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돌아가신지20년이 된다. 상전벽해라고 세월과 함께 수많은 기억들이 망각되거나 흐리터분해 지지만 생활 곳곳에 남긴 어머니의 발자취와 숨결만은 더욱 또렷하게 기억에 각인된다.
오늘도 나는 서재를 정리하다 우연히 서랍 제일 밑층에서 색바랜 가족사진 한장을 발견했다. 내가 대학 입학을 기념해 촬영한 가족사진이다. 어머니는 환한 웃음을 지었고 아버지도 녀동생도 자긍심에 찬 얼굴이다. 간만에 내심 행복감에 취했지만 그것도 잠시, 인차 마음이 무거워지고 무한한 후회와 자탄에 마음이 저리며 비감의 눈물이 저도 몰래 흘러내린다.
복은 쌍으로 안 오고 화는 홀로 안온다더니 나는 복을 쌍으로 받지 못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인 지난세기90년대 초, 어머니와 아버지는 정리실업을 당해 우리 집 생계에 적신호가 커졌다. 당시 대학 등록금이 엄청나지 않았고 본지방 대학이라 생활비도 근심거리는 아니지만 녀동생이 초중을 다니고 있다보니 생활이 항상 궁핍한 상황이였다. 설상가상 부모님들이 한꺼번에 정리실업을 당하다보니 생활의 어려움은 상상할 수 있는 상황이였다. 아버지는 깊은 밤마다 긴 한숨을 풀풀 쉬며 련신 담배를 태웠다. 오매에도 그리던 대학에 입학한 나로서는 경제 문제때문에 대학생활이 영향을 받을가 전전긍긍하다보니 마음이 무겁고 부모님의 매사에 신경을 썼다.
어느날 아침 어머니는 아침 식사를 마치자 중대한 결정을 선포했다.“오늘부터 아버지랑 함께 엿장사에 나설거다.”나는 깜짝 놀랐고 아버지도 눈을 둥그렇게 뜨더니 어머니 얼굴만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그동안 모은 저금통장을 꺼내더니“당신은 오늘 삼륜차를 하나 구매하세요. 나는 로투구로 가서 엿집을 찾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후로 어머니와 아버지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엿장사에 나섰다. 대학 입학 시간이 각일각 돌아왔다. 대학교로 가는 날 아침 어머니는 나의 손에 입학 등록금800원(4년 학비)을 쥐여 주면서“아들아 너는 원래 총명하니깐 학문을 잘 배워 장래 가정의 영광이 되였으면 좋겠다”고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다. 순간 나는 마음의 전률과 함께 감동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땀방울이 슴배인 등록금은 얼마나 무거운지 돈을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동경과 설레임도 한순간, 대학생활은 시간이 흐르면서 어머니의 기대와 달리 나는 학업에 정진하기 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배우고 련애에도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허무하게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가끔 어머니가 따끔한 충고를 주어도 인제 성인이 되였다고 사사건건 시시콜콜하는 어머니를 언짢아 하면서 충고를 마이동풍으로 여겨 어머니의 속을 무던히도 태웠다.
그러던 어느날, 하학하여 집에 들어서니 역한 중약 남새와 함께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가슴이 덜컹했다. 급기야 침대를 보니 어머니가 다리와 이마에 붕대를 감고 누워 있었고 아버지도 얼굴에 피멍이 든 채 묵묵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긴장한 어조로 물었다.“무슨 일이 발생했습니까?”
아버지는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오늘 삼륜차에 엿과 어머니를 싣고 북대 내리막길을 내려오다 삼륜차가 전복하면서…”
순간 나는 마음이 아파났고 미안함이 가슴을 엄습했다. 어머니가 피땀으로 번 돈을 아무렇지 않게 탕진한 자신이 미워졌고 학업에 정진하라고 귀 아프게 당부하던 어머니 말씀을 잔소리로 취급한 자신이 역겨워졌다. 나는 자신을 뒤돌아 보고 어리석게 보낸 시간을 후회하면서 점차 학업에 노력하고 친구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후로 어머니의 근심어린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웃음소리도 가끔 집안에서 터져나왔다.
이후 사업에 참가하여서도 항상 근면하지 못하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술과 동무하여 불평만 부리며 툭하면 어머니와 엇서면서 어머니의 속을 태운 일이 비일비재였다. 매번 일럴 때면 어머니는“성공이란 쉽사리 이루어지는 법이 없다.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하고 자신을 부단히 다스리며 실속 있게 업무 능력을 향상해야 언제가는 목표를 이루고 뜻하던 바를 실현할수 있다”고 귀띔을 주었다. 이때마다 나는 항상 어불성설한 반론으로“지금은 인맥의 힘이고 금전이 앞서는 세대예요. 노력이 뭐가 중요하다고 그래요. 친구가 많아야 길이 많다고 했습니다…”라는 요사한 구실로 어머니 마음을 상하게 했다. 이때마다 어머니는 행동으로 나의 잘못을 가르쳤다.
어느날 집에 들어서니 어머니가 컴퓨터를 안장하고 있었다. 지난세기90년대 말 컴퓨터는 사치한 존재이고 사회적 트레이드로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나는 놀라서 물었다.“어머니, 무슨 돈으로 컴퓨터를 샀습니까?” 어머니는 웃으면서“매일 엿장사를 한 수입을 차곡차곡 모아 너희 사업에 도움이 될가 해서 장만했다”고 했다. 순간 어머니의 사랑과 희망에 가슴이 뭉클했다. 정말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어려운 살림생활 속에서도 한푼두푼 모아 자식의 성공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고 후회가 샘솟듯 솟아났다.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생활은 항상 공정하다. 노력하고 성실하게 림하면 그에 따르는 보상은 꼭 차려진다. 아무리 억대 부자라도 삼대를 못 넘는다고 했다.” 아주 소박한 말씀이지만 정말 지금 생각해도 진리이다. 이후로 나는 돈을 허투로 쓰지 않고 저금하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슨 일에서나 끈질긴 노력과 열정을 다하면 뜻하던 바를 이룰수 있다는 소박한 도리를 실천해 나가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결혼하고 자식을 키우면서도 항상 어머니의 잔소리 속에서 나는 조금씩 변해 갔고 성장했으며 점차 가정의 기둥으로 변해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도20년 세월이 다가 온다. 웬지 어머니의 빈자리는 시간과 더불어 망각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커져간다. 가끔 어려움이나 역경에 처해 방황을 할 때면 어머니의 가르침이 그토록 간절하고 그립다.
세상 부모의 마음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강직하고 생활을 엄숙하게 대하며 근면하게 살아오신 인생 궤적은 나에게 커다란 재부로 남아 나의 남의 여생의 등대로, 등불로, 네비게이션으로 영원히 빛날 것이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못난 자식이 이제서야 어머니의 마음을 완정하지는 못하지만 대부분 읽을 수 있고 어머니 생활 태도에 진심으로 감복하며 생활의 점점으로 점철된 인생의 가르침이 나에게 그처럼 빛난 보석인줄 피부로 실감합니다.
남은 여생 어머니의 삶의 태도, 곤난 앞에서 좌절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를 되새기며 열심히 생활해 떳떳한 아버지로, 남편으로, 아들로 긍정 받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