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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강신문 > 동포

타향서 활약하는 흑룡강 사람들 | 서리가 내려야 국화의 절개를 안다

심천해바라기플라스틱제품유한회사 김선실 사장

2023-04-26 17:39:50

"돈이 많이 들어오는것 같아도 별로 남는것이 없다. 그래도 내가 이런 공장을 세웠고 유지해 나가는것이 만족스럽다. 성취감을 느낀다. 녀성이라고 해서 집에만 있으면 안된다. 꼭 사업도 하고 돈도 벌고 가정도 잘 꾸려가야 한다"

이처럼 쇠소리 나는 녀성 강자가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심천에서 1시간 거리 떨어진 룡강구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흑룡강성 계동현 출신인 김선실(녀, 1976년생)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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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실 사장이 회사에서 생산한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사장이 경영하는 회사 이름은 심천시해바라기플라스틱제품유한회사이다. 회사 이름도 해바라기라고 달았는데 호기심이 생겼다. 회사 로고도 해바라기 꽃모양 이였다.

아마 녀성 사장이니깐 '해바라기' 이름을 붙였나 싶었다.  

운은 타고난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꾸는 것이다

김사장은 고향에 있는 계동현조선족중학교를 졸업하고 1994년초에 심천으로 진출했다. 화장솔을 만드는 한국 회사에 근무했다.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나 약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진로를 생각하게 되였고 많은 고민을 했다. 그냥 이대로 눌러앉아 평범한 생활을 보내자니 별로 달통이 안됐다. 

그러나 배운 것이 별로 없어 리상과 현실의 거리가 있었다. 결국 김사장은 새로운 출로를 찾기 위해 고향으로 귀향했다. 

그냥 고향에 돌아가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지으려고 한것이 아니였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고 새로운 인생을 설계했다. 심천에 일본기업이 많는것을 보고 일본어공부를 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당시 계동지역에 일본어학교가 성황을 이루었고 일본어를 배우는 학생이 많았다. 도전장을 내밀었다.

"처음부터 하나하나 시작해 보자. 새로운 도전에 힘 모아 나서자. 운은 타고난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꾸는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결정적인 게임에서 물러나지 말라"

김사장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렬차에서 앞으로 아무리 어려움이 많아도 꼭 극복하리라 다짐했다. 김사장은 모든 잡념을 포기하고 1년 동안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1997년 말 다시 심천으로 향하는 렬차에 올랐다. 제2차 심천행 이였다. 기분이 남달랐다. 제1차 심천행은 아무런 목적이 없었지만 제2차 심천행은 목표가 뚜렷했다. 그만큼 자신감도 생겼다. 

김사장은 곧장 일본회사를 찾아갔고 일본어를 배운 보람으로 무역담당 보직에 앉게 되였다. 김사장은 '운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꾸는 것이다'라는 도리를 자신의 행동으로 립증했다.

홀로 서기에 나서다 

김사장은 일본 회사에서 2011년 퇴사하고 자체로 일본 무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소학교 교재용품(세트)과 디스니에 쓰는 소모용품 무역을 시작했다. 

김사장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일본 무역을 하다가 2016년 또 한번의 변화를 꾀했다. 그해 5월 생산 공장을 가동했다. 무역과 생산을 겸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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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장이 디스니 제품 인쇄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현재 소학교교재용품, 디스니에 쓰는 소모용품, 완구제품 등 주로 3가지 제품을 생산하고 있어요. 교재용품이 60%, 디스니 소모용품이30%, 완구제품이 10% 차지 합니다. 디스니 제품은 디스니의 위탁을 받고 생산합니다. 디스니 요구 제품은 종류가 많고 수량이 적어 오더를 주어도 생산하겠다고 나서는 공장이 적어 손님의 요구를 만족시킬수 없었어요.그래서 제가 직접 생산한다고 공장을 설립 했어요"

막상 생산 공장을 세우고 보니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생산 공장을 가동하던 초창기 때 일로 얼마나 로심초사를 했는지 그녀는 입술이 다 부르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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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자들이 불량품이 없나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하고 있다.

그나마 매출이 올라가고 할 때는 내가 해냈다는 성취감에 도취되여 모든 고통을 잊을 때도 있었다. 

다행히 소학생교재용품은 코로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아 안정된 생산이 보장됐다. 

반면에 관광객이 대폭 감소돼 디스니 제품 생산이 20% 넘게 감소하는 아픔을 겪었다.

김사장은 일관되게 '고객우선, 품질제일, 신용 경영'리념을 확고히 하며 개척하고 혁신하며 탁월함을 추구했다.

아울러 전심전력, 신용, 혁신, 상생의 기업정신을 실천했다. 고객을 중심으로 하며 엄격한 품질관리 시스텀을 구축하고 제품의 설계 제조, 생산, 포장, 운송의 전과정을 엄격히 관리하며 엄격히 제품품질 표준을 집행했다.

일하는 녀자가 아름답다

"초창기에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어려움도 많았어요. 중소기업으로써 자체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때문에 어려웠어요. 게다가 녀성이기 때문에 더 어려움이 많았어요. 가정과 경영을 두루 돌보자니 더욱 그러했어요. 우리 집은 딸이 셋인데 제가 장녀입니다. 친정 부모를 모시고 있어요. 때론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기분이 좋지 않고 할 때가 있어요. 집에 들어가 우울한 모습을 친정 부모한테 보이기 싫어 밖에서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며 화이팅, 화이팅을 웨치며 기분 전환을 할 때도 있었어요. 이렇게 해서 좋은 기분으로 웃는 얼굴로 집에 들어갈 때가 많았어요"

그러면서 김사장은 "딸이 둘이 있는데 10살 막둥이와 같이 놀아주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친정 엄마의 딸, 두 딸 아이의 엄마, 남편의 안해, 게다가 60여명 로동자들의 생계를 책임진 경영인 , 광동성조선족녀성협회의 비서장, 김사장은 1인 5역을 담당했다. 

"부정적인 일도 지나고 보면 잔물결이다. 소신을 가지고 장기적 투자를 하다보면 반드시 성공이 보장 되겠다"

마치 해바라기가 태양을 따르는것처럼 김사장은 아무리 어려운 일, 시끄러운 일이 있어도 항상 이런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아침 출근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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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장과 김웅렬 공장장이 제품 생산과정을 둘러보고 있다.

김사장이 무역을 할 때인 2014년부터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는 김웅렬(1985년 생)공장장은 "힘들 때 밖에 일을 적게 했으면 좋겠다"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내가 2020년 8월부터 광동성조선족녀성협회 비서장을 맡았어요. 그러면서 밖에 나가는 일이 많아졌어요. 전에는 룡강구녀성협회를 설립해 4년간 회장직을 맡았었구요. 그러니 자연히 회사 일을 돌보는 시간이 많지 않아 우리 공장장이 많이 고생했지요. 그래서 평상시에도 불만이 많아요"

김사장은 비서장직에서 리임하면 회사 일을 많이 돌보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웅렬 공장장은 "모든걸 다 할수 있습니다. 저 같으면 3년 코로나에 공장문을 닫겠는데 정말 버티는걸 보면 녀강자입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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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자들이 생산에 몰두하고 있다.

김사장은 "어느 한번은 자신이 조직한 룡강녀자배구팀 성원들과 노래방에 가서 '바램'이라는 노래를 불렀더니 녀자 선수들이 서로 부둥켜 안고 다들 울었다"고 말했다.

노래 가사가 김사장이 걸어온 려정과 비슷하기 때문에 공감대를 이루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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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전경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 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때문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평생 바쁘게 걸어 왔으니 다리도 아픕니다...."

노래 가사가 거울처럼 김사장의 삶을 그대로 비추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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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설비

날씨가 추워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알고 어려움을 겪어야 진정함을 알수 있다. 김선실 사장은 바로 이런 녀자이다. 그녀는 실제 행동으로 '일하는 녀자가 아름답다'는 도리를 전파하고 있다. 

'서리가 내려야 국화의 절개를 안다'는 말이 틀림이 없다.

/글. 사진 리수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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