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식이는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다. 남방의 모 도시에서 아들애가 무슨 회사를 차린다며 엄마에게 집일을 돌봐달라고 부탁을 해서 안해와 함께 그 낯선 땅에 닻을 내린지도 어언듯 3년이 된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도시에서 살다가 대도시에 간 광식이는 처음에 와락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올 생각도 많이 했었다. 밖에 나서면 하늘도 이상할만치 뿌연 느낌이고 공기도 고리타분하기만 해서 정말 이게 어디 사람 살 곳이냐고 두덜댄 적이 수없이 많았다. 거기에 아는 친구도 없이 술 마셔도 혼자만 마시니 멋적기만 했다. 더구나 한심한 것은 아들 내외간이 광식이가 담배만 꺼내면 얼굴을 찡그려댔다. 그래서 담배는 복도에 나가 피워야 했다.
“자식집에 와서 담배 피울 권리도 없이 이게 무슨 멋이야? 빨리 집에 가야 해.”
광식이가 이렇게 두덜대면 안해가 제꺽 입을 막았다.
너무나 살던 곳이 그리워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홀아비’ 생활이 싫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슴슴하게 보내다가 요즘 며느리의 단위에서 반년간 방학을 해서 안해와 같이 집으로 돌아갈 기회가 생겼다.
기차 타고 달리는데 멀리서부터 고향냄새가 풍겨오는지 코끝에서 향기가 감돈다. 가슴에는 흥분이 꽉 차있다. 그러면서 눈앞에는 고향의 화폭이 생생한 모습으로 떠오른다.
비오는 날이면 가만 있지 못하는 친구들이다.
“비가 오는데 그저 이렇게 하루를 지내면 안되지.”
수일이가 이렇게 전화 걸어오면 그날은 무조건 술자리가 생긴다.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술이요, 날씨 쾌청해도 술이요 술좌석이 실실이 내리는 비처럼 끊어지지 않았다. 모두가 인제는 청춘의 랑만이 증발되긴 했어도 그 다음의 성숙의 랑만을 즐기면서 가슴에 들어앉은 락조의 쓸쓸함을 몰아내고 싶었다.
드디여 고향역에 내렸다. 집에 들어선지 일주일만에야 광식이는 친구들과 만나려고 했다. 불같은 성미인 광식이는 그날로 인차 친구들을 만나고싶었지만 참았다. 코로나라고 해서 아직도 밖에 나서면 마스크를 착용하는 시기라 형세가 좀 더 좋아지길 기다렸다.
그 일주일동안 매일 위챗으로 친구들과 대화만 했는데 모두들 열정을 보여주었다. 광식이는 언제봐도 년상도 년상이겠지만 행동과 언어가 묵직하고 매사에 어긋남이 없는지라 모두들 높이 보는 편이였다. 인제 만나면 만취하자는 둥, 그립던 회포를 밤새며 나누자는 둥... 친구들한테서 뿜겨나오는 온기를 읽을 때마다 광식이는 뜨끈한 감격이였다.
세월이 흘러가고 나이 들어도 마음만은 여전히 후더운 친구들이다. 그래서 광식이는 인제 술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잘 차려서 친구들의 훈훈한 정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드디여 길다고만 느껴지던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그날 아침 광식이는 전화를 들었다.
“준석이, 오늘 저녁에 만나기요. 밥은 내가 사는거고.”
“어쩐담? 미리 약속한 친구가 있는데...”
이번에는 호익이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우리 못 본지 삼년이 되는군. 그간 난 좀 늙었는데 당신이야 안 늙었겠지? 워낙 언제봐도 활기찬 모습이니까. 저녁에 만나고 싶은데 봉황식당에 오길 바라오.”
“정말 보고 싶구만. 그런데 저녁에 처가편에 생일이 있어서 어쩔가? 그러잖으면 후에 보든지.”
광식이는 이렇게 제일 가깝게 지내던 일곱 친구를 불렀지만 동수가 선선히 대답했을 뿐 나머지 여섯은 모두 이미 선약이 있다고 하였다.
날자를 잘못 잡았다고 생각한 광식이는 그날 모임을 취소했다.
이틀후 광식이는 또 전화를 들었다. 그런데 준석이와 호익이 그리고 나머지 네 친구가 역시 처음과 똑같은 대답을 하였다. 그 이튿날도...
(대체 웬 일이람?)
광식이는 오리무중에 빠졌다. 시에미 역정에 개배때기를 찬다고 광식이는 애매한 핸드폰을 확 메쳤다.
그날 저녁에 광식이는 동수와 함께 식당에서 만났다.
원래는 여덟이서 화끈한 술자리를 만들려고 했는데 둘 뿐이라 술상에는 적막이 흐렀다.
두사람뿐이지만 광식이는 손이 크게 여섯가지 반찬을 올렸다. 그리고는 사진을 찍어서 여덟 친구로 모인 그룹에 올렸는데 조용했다. 평소에는 뭐 하나 올리면 너나없이 뒤질세라 이런 저런 반응 보였는데 아마도 초대를 거부한 것에 마음에 걸려서일가?
저가락이 별로 가지 않는 안주들이 싸늘이 식어가고 있었다.
“아참. 리해가 안 가네. 3년전에는 부르게 바쁘게 달려오던 친구들이였는데…”
“친구 다르게 생각말게나. 요즘 모두들 사는게 좀 어렵게 되였다네. 3년간의 코로나 영향으로 자식들이 일 못해서 부모의 돈으로 살아가는 준석이는 돈곤난에 부딪친거구, 호익이도 아들이 중병에 걸려서 달마다 로임이 거기로 다 들어가다 싶이 하고 다른 친구들도 비슷한 상황이라네. 세상에 공짜가 없다고 그 친구들이 밥 한끼를 얻어만 먹고 갚지 못해서 그럴 거요.”
동수의 말에 광식이의 표정은 괴로움으로 어둡기만 했고 늘 입가에 매달려 있던 웃음도 어덴가 도망쳐버렸다. 련속 술잔을 굽낸 광식이는 자꾸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친구간에 무슨 엎음갚음이라고? 참 내가 뭐 어디 갚으라 하지도 않는데.)
웃음으로 법썩대야 할 술자리는 헤여질 때까지 어두움이 깔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