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우와 순이는 결혼한지 3년이 되는 부부다. 훤칠한 키에 부리부리한 눈에 서생티가 나는 철우는 연변의 작은 병원의 의사이고 호리호리한 키에 새별같은 두눈에 귀엽게 생긴 순이는 철우와 같은 병원의 간호사이다. 둘은 함께 일하면서 서로 사랑하여 결혼하였다. 그러나 결혼한지 3년째 되는 해 모든 것이 엉망이 되였다.
결혼 후 3년이 지나도 자식이 없어 둘은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그러던 어느 날 철우가 어린 남자애를 데리고 집에 들어왔다. 뒤에는 오똑한 코날에 보조개가 패인 갸름한 얼굴의 녀인이 바짝 붙어서 미안함과 두려운 눈길로 순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순이는 이런 상황에 당황스럽고 혼란을 느꼈다.
남편은 아무 말도 못하고 머리를 숙였다.
“이 아이는 누구야?”
순이의 질문에 철우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일년 전에 장춘에 가서 진수공부를 하던 중에 이 녀자와 일시적인 실수가 있었어, 이 아이는 그때 생긴 자식이야.”
청천벽력같은 말이였다.
그러자 그 녀자가 다소곳이 얼굴을 숙이며 “언니, 잘못했어요. 저의 남편이 애 때문에 리혼을 요구해서 애를 철우씨에게 맡기려고 왔어요. 불쌍하고 죄없는 애를 받아주세요”라고 하더니 무릎을 꿇었다.
순이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과 분노에 가슴이 아렸다. 그렇게 믿고 사랑했던 남편이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이 원통스러웠다.
“왜 날 속였어?”
철우는 고개를 숙이고 거듭 사과를 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아이를 버릴 수는 없지 않니? 그러니 부모님께 이 아이를 맡기고 우리 둘만 살자…”
순이는 남편과 한바탕 싸움을 하고나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참으면서 아이를 시댁에 맡기는데 동의했다. 동네 사람들에게는 먼 친척의 아이로 소개하기로 했다.
그 후 철우는 부모님 댁을 오가며 순이의 눈치를 살폈다. 매번 남편이 부모님 집에 가서 애를 보고 와 기분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 순이는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저 아이가 먼 친척의 아이가 맞나?” 주변 사람들의 수근거리는 소리가 더욱 순이를 힘들게 했다.
아이가 자신을 “큰엄마”라고 부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네가 무슨 죄가 있어 보고싶은 엄마와 생리별하고 어린 나이에 눈치를 보면서 주눅이 들어서 살아야만 하는가? 한편으로는 이 아이가 정말 남편의 아들이란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순이는 결국 마음의 갈등을 이겨내고 이 아이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아무 죄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이 이 아이를 지켜주고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겨우 모든 풍파를 이겨내고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고 있었다. 집안은 차차 화목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아침에 아이와 손 잡고 강변로를 산책하노라면 지저귀는 새 소리가 그렇게 아름답고 지나가는 강아지가 그렇게 깜찍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아이가 없는 일상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아이 엄마가 또 나타났다. 그녀는 장춘에 돌아간 후 아이와 갑자기 떨어지니 도저히 잠을 잘 수 없고 고통스러워 남편에게 리혼을 제기하고 의사 직업을 그만 두고 찾아왔다고 했다. 엄마가 자식을 보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단지 아이를 보러 온게 아니라 돌아가지 않고 옆에서 애를 보면서 시댁에서 살겠다고 주장했다.
온 집안이 이 일로 혼란에 빠졌다. 남편은 그녀가 떠나기를 원했지만 그녀는 모른척 하면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리유로 계속해서 시댁에 머물렀다. 아이도 친엄마를 보고 일시도 떨어지지 않고 졸졸 붙어 다녔다. 순이와 남편과의 관계는 또 다시 악화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철우는 긴 한숨을 쉬면서 “애가 호구가 없어 유치원에 다닐 수 없다”는 리유로 순이에게 리혼을 제안했다. 순이는 마음이 찢어지는 기분이였지만 리혼에 동의했다.
이틀 후 순이는 조용히 병원에 사직서를 내고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떠났다.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친구가 살고 있는 농촌으로 가 소학교 교사로 취직했다.
어느날 갑자기 어지움과 구토증상이 찾아왔다. 임신을 한 것이다.
순이의 예기치 못한 임신 소식을 듣고 친구 부부와 마을 주민들은 함께 기뻐해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선생님이 마을을 떠날가봐 걱정하기도 했다. 순이는 “여기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학생들을 더욱 열심히 가르치겠습니다. 마을이 나를 믿어준 만큼 보답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순이의 이 마음을 담은 말에 학생 부모들은 환호성을 터뜨렸다.
순이는 친구 부부와 마을 사람들의 사랑과 응원을 받으며 힘든 임신 기간을 견디고 결국 눈이 부리부리한 잘생긴 아들을 낳았다. 아이를 안고 순이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너는 하늘이 주신 소중한 선물이야. 앞으로 내 삶은 너와 함께 살거야.”
아이는 점점 크면서 철우를 꼭 닮아갔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는 자꾸 입을 벌리고 “엄마, 이가 너무 아파요”라며 울었다. 순이는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그만 뜻밖에 시부모님과 마주쳤다.
아이를 눈여겨 보던 시어머니 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왜 이 아이가 철우 어렸을 때를 똑 닮았지?”시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순이에게 물었다. “이 아이는 누구의 아이냐? 몇살이냐?” 련속되는 질문에 순이는 머리 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고아원에서 데려온 아이예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눈에는 여전히 의심히 가득했다.
그때 갑자기 병원을 찾아 온 철우가 나타났다. “사실 민우가 백혈병에 걸려 입원 중인데 너무 힘들어해. 보러 갈래?” 철우는 순이에게 부탁하는 듯한 눈빛을 보였다. 순이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병으로 힘들어 하는 민우의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이 약해졌다.
순이는 철우를 따라 병실로 갔다. 문을 열자마자 민우가 눈을 감고 조용히 누워있는 모습이 보였다. 순이는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소리없이 흘렀다. 이 순간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문소리에 눈을 뜬 민우는 순이를 보더니 “아~ 큰엄마가 왔구나”라며 반겼다. 그 소리에 침대 옆에서 잠들어 있던 그녀도 순이를 향해 놀라운 눈길을 던졌다. 민우는 너무 앙상하게 여위였다.
그는 힘없이 순이의 손을 잡고 다시 한번 물었다 “큰엄마 보고싶었어요! 어디에 갔댔어요?”
민우의 모습을 본 순이는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그때 의사가 들어와 철우를 불렀다. 잠시후 돌아온 철우는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표정으로 침대를 치며 소리쳤다. “너 왜 우리를 속였어? 몇차례 검사를 해봐도 민우는 내 아들이 아니란다.”
그녀는 당황스러운 표정이였다. 그녀의 남편은 민우가 자신을 닮지 않았다고 여기던차 그녀가 쓴 일기를 발견하고 민우가 자기 아들이 아니라 의심했다. 그래서 그녀는 민우를 데리고 여기까지 왔던 것이다. “이제 중요한 건 민우를 살리는 거니까 래일 장춘으로 돌아가겠어요.”
이틀 후 철우는 민우와 그녀를 플랫폼까지 바래다주었다.
민우는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아빠는 왜 안가? 아빠가 안 가면 민우도 안 갈래! 아빠 없으면 안돼!”
기차가 천천히 떠나자 철우는 민우의 이름을 외치며 뛰여갔다. 하지만 민우는 기차의 경적소리에 삼켜져 사라졌다.
철우는 뒤돌아 멀어져가는 순이와 애를 불렀지만 그들 역시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