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면서 여러가지로 마음 괴롭히는 일을 당할 때가 많은데 그 일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는 각자마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도 억울함을 당한 일이 있었다.
나는 농촌에서 자라 촌마을 소학교에서 10년간 교육사업을 하다가 글을 좀 쓴다는 영예로 시가지 학교에 조동되여 왔다. 시가지에 오니 농촌보다 각종 교육시설들도 구전하지만 컴퓨터를 배울 수 있어 너무나도 좋았다.
나의 안해는 그때도 농촌에서 교육사업을 하고 있었다. 장장 20리 길을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다보니 여간 힘들지 않았다. 게다가 아들이 겨우 4살이니 수고가 많았다.
2000년도에 정책에 의하여 나의 안해도 같은 학교에 전근하게 되였다. 정말 경사였다. 이젠 집 근처에서 출근하게 되였으니 둘이 다 농촌에서 서로 동서로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기보다 정말 신선같은 출근이였다. 불과 5분도 안되여 학교에 당도하니 아이도 잘 돌볼 수 있고 출근도 가까운 곳에서 할 수 있고 또 시가지의 학교니 정말 꿩먹고 알먹고 둥지 털어서 불 때는 겪이였다. 정말 행복이 넝쿨채로 떨어진 격이라 너무 행복했다.
그러나 올리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이라고 내가 남의 오해를 살 줄이야 누가 꿈에나 생각했겠는가.
어느날 나와 가깝게 지내는 한 선생님이 페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알게 되였다. 그래서 학교 지도부에서는 전교 교사들에게 30원씩 헌금하여 도울 것을 제안했다. 나는 소식을 접하자 두말이면 잔소리라고 대뜸 공회 주석을 찾아가서 맨 처음으로 헌금 30원을 기부하였다. 마음은 한량없이 기쁘기만 하고 그 선생님을 좀 도울수 있다는 점에서 안도의 숨이 나왔다.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교무실로 들어왔다. 우리 그때 교무실은 큰 교실이라 한어조와 과학조, 영어조 세조가 함께 사무를 보고 있었다. 나는 과학조, 나의 안해는 한어조였다. 헌금에 대해 의견이 있는 우리 조의 두 녀선생님이 합리하지 않다며 투덜대고 있었다. 그때 나의 안해는 수업을 보러 갔기에 교무실에 마침 없었다. 나는 이것이 나에게 감투로 뒤집어씌울줄 꿈에도 몰랐다. 그 한어조 조장과 부조장이 김선생님에게 헌금하는 것에 대해 내가 의견이 많다고 고발하였던 것이다!
맙시사! 어쩜 이럴 수가 있단말인가? 나는 남자라는 리유로 녀선생님들과 시비도 하기 싫었고 싸울 수도 없었다. 그저 억울하기만 했다. 의견이 없이 제일 처음 헌금하고도 이렇게 무함을 당하니 이게 어디 될 말인가? 게다가 안해가 갓 조동하여 와서 내가 따지고 들면 왕따를 당할까봐 겁도 더럭 났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학교에서는 소문이 자자하게 났다. 나를 량심없는 놈이라고 뒤에서 욕하는가 하면 어데 가서 차에나 치여 죽으라는가, 그러지 않으면 폭발해 죽으라든가, 별의별 소문과 저주가 다 돌았다. 나의 안해는 아무 것도 몰랐고 또 안해와 말할 수도 없는 형편이였다. 난 안해의 속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사나이로서 녀성들과 무슨 시비야 하는 심리였다.
그렇게 사흘째 되던 날, 그 두 선생님이 량심의 가책을 받았는지 날 무함한 것을 승인해서야 나는 다시 명예를 회복하였다.
하지만 나는 솟아나는 분노와 격분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큰 충격이였다. 그때에야 나는 여론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였고 부드러운 혀는 뼈를 깎는다는 말이 지당함을 느꼈다.
그녀들을 찾아 한바탕 욕하자니 아무 것도 모르는 안해가 왕따를 당할까봐 념려되고 말을 안 하자니 답답했다. 안해와 실정을 말하자니 속상할까봐 그렇고… 속이 막 탈 정도였다.
그래서 일주일간 잠을 못 자다가 결국 우울증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여 약물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미열로 나는 지금도 가끔 잠자는 약을 먹어야만 잘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몇년동안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그들을 원망하고 불평했다. 하지만 병의 호전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남이 한번 잘못햇는데 몇년을 두고 미워했으니 결국 내 몸을 괴롭힌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나는 마음을 다시 정리했다. 그들을 자꾸 미워하지 말자. 남을 용서하는 것은 자기를 올무에서 풀어주는 것이라지 않는가? 바다는 왜서 물산이 풍부한가? 갈래갈래 강물의 하소연을 다 들어주고 품어주기에 물이 깊고 물산이 풍부한 것이다. 강물에 돌을 던지면 풍덩 소리나고 파문이 크게 일지만 바다에 돌을 던지면 큰 파문이 일어나지 않는다. 바다같은 마음으로 그들을 품어주고 포옹하고 용서한다면 그들도 나도 모두 마음이 편하지 않을가?
이렇게 생각하고 용서를 하니 가슴에는 감사가 나오게 되였고 그들을 축복해주기까지 하였다. 그러니 몸은 점점 좋아지고 잠도 깊이 잘 수 있었다.
한마디 명구가 생각난다. “증오의 나무에는 가시가 돋고 리해와 용서의 나무에는 사랑의 열매가 맺는다.”
지금 나는 그 두 선생님을 만나면 해살처럼 따스한 미소를 보내준다. 그들도 나를 향해 똑같은 표현을 한다. 이것이 바로 용서의 매력이 아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