사건을 처리하는 한편 집에서 슬라이드 정리에 몰두했다. 그는 "이 수십년 동안 모은 것을 빨리 정리해야 합니다. 특허도, 저작권도 원하지 않고 후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만을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조국의 생일을 앞두고 최도식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우리 조국이 더욱 번영하고 더욱 창성하고 더욱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내가 생각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조국에 보답하겠습니다. 이것이 내 평생의 약속입니다!"라고 말했다.

본보기가 되여 순후한 가풍을 세우다

최도식씨의 세 아들은 어른이 되여 모두 경찰이 되였다. "저희들은 아버지를 내심 존경합니다. 리해할 수 없을 때도 많았지만 아버지가 매우 의미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알고 있으며 그이에게 우리가 따라배울 바가 많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최도식씨의 장남 최성빈씨가 말했다. 막내 최영빈씨는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다. 근무한지 20여년이 된 최영빈씨는 2800여건의 흔적 물증을 검사했으며 100건에 가까운 사건을 성공적으로 수사하는데 가장 직접적인 근거를 제공했다.

"아버지만큼 큰 성과를 이루어 형사과학기술이라는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싶다"고 최영빈씨가 말했다.

퇴직후 최도식씨는 전심전력으로 과학연구난제해결, 전도수업에 뛰여들어 공안형사기술의 혁신발전을 추진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그는 "이 나이가 되면 신념이 흔들리지 않고 열의가 한결같도록 더욱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늘 말하군 한다.

"최도식 선생님은 우리 마음속의 정해신침입니다. 그이의 학생으로서 우리는 전문기능을 열심히 공부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의 직업정신을 더욱 잘 배워야 합니다. 올해의 검지 2024 지문전문회전과 DNA전문선전회전에서 우리는 70여건의 살인사건과 미제사건을 수사해냈으며 다년간 도주한 살인사건 도주범들을 체포했습니다. 형사기술 경찰은 막후에서 기술수단을 리용하여 묵묵히 자신의 힘을 기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최도식 선생님의 제자로서 반드시 그의 힘을 계승하고 충직하게 직행을 수행하며 형사기술자의 본색을 영원히 유지하면서 작자의 자리를 잘 지킬 것입니다." 성공안청 형사기술총대 흔적수사지대 지대장인 장위는 존경심과 자호감에 넘쳐 말했다. 

최도식씨가 젊은 세대와 함께 업무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청화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묘인령은 많은 우월한 선택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우수한 법의관이 되였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7.1훈장수상자 최도식 선생님의 수상 동영상을 보고 최선생님의 사적에 깊은 충격을 받았으며 고향에 오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3년간 일하면서 저는 최도식 선생님을 대표로 하는 형사기술자들의 직업 정신과 락관적인 정신을 체험했으며 이런 정신은 앞으로 저를 잘 인도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90세의 최도식씨는 종래로 '퇴직'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나는 사건을 해결할 때마다 젊어지는 것 같습니다. 수십년전 입당 지원서에 썼듯이 나는 자신의 일을 사랑합니다. 그것이 인민이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흑룡강일보

편역: 리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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