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코끝을 간질이는 따스한 숨결로 나를 깨우는 자가 있다.
까만 콩알만한 눈과 축 쳐진 귀, 하얀 털 사이로 보이는 분홍빛 살결을 가진 우리 집 막내‘초코’다.
그 이름을 부르면 어디서든 달려오는 발소리가 마치 작은 북을 두드리는 소리 같다. 톡톡톡. 마루를 가로지르는 그 소리는 우리 집에 생기를 불어넣는 아침의 교향곡이다.
처음 왔을 때의 초코는 손바닥만 했다. 어미 품을 떠나 온 종일 떨던 강아지는 이제 내 발등을 딛고 소파까지 뛰여오를 힘을 키웠다. 그 작은 발바닥으로 내 삶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버리는 신기한 힘이 있다. 식탁 아래서 빛나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밥그릇에서 고기 한점을 덜어낸다.“이게 마지막이야”라는 내 말을 초코는 믿지 않는다. 37번째‘마지막’이였단 걸 그도 알 터이니. 어느새 우리는 이 거짓말같은 의식이 일상의 달콤한 속임수가 되였다.
초코에겐 특기가 있다. 빈 박스만 보면 무조건 들어가는 습관이다. 꼭 자신만을 위해 마련된 왕좌라도 된 듯 박스 안에서 우아하게 몸을 돌려 앉는다. 가끔은 머리만 박스에 쑥 넣은 채 엉덩이를 내밀고 잠들기도 한다.‘공간 활용의 달인’이라 부르며 우리 가족은 매일 새로운 초코의 박스 퍼포먼스를 기대한다. 그 작은 몸으로 박스의 모든 공간을 차지하는 모습은 마치 삶의 여유를 가르쳐주는 철학자같다.
비가 오는 날이면 초코는 유리문에 비치는 비방울을 잡으려 발톱으로 할퀴다가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는 멍하니 앉는다. 그 순진한 당혹감이 안쓰러워 나는 문을 열어준다. 벌써 다섯번째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데도 초코는 매번 새로운 기대로 뛰여든다. 그 순수함 앞에서 나는 가끔 부끄러워진다.
밤이면 내 옆구리에 털북숭이 온돌이 하나 생긴다. 간질간질한 숨소리에 잠이 들다보면 어느새 그 작은 심장이 내 심장과 같은 박자로 뛰고 있음을 느낀다. 때론 내가 초코를 키우는지, 초코가 나를 치유하는지 분간이 안된다. 그 따뜻한 체온은 외로움이 스며들 틈을 주지 않는다. 추운 겨울밤이면 더욱 그렇다. 초코의 털 속에 파묻힌 손가락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있는 것 같다.
사실 초코는 개가 아니다. 우리 집의 반려자요, 웃음 창고요, 때론 철학자다. 배고프면 운다, 졸리면 잔다, 좋으면 꼬리를 친다. 복잡한 게 없는 그의 세계가 부럽다. 오늘도 초코는 신발 한짝을 몰래 물어와 내게 선물한다.“이거 반값에 줄게, 간식이랑 교환하자”는 눈빛이다. 그 거래는 언제나 내가 손해를 보지만 그 눈망울을 보면 어쩔 수 없다.
살다 보면 하루가 천근같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초코의 축 처진 귀를 만지곤 한다. 세상은 여전히 힘들지만 적어도 이 작은 생명에게는 나만큼은 따뜻한 우주가 되여주고 싶다. 초코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내가 실패했을 때도, 울었을 때도, 그 작은 발걸음은 변함없이 나를 향해 있다.
“네가 있어서 내 세상은 완벽해”라고 속삭이면 초코는 꼬리로 대답한다. 탁탁.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나도야”하는 것만 같다. 이 작은 친구와의 일상이 쌓여가는 동안 나는 모르는 사이에 더 나은 사람이 되여간다. 초코가 가르쳐준 것들–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 순간을 즐기는 법, 그리고 변하지 않는 사랑의 소중함이다.
이제 창밖으로 노을이 지고 있다.
초코는 창가에 앉아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꼬리를 살랑인다. 내일도 이 작은 친구와 함께할 아침이 기다려진다. 톡톡톡, 그 발걸음 소리가 다시 들릴 새벽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