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가 온다고 해서 어제 밤 한잠도 못 잤네.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잠을 이룰 수가 있어야지…”
안산역까지 마중을 나온 동화는 전철역 출구에서 나를 맞았다. 오른 손에는 지팡이가 들려 있었고 잘려 나가 짧아진 중지와 무명지가 유표하게 눈에 들어왔다.
“자네 이 손가락은 아직도 덜 자라 났나?”
지팡이를 왼손으로 옮긴 그의 오른손을 잡으며 나는 시물시물 웃었다.
“에끼 고약하게. 부러진 자네 다린 줄 아나? 다시 이어 붙이게?”
항상 이랬다. 반갑다는 인사였다.
역을 나와 역 앞 지하도로 우리는 계단을 밟으며 내려갔다. 바닥까지 내려가자 옆으로 난 통로가 있었고 통로 끝까지 가면 지겹도록 기다려야 삐걱거리며 움직이는 낡아빠진 엘리베이터가 나온다. 걸어 내려왔지만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지하도를 바로 건너지 않고 통로를 따라 엘리베이터 앞까지 갔다. 처음 안산에 와서 알거지가 된 우리는 여기서 구세주같이 나타난 진수를 만났었다. 우리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서글피 웃었다.
“그때 여기서 진수를 만나지 않았다면…”
동화가 옛 생각에 잠겨 말했다.
“그러게, 진수가 아니였으면 어쩔 번 했나…”
나와 동화는 한동네서 같이 자란 짜개바지 친구였고 학교도 쭉 같이 다녔다. 한국을 나오려고 같이 고리대를 빌려 브로커에게 당시 우리에게는 천문수자나 다름없는 중국돈 십만원씩 주고 어렵사리 한국을 나왔는데 브로커는 공항 세관까지만 통과시켜 주기로 약속하였다. 공항을 나와 마치 도망가는 죄인처럼 무작정 서울역으로 향했다.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는 우리는 수도인 서울이 좀 더 기회가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였다.
허나 우리는 우리의 착각을 금방 깨달았다. 얼마 챙겨 오지 못한 돈으로 려관방을 잡고 밥을 먹고 하니 수중에 있던 돈은 금방 거덜이 나고 일자리는 어디 가서 찾아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하였다. 요행 우리의 딱한 처지를 보고 경기도 안산에 공단이 많으니 그리로 가 보라고 귀 띰해주는 이가 있었다.
안산으로 왔지만 몇끼 밥값 외에 려관에 들 돈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서있는 역 앞 지하도 엘리베이터 앞에 로숙을 하려고 하니 그나마도 좀 안쪽 바람막이 쪽에는 고참 로숙자들이 차지를 하고 우리는 뒤로 밀리여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통로에 자리를 잡는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주어온 신문지를 깔고 눕자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에 신경이 쓰여 도저히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무릎을 감싸안고 앉은 채로 둘이 실없는 얘기를 나누던 중 지나가던 한 사내가 우리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야, 동화, 창선이!”하고 부르짖었다. 둘은 어리둥절하여 사내를 멍하니 쳐다만 보았다.
그것도 잠깐, 둘은 함께 “진수!”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진수는 현중학교에 가서 만난 동창이였고 다른 동창들보다 마음이 통하여 좀 더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그 길로 진수를 따라 진수의 반지하 세방으로 갔고 밤새도록 술추렴을 했다. 진수는 한국을 나온지 삼년이 넘었다고 했다. 나와 동화는 어른에게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어린애처럼 며칠밖에 안되는 한국 생활을 얘기하였고 진수는 처음 나오면 다 힘든데 지나다 보면 차차 습관이 될 거라는 위로하였다. 이왕 돈 벌러 나왔으니 이를 사려물고 버텨야지 별 재간이 없다고 하였다.
이튿날 진수는 우리를 데리고 원곡동의 골목골목을 헤매며 값이 싼 허술한 반지하 세방을 잡아주었고 용돈으로 쓰라며 돈까지 십만원씩 쥐여주었다. 물론 세방 보증금도 진수가 대주었다. 일자리도 진수가 인맥을 총동원하여 수소문한 결과 회사에 가서 프레스 찍는 일과 아파트 현장일이 나왔다. 동화는 노가다를 깡패판으로 아는 놈이여서 금방 회사에 가겠다고 했고 나는 그나마 돈을 좀더 벌 수 있는 아파트 현장일을 나가기로 하였다.
세방을 잡고 일자리까지 찾은 우리 둘은 목숨을 걸고 일에 달라붙었다. 남들은 힘들다고 피하는 특근에 야근에 잔업까지 일만 시키면 군말없이 나갔고 아무 것도 따지지 않았다. 오로지 빨리 돈을 벌어 빚을 갚을 일념으로 죽을 판 살판 일에만 몰두했다. 그러다 보니 일요일도 휴일도 없었고 진수 와도 자주 만나지 못하였다.
너무 억척스레 달려든 탓인지 금방 사달이 났다. 동화가 프레스를 찍다가 정신이 흐려질 정도로 너무 피곤하여 오른손 중지와 무명지를 철판과 함께 프레스 기계에 밀어 넣어 잘렸다. 동화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붕대가 잔뜩 감긴 오른손을 어깨에 메고 돌아왔을 때 나는 깜작 놀랐다.
“이 두 손가락이 좀 길어서 잘라 버렸다.”
와중에도 놈은 놀라는 나를 보며 롱을 하였다.
불법체류라 제대로 공상처리도 받지 못하고 치료비도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 몇일 후 다친 동화 때문에 정신이 뒤숭숭하여 일손이 잡히지 않던 나도 아파트 삼층에서 떨어져 왼쪽 다리가 골절되였다. 우리는 그야말로 한 골에 모인 다리 부러진 노루신세가 되였다. 눈알이 빠져도 이만하기 다행이라고 우리는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 만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고 왼발을 쳐들고 목발을 짚은 나와 오른손을 어깨에 매단 동화가 같이 거리에 나서면 또 하나의 희한한 풍경이 되였다.
우리 둘은 다친 데가 채 났기도 전에 다시 일터로 나갔고 그야말로 악전 고투하여 삼년만에 드디여 한국에 나올 때 진 빚을 다 갚았다. 그동안 설명절이나 휴일에는 진수와 함께 술을 마시며 지난 일을 이야기하며 친분을 다졌다.
우리가 자주가는 식당은 ‘단이식당’이라는 곳이였는데 식당 주인은 흑룡강에서 온 아줌마였고 우리를 제집 식구처럼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우리는 식당 주인을 ‘단이엄마’라고 불렀다.
진수는 제 나름대로 인생 철학이 있었는데 즉 남자는 바깥일(돈버는 일)만 잘하면 되고 집안일(돈 관리는)은 녀자에게 맡기고 간섭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였다. 그래서 돈을 벌면 꼬박꼬박 집에 있는 마누라에게 부쳐 보냈다. 그러구러 고독하고 힘겨운 품팔이 생활이 몇년이 지나갔다. 우리는 돈도 얼마간 벌었고 집안 형편들도 많이 좋아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수에게 안 좋은 소문이 들려왔다. 설마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소문이 정말임이 확인되였다. 집안일만 잘 하면 된다는 진수 마누라가 간 크게 바깥일에까지 손을 대여 큰 사고를 친 것이였다. 그동안 바깥일에만 열중한 진수가 근 십년간 벌어 보내 차곡차곡 모은 큰 돈을 남의 꾀임수에 빠져 식당을 차린답시고 한방에 처넣어 버린 것이였다. 필경 한국에서 어떻게 목숨을 걸고 번 돈인지 직접 겪어 보지 않았기에 그 돈의 무거운 가치를 피부로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였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기나긴 리별에 지치기도 했을 터이였다. 딴에도 진수를 볼 낯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진수에게 리혼을 제기해 왔다.
그렇게 착실하고 어질었던 진수는 방에 누워 한숨만 쉬고 천정만 멍하니 바라보며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나와 동화는 한시도 진수곁을 떠나지 않고 진수와 동무하면서 성심껏 위안의 말을 해주었으며 갖은 음식을 마련하여 그를 일떠세우려고 모질음을 썼다. 다행이 한주일만에 기운을 차리고 일어난 진수는 한사코 우리의 동반을 마다하면서 우리를 일터로 밀어 보냈다. 일을 하면서도 마음이 안 놓여 퇴근 때마다 들렸는데 많이 진정이 되였고 이젠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안해가 한국을 나왔다고 하니 찾아서 한번 만나나 봐야겠다면서 요즘 본 사람이 있다는 곳으로 찾아 다닌다고 하였다.
그렇게 달포가 지나서 진수는 포기를 한 듯 다시 일을 나갔다. 기운을 잃고 어깨가 축 처져 정신줄을 놓은 듯한 모습이 안스럽기 그지없었다. 나와 동화는 틈만 나면 그를 단이식당으로 끌고 가서 술로 위안하는 수밖에 없었다.
힘겨운 시간이 얼마간 지나서 뜻밖에 진수가 춘자라는 녀자를 세방으로 데리고 왔다. 처음으로 한국에 나와 혈혈단신 사고무친으로 돈마저 떨어져 안산역 지하도에서 울고 있는 춘자가 남같지 않게 보기 애처로워 그대로 지나칠 수가 없었더라고 하였다. 그 와중에도 진수는 자기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눈길을 돌렸다.
춘자가 온 후부터 진수의 생활에는 다소나마 생기가 돌았고 역시 단이엄마에게 부탁을 해서 춘자의 일자리도 찾아주었다. 춘자는 나와 동화도 오빠라고 부르며 살갑게 대하였다. 진수는 심지어 자정에야 퇴근하는 춘자가 무서워한다며 밤마다 퇴근하는 춘자를 마중까지 하였다. 춘자는 그렇게 진수에게 기대였고 힘들지만 그래도 평온한 생활이 이어졌다. 일년여 후 춘자의 남편이 한국을 나왔고 춘자가 떠나갔다. 춘자는 찔끔찔끔 울며 차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였다.
춘자가 가고 나서 얼마 후 진수는 안해에게서 리혼 통지서를 받았다. 법원을 통해 진수가 부재한 상황에서 판결 리혼을 해버린 것이였다. 피페한 진수의 생활은 더 한층 나락으로 떨어졌다. 또 다시 매일 술에 절어 맨 정신인 때가 적었고 일도 나가다가 말다가 하여 일터에서 잘리는 때가 많았다.
후에는 또 옥이라는 불쌍한 녀자를 데려왔는데 옥이는 몸이 약해 제대로 일을 다닐수 없었고 얼마 남지 않은 진수의 돈을 축내였다. 진수에게 와서 얼마간 몸을 추스른 옥이는 일거리를 찾아 떠나면서 돈을 벌면 꼭 보답을 하겠다고 하였다.
옥이마저 가고나서 페인이 된 진수는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어느 날 만취하여 차들이 살처럼 오가는 안산-수원간 산업도로로 걸어 들어가 버렸다.
“잘 가게 진수군! 저 세상에 가서는 부디 고통없이 지내길 빌 뿐이네!”
우리는 이렇게 절친이던 진수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후 나는 현장일을 쫓아 안산을 떠나게 되였고 동화는 계속 안산에서 회사일을 다녔다. 일할 나이도 넘었고 몸도 아프고 하여 나는 한국생활을 접고 귀국하기로 작정하였고 귀국 전 다시 우리의 애환이 서린 안산을 둘러보고 싶었던 것이였다. 우리가 살던 안산의 골목골목을 다 다니며 옛날 일들을 회상하며 걷다 보니 어언 점심시간이 다 되였다.
“단이식당으로 가세. 자네가 온다고 하여 옛날 같이 지내던 사람 몇이 불렀거든.”
동화가 말하였다. 우리가 단이식당 앞으로 다가 갔을 때 식당문이 활짝 열리며 “오빠!”하고 엎어지듯 달려 나오는 두 녀인은 뜻밖에 춘자와 옥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