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저 영미입니다. 출장갔다 엊저녁 돌아왔습니다. 래일 토요일이라 오전에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어머니 보러 가겠습니다.”
“응 영미구나! 돌아왔니? 그래 보고싶구나. 래일 점심에 뭐 먹고 싶니?”
“한주일이나 장국을 못 먹었습니다. 어머니 하신 장국이면 됩니다.”
남방출장 한주일만에 돌아온 영미는 돌아오자마자 어머니한테 전화를 하였다. 정부기관에서 사업하는 영미는 두세날에 한번씩 어머니집에 와서 집도 청소하고 랭장고안의 밑반찬들도 새것으로 만들어드리면서 혼자 계시는 70여세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영미 어머니는 멀리에서 사업하는 아들이 모셔가려고 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싫다 하고 한 시내에서 사는 영미가 함께 살자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팔다리 성하게 걸어 다닐수 있을 때에는 혼자 있게 가만히 내버려 두라고 하였다.
영미 어머니가 사는 집은 대도시에서 사업하는 아들이 몇해전에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는 건물 17층에 어머니를 모시려고 산 집이다. 건물 남쪽으로 강이 흐르고 주변에 큰 공원이 있으며 유명한 큰 병원과도 가까와 생활하기에 편리하다. 이 작은 현성 도시에서 제일 비싸고 또 위치가 제일 좋은 곳이기도 하다.
이튿날, 아침해가 두둥실 떠 올라 빽빽이 들어선 고층건물들의 창문을 알른알른 비추었다. 크지 않은 정원은 부지런한 청소공들이 아침 일찍부터 깨끗하게 청소하여 깔끔하였다.
해가 중천에 떠올라 정원안의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웃고 떠들며 뛰여 놀 때 영미는 출장길에 어머니에게 준비한 스카프 선물과 과일 한박스를 들고 동네 입구에 왔다.
동네 입구 당직실의 경비원들은 모두 젊은이고 업주에 대한 태도가 공손하고 례절 바르기로 소문이 높았다. 특히 독거하는 로인들에게 더더욱 친절하였다. 영미 어머니를 비롯하여 동네 로인들이 간혹가다 채소랑 조금 무거운 물건들을 들고 당직실을 지날 때면 경비원들은 얼른 달려나와 서로 물건을 빼앗다싶이 들고 로인들을 집까지 친절히 모셔다드리군 하였다. 혼자 계시는 로인들에게 약간의 호의를 베풀어도 생활하는데 퍼그나 도움이 된다. 영미는 어머니를 깍뜻이 대해주는 경비원들이 너무 고마와 가끔 가다 과일같은 것을 사서 당직실에 가져다주면서 경비원들과 친숙한 사이가 되였다. 영미가 간혹 출장을 나가면서 한주일씩 어머니 뵈러 오지 못할 때에는 경비원들에게 전화를 해서 어머니를 부탁하군 하였다.
동네 입구 당직실의 경비원이 영미를 알아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영미는 환한 웃음을 짓고 허리 굽혀 답례하며 전자열쇠로 문을 열고 울안에 들어섰다.
아파트 동네 입구를 지나 조금 경사진 길을 따라 올라가느라면 분수가 뿜겨오르는 못가 옆에 우아한 륙각정자가 하나 있다. 륙각정자 바로 옆에 련꽃을 심은 작은 못이 있고 못 중간에는 물을 뿜어 올리는 분수대가 오똑 서있다.영미 어머니가 사는 동네는 모두 아홉동으로 되여 있는 고층 엘리베이터 건물인데 륙각정자는 아파트단지의 로인들이 매일 모여앉아 일상을 이야기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쉼터이다. 륙각정자에서 한담하는 분들은 대부분 할머니들이다. 영미 어머니도 이 륙각정자의 단골이다. 이 륙각정자에서 활동하는 로인들이 10명 가까이 된다.독거로인이 대부분이고 령감과 함께 금슬 좋게 단란히 사는 할머니가 계시는가 하면 어린 손주를 돌봐주러 농촌에서 온 할머니도 있고 자식들과 함께 생활하는 할머니도 있다. 하지만 반수이상은 독거 할머니들이다. 할머니들은 평소에 륙각정자에 모여 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화목하게 지냈다.
영미는 자연히 어머니와 친하게 지내는 할머니들이 고마웠고 매번 어머니한테 올 때마다 먼저 이 륙각정자에 잠간 들려서 할머니들에게 인사를 하고 함께 담소를 나누다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집에 올라가군 했다. 자주 오다보니 륙각정자에 계시는 로인들과 거의 다 면목을 익히게 되였다.영미는 올 때마다 과일이나 과자같은 간식들을 사다가 로인들이 앉아있는 륙각정자안 중간에 놓여있는 묵직한 돌상 우에 올려놓았다. “어머니들 천천히 맛있게 드세요!” 로인들은 모두 영미를 좋아하였다. “에그, 우리가 받기만 해서야 되겠소?...” 영미 어머니는 착한 딸 영미만 오면 어깨를 으쓱하였다.
오늘은 어머니와 전화통화로 점심에 간다고 이미 알려드렸기에 어머니가 륙각정자안에 안 계시는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륙각정자에 들렸다.과일상점에서 금방 산 신선한 귤을 로인들에게 드리기 위해서다. 귤을 한가득 로인들 한테 드리고 허리 굽혀 깍듯이 인사하며 돌아서는 영미를 향해 로인들은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에그, 오래 사니 좋기도 하지… 헌데 공짜를 자꾸 받기만 해서 되겠소?”
“딸이 아들보다 더 좋지?...”
영미는 자그마한 성의에도 감동을 받는 로인들의 인사에 가슴이 뭉클해났다. 영미는 어머니같은 저 로인들의 눈빛에서, 말에서 어머니를 부러워하는 눈치와 자식들을 보고싶어하는 애잔한 눈빛을 어렵잖게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매번 로인들을 만날 때마다 어머니를 대하는 마음으로 똑같게 대했다.
아빠트 정원에서 새들의 지저귐이 귀맛좋게 들려왔다. 저만치 비자루를 들고 정원의 길바닥을 쓰는 청소공들이 보였다. 영미어머니네 동네에는 청소공이 10명쯤 있었다.어머니가 계시는 제5동 아파트 구역을 담당한 장씨 성을 가진 청소공도 매우 부지런하고 마음씨가 착한 사람이다.
한번은 영미가 어머니 만나러 왔는데 카드열쇠를 갖고 오지 않아 아무리 벨을 눌러도 응답이 없었다. 안달아나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때 장씨가 달려와 청소공들이 사용하는 만능전자열쇠로 아파트에 들어가는 대문을 열어주고 이어 엘리베이터 단추까지 눌러주어 순조롭게 올라간 적이 있다. 그날 귀가 조금 간 어머니가 안방에 주무시면서 벨이 울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이다. 그날 이후 영미는 어머니한테 갈 때마다 떠나기전에 제일 먼저 열쇠를 가졌는지 확인하는 습관을 가졌다.
영미는 물건을 손에 쥐고 어머니가 계시는 5동 아파트로 향하였다. 출입문 앞에 거의 도착할 무렵 공교롭게도 친구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영미는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땅에 내려놓고 전화를 받았다.한창 전화를 받고 다시 짐들을 챙기고 일어서는데 저만치에서 길바닥을 쓸던 장씨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열쇠를 두고 왔어요?” 그러면서 급히 출입문을 열어주었다.
영미는 주춤거리다가 출입문안에 들어섰다. 장씨도 얼른 영미의 뒤를 따랐다. 영미는 장씨가 엘리베이터 문도 열어주려고 따라들어왔다는 것을 알았다. 영미는 뭐라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도로 삼키면서 장씨와 함께 엘리베이터 앞까지 와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말없이 기다렸다. 엘리베이터가 일층에 내려오고 영미가 들어간 후 장씨는 엘리베이터 단추를 눌러주고는 밖으로 물러섰다. 영미는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였다. 서서히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좋은 일을 하고 자랑하고 싶어하는 어린이처럼 장씨는 손을 흔들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우로 움직이며 올라가기 시작하자 영미는 운동복호주머니에서 아까 울안에 들어올 때 작은 문을 열던 전자열쇠를 꺼냈다. 장씨는 영미가 밖에 서서 전화를 받는 것을 보고 아마 열쇠를 가지고 오지 않아서 전화로 련락하줄로 알았던 모양이다. 영미는 열쇠를 손에 쥐고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영미의 얼굴에도 금방 장씨 얼굴에 피였던 웃음처럼 해맑은 미소가 아침해살처럼 잔잔히 피여 올랐다.
엘리베이터 안의 빨간 아라비아 수자가 깜빡이며 한자리씩 높아갔다. 상승하는 엘리베이터 문틈으로 어머니가 자박하게 끓인 된장국 냄새가 남실남실 코 끝으로 날아왔다...
오늘따라 어머니가 해주는 장국이 더 맛갈스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