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화 회장 프로필
1970년 흑룡강성 오상시 출생
현재 청도 동해소방장비유한회사 법인대표, 청도 화텅그룹(华腾集团) 동사장, 중국소방협회 이사, 중국소방차소방펌프협회 부주임, 산동성흑룡강상회 부회장 ,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 제11대 회장(2019년부터 현재까지)
청도시 성양구 정협위원
경천애인(敬天爱人)은 유가의 기본사상으로서 전통 민본사상(民本思想)의 주요내용이기도 하다. 경천(敬天)은 지고(至高)한 가치와 꾸밈이 없는 자연의 법리(法理)를 공경한다는 뜻이고 애인(爱人)은 사람을 최상의 가치를 지닌 존재로 존중하고 어떤 목적을 위해서 사람을 수단시해서는 안되는 신성한 존재로서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 내포되여 있다.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 배철화 회장의 신조(信条)가 바로 경천애인 사상이다.
한국독자기업의 말단직원으로부터 법인대표로 샐러리맨 신화를 창조하고 또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으로 성장하기까지 그가 성장해온 궤적 그라프에는 본인이 평소에 굳게 믿어 지키고 있는 생각들이 점철되여 있다.
샐러리맨이 그룹회사의 법인대표로
샐러리맨의 신화는 중국조선족에게도 분명 존재한다.
배철화 회장은 문화대혁명의 열기가 한창 후끈 달아오르던 1970년도에 흑룡강성 오상시에서 태어났다. 고중을 졸업하고 잠시 현성 공안계통에서 보통 순경으로 일했던 그는 1990년에 군 입대의 길을 택했다. 당시의 정책에 따르면 퇴역군인에게 좋은 일자리를 우선적으로 제공하게 되여있었다. 사실 1993년 퇴역한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시공업국에 분배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 사이 세상은 많이 변해있었다. 개혁개방의 진일보 심입과 더불어 국문이 더 크게 넓게 열리면서 산동성 청도를 위시한 중국 연해도시로 한국기업들이 홍수처럼 밀려들어왔다.
"정말 홍수와 다름없었습니다. 기회를 잡지 못하면 한평생 방향없는 삶을 살 것만 같았습니다."
군에서 익힌 결단력으로 배철화는 단연 누님이 있는 청도로 향했다. 그리고 처음 입사한 회사가 한국독자기업인 청도 동해소방장비(东海消防装备)유한회사였다. 학력을 중요시하는 기업환경에서 그에게 차려진 일자리는 현장관리였다. 그것도 조선족이라는 신분이였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배철화는 정직한 본성대로 열심히 일을 배우고 터득해나갔다.
그러다가 1995년에 그의 인생을 확 바꿔버릴 번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 회사에서는 해마다 우수한 직원을 선발하여 한국으로 연수를 보냈었다. 소방장비는 상대적으로 기술함량이 높기에 직원들의 자질제고가 필수였기 때문이였다.
잔꾀를 부리지 않고 직심으로 일했던 배철화도 그중의 한사람으로 뽑혀 한국으로 떠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회집을 경영하는 회사 회장의 처남과 사귀게 된다. 그의 사람됨을 높이 평가한 처남이 배철화가 연수를 마칠 무렵 느닷없이 제출해왔다.
"이번에 중국으로 돌아가지 말고 내 일을 좀 도우라마."
"그러면 회장한테 혼날 거잖아요."
"그건 걱정마. 내 알아서 매형과 얘기할테니."
모름지기 큰 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배철화는 못 이기는 척 하면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런데 3개월만에 누군가의 신고로 잡혀 강제귀국을 하게 되였다.
"하마트면 팔자에 없는 일식집 주방장이 될 번 했습니다."
그렇게 돌아와서 군소리없이 기름때를 묻히며 일했다. 그래도 그의 성실한 일자세는 회사의 긍정을 받아 현장관리로부터 계장, 과장으로 서서히 승진할 수 있었다.
1998년이 되여 회사는 IMF의 영향을 받으면서 도산의 위기에 처했다. 본사에서 기술자와 관리인들을 철수시키면서 문을 닫으려는 그때 배철화가 나섰다. 다년간 현장을 뛰면서 모든 기술과 경영비법을 터득한 그는 자신이 한번 해볼테니 기회를 달라고 설복했다.
밑져야 본전인터라 회사에서는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고 그때로부터 배철화는 공장장이란 타이틀을 달게 되였다. 곧 도산할지 모르는 회사라 해도 빈주먹이였던 그가 최하층 관리로부터 공장장으로 부상한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였다.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쳤던 그 시절을 배철화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기술자들이 몽땅 돌아가버린 마당에 압출기 설비를 수리한다고 기름때가 번지르르한채로 기계옆에서 3박3일동안 먹고 자기도 했었다.
자신의 몸에서 부족점을 찾고 꼭 성공해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의 끈질긴 노력으로 회사는 드디어 기사회생의 길을 찾아냈다.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그들의 제품은 북경올림픽경기장, 청도 류정공항(青岛流亭国际机场), 한국인천공항, 롯데백화점, 경복궁 등에 제공되면서 히트를 쳤고 따라서 업계의 주목을 받게 되였다.
2006년에 회사는 자체로 공장부지를 구입하고 이틈해부터 건축면적이 1.5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새공장을 지어 2008년에 입주했다. 따라서 2600제곱미터의 기숙사와 식당도 갖추고 통근버스도 운영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해에 배철화는 법인대표인 총경리직을 맡게 된다.
단일 경영으로부터 그룹회사로 발돋움
성공의 뒤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법이다.
수출에만 의거했던 배철화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였다. 경쟁사가 늘어나고 수출단가가 내려가면서 리윤의 폭은 하루가 다르게 적어졌다.
2008년에 총경리직을 맡은 배철화는 과감히 내수로 전향하는 경영방침을 확정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갤러프에 라면 몇박스씩 싣고 차에서 먹고 자면서 장강 남북을 샅샅히 돌았다.
내수 결정은 명지했다. 그해 하반년에 800만원의 오더가 떨어졌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2천만원의 내수 매출을 이룰 수 있었다. 그들의 제품은 멀리 절강, 해남도까지 전국 각지로 납품되고 있으며 내수가 8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소방호스는 전 산동성시장의 90%이상을 차지, 호스 부분만 따지면 아시아 최대의 공장이다. 이 회사의 주력제품인 300미리미터 소방호스는 한때 대련의 대형화재때 위력을 발휘하면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새로 개발한 특수소방호스 한가지 품목만 가지고도 매출이 3.6억에 이르는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내수전략은 배철화의 역할이 돋보이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기업재생에 도전하고 성공한 모델이였다. 수출만 할 때는 그의 역할이 제한적이였지만 총경리직을 맡아하면서 내수에서 업적을 쌓은 결과 2015년에 이르러 직접 회사를 관리하게 된 것이다. 현재 주주 3명 중 2명은 한국인이고 그가 모든 업무를 주관하고 있다.
소방호스만 팔면 아깝다. 그리고 고객에게는 불편이다. 고객들이 찾아와 소방장비를 세트로 팔 것을 요구해왔다. 배철화는 지금까지의 노하우를 살려 독일 등 유럽과 미국의 소방차를 주문하고 거기에 자체의 소방장비를 가설하여 판매하는 소방차 무역업에도 골인했다. 단순한 소방호스를 생산판매하던데로부터 소방호스, 수입소방자동차 무역, 소방장비 A/S까지 일체화한 종합적인 규모를 갖춘 대형 소방장비회사로 거듭났다.
그들의 제품은 수십가지가 되며 신제품만 10여 가지에 이른다. 앞으로는 농촌시장을 위해 이동하기 편리하고 가격이 싼 소형소방자동차를 개발 중이다. 한편 미래대비책으로 2016년에 베트남시장도 고찰하고 돌아왔다.
배철화는 중국소방호스 국가표준인 GB6246-2011표준의 기안자(起草人)일뿐만 아니라 산동성소방청 청장과 더불에 산동성에서 모두 2명뿐인 중국소방협회 리사로 당선되였다.
그러나 배철화의 꿈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배철화는 잘나갈 때일수록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회사를 그룹화에로 일떠세우는 작업은 그때로부터 시작된다.
2015년 6월 배철화는 2000만원을 출자하여 면적이 1200제곱미터가 되는 청도 어명당차고문화관(青岛御名堂茶膏文化馆)을 설립했다. 이 문화관은 문화라는 매개물을 통해 다양한 교류를 진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편 차와 다기(茶具) 그리고 각종 예술품, 보석제품, 조각공예품을 전시판매할뿐만 아니라 세미나 장소로도 제공되여 청도의 대표적인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한편 2016년에는 500만원을 투입하여 청도 화텅락하사커피유한회사를 설립한데 이어 청도화텅브랜드(CI설계)유한회사도 세우면서 그룹화의 한길로 기세당당하게 달리고 있다.
2022년 6월 청도동해소방회사 소방호스제품은 우수품질, 량심제품, 우량기업 등 까다로운 조건부의 정부기관의 선정을 거쳐 국가집중명단입찰명단(国家集中采购白名单) 앞순위에 들어갔다. 몇천개 업체중에서 4-5개 업체만이 선정될 수 있는 명단에 들어간 것이다. 우수한 자체의 브랜드로 중국내수시장에 진출하기 위하여 꾸준히 끊임없이 노력해온 배철화 회장의 선경지명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였다.
기업은 나누면 배로 커진다
2015년 6월 18일 청도 하야트호텔에서 진행된 청도 어명당차고문화관 오픈식 뒤풀이행사에서는 문화관에서 소장한 보이차와 그림 등 예술품을 판매한 대금과 참석자들의 기부금을 모은 총 83만원에 달하는 거금을 중국의 빈곤지구 교육프로젝트에 기부하여 찬사를 받았다.
배철화는 직원이 없으면 회사가 없다고 말한다. 그의 사업성공의 모태인 청도 동해소방장비유한회사에는 직원이 100여 명이다. 수백만원짜리 대형 기계 수십대가 자동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공장에는 많은 사람이 필요치 않았지만 그는 직원 삭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직원대우를 높이기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해마다 설이나 추석때에는 어김없이 200% 보너스를 발급했다. 당연히 직원들은 회사의 일을 자기 집 일처럼 다투어 했다. 덕분에 회사 효률이 다른 회사보다 배가 더 높았다. 모든게 보상으로 돌아온 셈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회사에 특수공헌을 한 직원에 대한 포상이다. 년말이면 전 직원에 한해 생산량, 매출액, 근무시간 등 여러면으로 가산점을 매긴다. 최고득점 직원에게는 가치가 20여 만원에 달하는 자가용을 상으로 준다. 공장장을 포함하여 이미 4차례에 걸쳐 4대를 포상했다.
한편 일반 직원들의 적극성을 동원하기 위해 년말 총화행사때면 푸짐한 식사와 상품 외에도 외국관광추첨행사도 가진다. 행운을 거머쥔 직원은 자기절로 려행 목적지를 선정하며 회사에서는 일체 려행비용을 부담한다. 이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5년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 수석부회장으로 당선된 배철화 회장은 이제는 민족사업에도 나서고싶다고 밝혔다. 그간 회사 운영과 확충에 바삐 보내다보니 미처 민족사업에 눈길을 돌릴 겨를이 없었다는 그는 시간을 쪼개 써야 하는 바쁜 와중에도 녀성협회 행사에 강사로 나서는 등 눈에 보이지 않게 조용히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배철화 회장은 일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한다. 같은 일을 반복해서 오래 하다보면 쉽게 피곤해지고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면서 자신은 태생적으로 일복을 타고났는지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새로운 도전을 한다고 한다.
배철화 회장은 기업은 변화를 거듭해야만이 살길이 나지기에 부단한 혁신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제품의 형식이나 내용이 얼마간 유지되면 시장에는 어쩔 수 없이 모조품이 나타나게 된다.
그런 경우를 대비하여 새로운 제품을 부단히 개발하여 남들이 영원히 따라올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기업인의 지혜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새로운 도전이 있으니 삶의 방향도 생겨 항상 즐겁고 유쾌하게 일할 수 있다고 한다.
기업운영의 정수를 배워라
2019년 12월 28일 배철화 씨는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 제11대 회장으로 정식 취임하였다. 1997년 12월에 설립된 산동성 첫 조선족기업단체로서의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는 20여년의 발전을 거쳐 연해지역에 진출한 조선족사회를 하나로 이어주는 코기러기역할과 구심점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런 중요한 경제단체의 수장에 배철화 씨가 만장일치로 회장에 당선된 것이다.
"회원사들의 친목과 경제창출 및 전국 조선족기업가협회들과의 친목 교류를 통한 공동발전의 길을 모색하고 개척해나가겠습니다."
배철화 회장은 본인이 취임사에서 밝힌 구상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겨갔다.
2020년 10월 12일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 새 사무청사 임대입주식이 성황리에 진행되였다. 총 3400평방미터 건평에 3층으로 된 멋진 사무공간에는 조선족기업 제품 전시장, 협회 사무실 및 로년협회와 녀성협회 사무실들이 줄줄이 입주하였다. 성양구의 노란자위로 불리우는 홀디데인호텔 맞은켠 국가광고산업단지내에 위치한 이 기업가협회 청사는 설립해서부터 청도조선족사회의 구심점으로 떠올랐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장거를 배철화 회장이 이루어낸 것이다.
2020년 12월 31일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 주최로 열린 송년회에서는 사상 첫 전국유명 기업회장 대담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중국의 첫 조선족상장기업인 랑즈그룹(朗姿集团) 신동일 회장, 심양조선족기업가협회 박해평 회장, 청도요구르트식품회사 박성진 동사장 및 배철화 회장 등 거물급 기업가들을 대담현장에 모신 것이다. 대담 행사는 소문을 듣고 현장에 모여든 500여명의 관중들의 뜨거운 호응속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청도의 관중들은 본인들과 똑 같은 동북3성 조선족 출신들이 어떠한 도경과 시련을 거쳐 성공의 레드카펫을 걸을수 있는 비결을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으며 이러한 기회를 마련해준 기업가협회에 너도나도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대담행사가 끝나고 돌아갈때 두 어깨가 올라간 것 같더라는 어느 관중 기업인의 후한 평가이다.
2021년 중국공산당 창당100주년을 기념하여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에서 주최한 기업인포럼이 또다시 개최되였다. 이번에는 전국조선족기업가협회 표성룡 회장,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 김창호 전임 회장, 청도조선족녀성협회 리계화 회장 등 대담 주역들이 무대에 올랐다. 이외에도 한국 삼성에어컨 중국본부 김신중 부장, 청도황해제약그룹 유풍걸 총재 등 한국과 당지 한족기업가들도 자리를 함께 하고 경험담을 나누었다.
이날 행사에 귀빈으로 참석한 청도한국령사관 김경한 총령사는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에서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전국에서 내놓아라 하는 기업가들을 초청하여 포럼을 개최한데 대하여 높은 점수를 주었다. 청도한국상회 리덕호 회장도 동감을 표시하면서 앞으로 본인들의 행사에도 조선족기업가협회를 본받아 기업가대담프로그램을 추가할 것이라고 표시했다.
이번 행사가 한줄기 시원한 비처럼 청도에서 사업하는 조선족기업인들의 기업운영에 감로수가 되여 흘러들었음은 더 말할나위가 없다.
전국의 조선족기업가협회는 끈끈한 형제
기업가협회 회장으로 당선된 배철화 회장이 매년마다 견지해오고 있는 것이 바로 전국 각 지역 조선족기업가협회들과의 친선교류이다.
전국조선족기업가협회 표성룡 회장이 근무하고 있는 심양을 포함하여 연변, 천진, 북경기업가협회와의 교류를 활발하게 이어오고 있다. 매번 출장방문에서 빠질수 없는 것이 각 지역 조선족기업가협회와의 전략합작협의서 체결과 회원사 방문이다.
2021년 5월 28일 배철화 회장이 인솔한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 대표단 일행은 2박3일 일정으로 연변조선족기업가협회를 방문했다. 배철화 회장은 연변협회 리성 회장과 '전략적 협력 파트너 협의서'를 체결하고 향후 량 협회와 기업인들의 교류와 합작을 한층 추동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량 협회는 향후 상호 방문기제, 사업교류, 정보교류를 활성화하면서 밀접한 련계와 소통을 바탕으로 상호 관심과 의향이 있는 프로젝트와 사업에 대해 진일보로 폭넓은 합작을 전개하게 된다.
배철화 회장은 행사에서 "경제단체가 생존하는 길은 지역사회에서 노력해야 할 뿐만아니라 령역을 부단히 대회로 확장해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면서 "현재 전국 33개 조선족기업가협회의 힘을 합쳐 단결하여 상호 협력해야만 모두의 발전과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변조선족기업가협회 리성 회장과 길림천우그룹 리사장, 길림성 인대대표, 연변조선족기업가협회 명예회장 전규상은 "배철화 회장이 이끄는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는 과감히 창조하고 창신하면서 지역사회발전에 구심적역할을 하고 있는 우수한 단체"라고 극찬하면서 "연변과 청도지역 조선족기업인들의 상호 원활한 협력으로 한민족사회의 경제 문화 발전에 공동히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날 청도대표단은 박걸 회장이 운영하는 커시안그룹 연길공장을 현지 고찰하였다. 아울러 연변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인터넷쇼핑몰 '선중운생활플랫폼'가동식에 참가하였다.
7월 28일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 대표단은 2021전국조선족기업가포럼 및 아주경제협회 조선족기업발전위원회 설립식에 참석하였다.
배철화 회장은 전국기업가포럼의 귀빈으로 초대되여 무대에 올라 자신의 소중한 경험을 교류하기도 하였다. 이번 걸음에 청도대표단은 커시안그룹 본사를 방문하여 박걸 회장으로부터 기업의 창업사를 경청하였다. 동시에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는 국민건강산업에 대한 료해도 깊이 하였다. 동시에 북경에 본사를 두고 있는 랑즈그룹을 찾아 신동일 회장과 면담하고 기업운영과 금융합작의 필요성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였다.
커지는 꿈 – 민족빌딩을 세워라
2022년 6월 10일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 올해 첫 회원대회가 열렸다. 종잡을 수 없는 오미크론 확산으로 단체행사를 제한하면서 왕년에는 3월에 열릴 행사가 6월에야 열린 것이다.
여기에서 배철화 회장이 민족사회의 가장 큰 화제거리를 만들어냈다.
이날 행사에서는 청도한국총령사관 건물 등이 입주해 있는 천안사이버파크(天安数码城)의 개발사인 청도천안사이버파크유한회사와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간에 전략적 합작협의서가 체결되였다.
천안사이버파크는 청도시의 중점 투자유치 프로젝트로서 하이테크놀로지, 산업단지를 융합하는 업그레이드 제품을 제공하여 과학기술과 창의력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단지의 쌍창기지(双创基地)는 2019년에 국가공신부의 승인을 받았으며 인프라 완비, 운영관리 규범, 비즈니스모델이 명확하고 서비스기능이 구전한 등 특색이 있다. 단지내에는 청도한국총령사관을 비롯해 한국기업과 조선족기업이 60여개나 입주해 있다.
바로 천안사이버파크내 풍경이 수려한 백운산(白云山)공원내에 16층 구조의 총면적이 1만5천평방미터, 총 투자가 1억5천만원에 달하는 단독건물을 기업가협회의 민족빌딩으로 매입하는 방안을 발표한 것이다.
마이크를 잡은 배철화 회장의 목소리가 실내에 울려펴졌다.
"천안사이버파크내에 민족빌딩을 건설하기 위한 구상은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관련 실시방안도 회장단 의사일정에 올려 토론을 거쳐 협회의 금년 하반기 업무계획으로 내놓았습니다. 천안사이버파크 자체가 갖고 있는 각종 우혜정책이 기업가들의 사업확장에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으므로 많은 분들이 동참하여주기를 부탁합니다. 앞으로 이곳을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곳으로 만들어 민족의 부흥발전에 열과 성을 다해봅시다."
톤이 높지 않지만 또박또박 나오는 배철화 회장의 발언에 회원들은 너도나도 놀라고 흥분된 모습들이다. 상상만 해보았던 우리 소유의 민족빌딩 갖기, 그 꿈을 지금 배철회 회장이 진짜로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하는 분들도 있었다.
현장에 있던 20여명 기업 대표들이 참여 의사를 표시했다.
1992년 8월 24일 중한수교와 함께 청도에 진출한 한국업체들의 근무로 시작한 조선족들의 청도 진출,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어언 30년 세월이 흘러갔다. 자신들의 신근한 노력과 땀방울로 쌓아온 재부와 자원을 이제부터는 점차 하나로 집중하여 자체의 건물부터 마련하고 공동비상의 플랫폼을 만들어 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가?!
"민족빌딩건설은 회원사들의 자산가치증식에 리롭고 기업가협회와 민족경제발전에 리로우며 소비경제 활성화로 지역사회와 나라의 발전에 도움이 됩니다. 이것이 순리에 따라 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배철화 회장의 의미심장한 말이다.
/박영만 기자, 장학규 특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