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머리칼은 희끗희끗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기억의 창고에도 먼지가 소복이 쌓인다.
그런데도 어쩌면 이렇게 선명한가. 그 옷,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며 나들이 때마다 애지중지 입었던 그 예쁜 진달래꽃 블라우스가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
첫날 함 속에서 유난히 빛을 발하던 2호 사이즈의 앙증맞은 그 블라우스는 동서가 연길백화점에서 구매한 최고급 질감으로 만들어진 옷이다. 연분홍빛 진달래꽃이 옷감 가득 정겹게 피여나던 그 옷,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시집간 날 저녁에 식구들이 함을 열자 눈이 부셨다. 여러 혼수품 중에서도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단연 그 블라우스였다.
“어디에 저렇게 예쁜 블라우스가 있었을까?”
연길은 그 때 나에게 있어서 서울만큼이나 신비스럽고 먼 곳이였다. 돈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어서 혼수품을 사러 연길에 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였다.
시어머니가 살짝 귀띔해주셨다.
“연길에서 의사 사업을 하는 동서가 자네 혼수함을 념려하여 그 블라우스를 산 것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얼굴도 모르는 동서가, 그것도 시집 식구가 나를 위해 그 귀한 옷을 장만했다니. 다른 옷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직 그 블라우스만이 내 마음을 빼앗았다.
연분홍 진달래꽃이 옷감에 골고루 피여있는 그 옷은 너무도 예뻤다. 처음 입어본 날,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달라 보였다. 얼굴에 꽃물이 들었고 입가에는 절로 웃음꽃이 남실남실 넘쳐흘렀다. “옷이 날개”라는 말을 그때 나는 진실로 체감했다. 색상이 예쁘고 질감이 좋아서 얼굴이 함초롬한 꽃잎처럼 피여나는 듯 했다.
나는 그 블라우스를 아꼈다. 평상복으로는 절대 입지 않았다. 오직 나들이 갈 때나 특별한 날에만 골라 입었다. 까만 데트론 바지에 살짝 굽높은 흰색 샌들을 받쳐 신었다. 워낙 좀 특별한 걸음걸이라고 평받은 리듬감 있는 걸음으로 걸으면 사람들은 모델 같다고 했다. 진담 반, 롱담 반인 걸 알면서도 귀를 간지럽히는 그 말에 나는 온몸에 행복이 살랑이는 듯 기뻤다.
그 옷을 입으면 자신감이 생겼다. 평소에는 수줍어서 말도 제대로 못 붙이던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도 하고 큰 소리로 웃기도 했다. 진달래꽃 블라우스는 단순한 옷이 아니라 나를 새로운 나로 만들어주는 마법의 옷이였다.
세월이 흘러 동서를 자주 만나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분은 옷차림이 아주 간소하고 소박한 녀인이였다. 값비싼 옷보다는 편안하고 수수한 옷을 즐겨입었다. 평시에 그렇게 예쁜 옷을 입지 않는 사람이 나를 위해 그 귀한 블라우스를 골라 산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옛 사연들을 진지하게 떠올리면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지고 가슴 속에서 감동이 넘쳐 흐른다. 그런데 막상 일이 생기면 동서에게 화부터 내는 내 자신이 수양이 바닥 난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아무리 말을 과분하게 해도 그분은 먼저 웃어주었다. 그분은 항상 같은 말로 나를 받아 주었다.
“동서가 힘든걸 다 리해하오. 집안의 모든 일이 무난히 풀리도록 두 량주가 아글타글 애쓰는 일을 내가 왜 모르겠소.”
말 한마디가 천냥빚을 갚는다는 말은 명언이다. 그런 속심의 말 한마디를 들으면 내 가슴에 쌓였던 화가 스르르 녹아 내렸다.
동서는 나보다 한해 앞서 결혼을 하였다. 어려서부터 도시 사람이였던 관계로 생활 양상이 나하고는 달랐다. 나는 촌에서 풀과 들꽃만 보면서 자랐기에 시장을 잘 몰랐고 물질의 빈약함을 뼈로 느끼면서 자랐다. 그분은 상대적으로 그나마 느슨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여유가 있어야만 형제를 돕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앞서야 되는 일이고 고마운 손끝이 닿아야 되는 일이란 것을 나는 페부로 느낀다.
결혼할 때 남편에게도 첫날 옷감이 없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고 시대의 국한성으로 남편의 혼수는 준비되지 않았다. 동서는 자신의 함 속에 있던 검은색 니트 옷감으로 남편의 첫날 웃옷을 지었다. 바지는 검은 곤색 사지로 지었다. 옷 한벌의 색깔이 맞지 않아 좀 서운했지만 동서의 덕분에 남편의 첫날옷을 해결했고 큰 근심을 던 셈이 되였다.
시어머니도 한시름 놓았다며 기뻐하셨고 남편도 감지덕지했다. 그 일이 경과하면서 나는 동서에게 더 마음이 열렸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라지만 그 정은 친자매보다 더 깊었다.
생판 모르는 시댁 식구와의 인연은 참 묘하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던 사람들이 시간이 흐를 수록 정이 들고 그리움이 쌓인다. 시댁과 나와의 인연은 우연이면서도 필연이고 자랑스럽고 행복한 생의 기록이기도 하다. 물론 유감스러운 일도 있었고 서운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뛰여넘어 나는 여전히 행복을 느낀다. 사람이 살아가노라면 모순을 피면하기 어렵고 성격 또한 다양하여 서로 양보하고 대방을 서로 포옹하면서 사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손아래 사람은 손우어른을 존중해야 하는 한편 손우어른들은 손아래 사람을 너그롭게 대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과거 우리 사이가 어떠했든 지간에 아래 세대들은 같은 피줄로 얼기설기 서린 물보다 진한 피로 이어졌기에 우리 세대의 시시비비에 감겨들지 않는다. 친사촌들, 고모사촌들, 이모사촌들이 명절이면 함께 어울려서 노는 모습이 그렇게도 대견스럽고 장하다.
며칠 전, 청소를 하다가 낡은 앨범을 꺼냈다. 그 속에는 시집오던 해 찍은 흑백사진이 몇장 있었다. 사진 속 나는 그 진달래꽃 블라우스를 입고 수줍게 웃고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사진 속 블라우스는 여전히 곱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오래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소중한 인연들은 모두 그 진달래꽃 블라우스와 같지 않을까. 처음에는 반짝반짝 빛나다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기도 하지만 문득문득 생각날 때마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그런 면이 있다.
시아주버님은 몇년 전 지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장에서 나는 울면서 후회했다. 살아생전에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제대로 한 번 못한 것, 항상 마음으로만 간직하고 입밖에 내지 못했던 그 말을. 그분이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 인생은 길지 않다. 하기에 말 한마디에 천냥이 싸다고 고마움을 가슴에 쌓아두기보다 한마디씩 진심을 담아서 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나는 옷장 깊숙이 보관해둔 그 블라우스를 꺼내본다. 세월의 때가 묻어 예전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진달래꽃은 여전히 곱게 피여있다. 블라우스를 만지며 나는 혼자말처럼 중얼거린다.
“그때 그 옷은 아직도 내가 잘 간직하고 있어요. 고맙고 미안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진달래꽃 블라우스, 그 꽃잎 한장 한장에는 동서의 고운 마음이 영원히 새겨져 있다. 그 마음을 나는 이제야 조금씩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생의 가을이 깊어갈수록 나는 그분의 진실함과 따뜻함을 닮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