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맞아도 아플 것 같지 않다
가리마 고른 쪽진 머리
갸웃한 아미 아래
새각시 배래기에 스치우며
풀 먹인 이불안이
저 티 없는 다소곤한
숨결에
주름살도 꽃살로 팍팍 펴진다
각시야,
차라리 나를 두드려다오
내 등허리에
너의 미소 한겹 두겹 접어놓고
고운 팔로
자분자분 두드려 다오
그러면 내 안에서도
너 닮은 꽃물이
징징 번질 게 아니겠느냐
추석
아이야, 마당 쓸어라
나무잎은 쓸어내고
꽃잎은 그냥 두어라
가을볕도 고만고만 놔두고
선들바람은
허리띠가 헐렁해 진
울바자에 걸어놓아라
그리고 달이 들어오다
걸리지 않게
닫힌 창문도
처마에 올려
꼼꼼히 걷어두어라
앗차!
깜박 잊을번 했구나
사랑채에
얹어 둔 장구도 먼지 털어
냉큼 내여놓아라
년
저 꽃년들 괘씸하다
내 마음을
싹 뺏고는
아무 말도 없다
한 년이 물어본다
당신 혼자 아파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내 속에 있는
아픔에게 똑 같이 물어보았더니
바로 지금 아프단다
오, 온 몸을 터친 꽃은
나를 홀리는
계략도 묘략도 아니였다
아침
아침은 두부장수의 것이다
두부장수는 새벽별을 열어
겨울의 아침을 꺼낸다
잘 데운 초물에 어둠을 씻어
밤을 물컹물컹 걸러내고
목란꽃같이 부드러운
두부꽃에 해빛이 들어와
살 비빌 때
비로소 매듭이 풀어지는
두부장수의 앞치마에서
게으른 아침해가 떠오른다
씨간장
콩과 소금이 만나
물과 놀다
아예 잠겨버린 것은
태고의 자궁이여서였던가
곰팡이도
저 안에서 꽃으로 피여
마치 혼을 부르는
저고리인 양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면
지나가던 구름도
기웃대는 까닭을 알겠다
내 님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밤을 울던 두견새
장독대에 입을 닦고나면
사부작 사부작
행주치마 스쳐옴에
아침이 걸어오는 것을 본다
콩꽃
콩죽 먹고
콩밭만 매다
콩꽃처럼
희여진 머리
콩꽃은 해마다
한 꽃
한 꼬투리에
다섯알씩 뱄지만
울 엄만
손가락 셈으로
허양 헤도
삼 오는 십오
열 다섯 해에
적으만치
열 불알 낳았네
밭고랑
밭머리에는 할머니 허리를 닮은
비술나무 한그루 있었다
할머니가 소시적에 심은 것이였다
나무에는 늘 할머니
호미가 걸려 있었다
골땅은 해마다 깊어갔다
웬만한 고라니가
엎드려도 등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 소나기가 비술나무를
태를 치던 날,
할머니는 무거운 등을 내려놓고
골땅에 누우셨다
그날은 할머니저고리도
비술나무에 올라가는 날이였다
할머니 가슴에 풀씨들이 자랐다
어느덧 흰 구름된 저고리에
저녁 노을이 벌겋게 물들었다
별의 지게
나 죽으면 지게를 비석삼아
묘비로
세워달라 하시던 아버지
어느 날 지게가 없어졌다
누가 가져갔나 했더니
신기루처럼 아버지 등을 따라
하늘에 올라간
저 억겁의 별밭에
별씨 한 지게 담겨있었다
오늘도
아버지는 별을 파종중이였다
그믐달 초승달
어둠에 제 몸을 갈아 낸
하늘의 ( )
저 안에는 구경
무엇이 들어 있을까
실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있다
찬찬히 보아야만
알 수 있는 멍들,
별의 아픔이 있다
노을은 그 아픔에
밑줄 그은 피줄이라면
보이지 않는 것은 아프다
막걸리
밥상을 마주한 할아버지가
왠지 수저를 들지 않는다
왜 안 드셔유?
아리랑고개에서 쉬는 중이외다
다리쉼을 하는 거예유?
다리보다 목이 말라서유
그 고개는 물도 없는데유
물은 없어도 주막은 있다더군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