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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똥퍼아저씨- 리한택

2023-05-11 10:00:22

내 나이 쉰을 넘긴지 몇해 지나니 요즘은 자꾸 고향이 그리워진다.

그래서 하루 품을 팔아 오매에도 그립던 고향으로 향했다. 하늘도 나의 즐거운 마음을 읽듯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맑고 푸르다.

고향으로 가는 아스파트 길은 3차선으로 시원하게 뚫려 있었고 길 량쪽에 줄지어선 가로수들이 한낮의 따가운 해볕을 막아주었다. 동년의 꿈이 가득한 고향은 언제부터인가 마음의 안식처가 되여 있었다. 마음은 이미 고향에 가 있었고 저도 모르게 코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몇시간의 긴 려정을 거쳐 드디여 고향집이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언덕을 지나니 저 멀리로 작은 실개천이 한눈에 안겨왔다. 어릴적 이 하천에서 미역을 감고 물고기를 잡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차는 미끄러지 듯 실개천을 지나 어느새 마을어귀에 도착했다. 옛추억을 찾을겸 차를 마을어귀에 세워놓고 걸어서 동네로 들어가기로 했다.

사십년의 기나긴 세월이 흘러갔건만 시골인 고향은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 돌담을 사이두고 요리조리 숨박곡질하던 울퉁불퉁한 골목길은 그나마 시멘트길로 포장되여 있었다. 한폭의 수채화같이 골목길 량쪽에는 백일홍 꽃들이 곱게도 피여있다.

나의 발길은 이끌리듯이 어딘가로 향해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번이고 다니고 뛰여놀던 그 골목길을 어찌 잊었을리가 있겠는가!

어릴 때에 바지가랭이가 타지도록 기여오른 늙은 비술나무가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지금은 옛날같지 않아 아이들이 나무에 기여오르거나 나무에 그네를 거는 일도 거의 없다. 한때는 온 동네 아이들이 매일같이 모여들어 이 늙은 비술나무를 괴롭혔었다. 이제는 그때의 상처들이 모두 아물고 튼실하게 자라고 있었다.

저 멀리로 빨간 대문이랑 까만 기와집이 한눈에 안겨온다.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진다.

왜 이제서야 오니? 라고 나무라 듯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정다운 고향집앞에 선 나의 눈에서는 어느새 감격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수십번이나 열고 닫고 한 우리집 대문이다. 밥먹자는 엄마의 부름소리가 아직도 귀전에서 쟁쟁 맴돌고 있었다. 그 누구라도 어릴적 고향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대문은 자물쇠로 꽁꽁 잠겨져 있었다. 고향집은 주인이 바뀐지가 여러번이고 지금은 한족사람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 어머니의 손끝에서 그렇게 정갈했던 마당도 지금은 돼지똥으로 어지럽기가 거지없었다.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던 나의 마음은 한수간에 내려앉았다. 고향집에 대한 미안한감에 차마 더 바라볼 수가 없어 재빨리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귀중한 무엇을 흘린 듯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군 했다.

슬픈 마음을 겨우 달래며 6년이란 긴 세월을 함께 해온 조선족소학교에 가보기로 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학생들의 글소리 웃음소리 랑랑하던 교정은 이미 페교가 된지 오래였고 건물이 허물어지고 운동장도 잡초들로 무성하였다. 아이들이 웃통을 벗어던지고 운동장을 뛰여다니며 축구를 차던 나날들이 눈앞에 보이는 듯 또렷한데 이제는 쥐죽은 듯 조용하고 풀벌레들의 울음소리만 들려온다.

“어휴!”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울분이 섞인 한숨이 터져나왔다.

학교 운동장 한켠에는 농촌 재래식 변소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여름이면 똥냄새가 지독하고 똥파리들이 귀찮게 달려들군 했었다. 코를 막고 변소에 뛰여들어 오줌을 싸고 재빨리 밖으로 나와 후! 하고 숨을 쉬군 하였었다. 지금에 와서 보니 그것도 좋은 추억으로 내 가슴에 남아있었다.

재래식 변소를 말하자면 나에게는 슬픔이였고 아직도 아물지 못한 아픈 상처이기도 하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그때 내 나이가 10살 때 였을 것이다.

“처어우 타오우 따 훤떠(臭掏大粪的).”

나와 나이가 비슷한 한무리의 아이들이 똥통을 메고 가는 똥퍼아저씨를 더럽다고 놀리면서 돌덩이를 마구 던져 대고 있었다. 돌덩이에 맞은 똥퍼아저씨는 코피가 터지고 모자가 저 멀리로 벗겨져 나갔지만 찍소리 안하고 제 갈길만을 가고 있었다. 그 몰골에 아이들은 하하 웃어대며 야단법석이였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덩치 큰 한 아이가 더 큰 돌덩이를 주어들고가서 똥이 가득찬 똥통에 던졌다. 그러자 시누런 똥물이 튕겨나와 똥퍼아저씨의 옷과 얼굴에 온통 똥물 투성이였다.

“왹! 더러워라!”

아이들은 손으로 코를 막고 사처로 도망갔다. 당황한 똥퍼아저씨는 그저 눈을 부릅뜨고 달아나는 아이들을 쏘아볼 뿐 말 한마디가 없었다. 똥퍼아저씨의 얼굴은 수수처럼 새빨갛게 달아 있었다.

“바보야, 따라가서 때려줘야지!”

아이들의 행패에 아무런 반격도 안하고 그저 멍하니 서있는 똥퍼아저씨가 미워서 나는 속으로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나는 이럴 때마다 같이 놀며 다니는 그 애들이 밉고 한스러웠다. 다시는 그 불쌍한 똥퍼아저씨를 괴롭히지 말자고 타이르기도 했건만 나의 말을 들어주는 애들은 없었다.

“이 바보야! 똥퍼아저씨는 반혁명죄를 짓고 농촌으로 쫓겨온 거래, 그러니 하나도 안 불쌍해!”

똥퍼아저씨를 괴롭히는 일이 여러번 있고부터 나는 그 나쁜 아이들과 더는 같이 휩쓸리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 아이들로부터 내가 왕따를 당한 것이였다.

“더러운 자식들, 나도 너네들이 싫다. 다시는 너네들과 노는가 보라!”

사실은 이러했다.

똥퍼아저씨는 성은 왕씨였고 상해에서 내가 사는 농촌으로 하방을 당했었다. 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똥퍼아저씨의 부모가 반혁명분자라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한다.

똥퍼아저씨는 친구도 없고 누구하고도 말을 섞지 않았기에 다들 그를 벙어리인줄 안다. 똥퍼아저씨는 똥통을 메고 다니며 동네 공공변소의 똥을 푸고 청소를 하는 일만 했다.

어느 날 하학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막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는데 아버지와 똥퍼아저씨가 마당에서 장기를 두고 있었다. 나는 주위를 빙 둘러 보았다. 그러면 그렇지 똥퍼아저씨의 시누런 똥통이 마당 중앙에 떡하니 놓여있었다.

“왹!”

나는 손으로 입과 코를 막고 재빠르게 집안으로 뛰여 들어갔다. 그리고 부엌문을 쾅하고 닫아버렸다. 그 구린 똥냄새가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말이다.

“아버지는 왜 저 똥퍼아저씨와 장기를 두는지…”

못마땅한 나는 책가방을 벗어던지고 필기장을 뜯어 딱지를 접기 시작했다. 며칠전에 용남이한테 진 딱지를 꼭 이겨 오고야 말겠다고 생각했다.

“장군이요!”

“멍군이요!”

“그래 자네가 이겼네!”

아버지와 똥퍼아저씨가 마당이 떠나가도록 소리지르며 장기를 두었다.

호기심에 동한 나는 유리창문으로 밖을 내다봤다. 벙어리로만 알고 있었던 똥퍼아저씨는 아버지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로 담배쌈지를 돌려가며 담배를 말아 뻑뻑 피우고 있었다. 구수한 이야기를 늘려놓은 똥퍼아저씨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하였다.

“이놈아 여기 좀 와봐라!”

나는 아버지의 부름에 내키지 않았지만 마지못해 마당으로 나갔다.

“앞으로 왕씨아저씨라고 불러라!”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야, 아는 것도 많고 붓글도 잘 쓰고 장기도 잘두어.”

똥퍼아저씨는 허허 웃으며 나를 바라 보았다. 나는 코를 막고 아버지 등뒤에 숨어버렸다.

어느 날이였다. 하학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똥퍼아저씨와 마주쳤다. 머리를 숙이고 묵묵히 길만 재촉하던 똥퍼아저씨가 나를 보더니 걸음을 멈추고 피씩 웃으며 알은척했다. 그리고 심술궂게 시누런 똥이 가득한 똥통을 내 코앞으로 쑥 내밀었다. 나는 코를 막고 머리를 돌려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 버렸다. 다행히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똥퍼는 주제에 왜 알은척 해!”

나는 똥퍼아저씨의 웃는 얼굴이 더욱 역겨워졌다.

그해 여름은 날씨가 몹시 더웠었다. 나는 몇몇 아이들과 뒤동네의 하천에 가서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다. 장마비가 연거퍼 며칠이나 내려서 강물이 매우 많이 불어 있었다. 몸의 때를 씻을겸 우리는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하나 둘 강물에 뛰어들었다. 물장난을 치며 놀다가 나는 자기도 모르게 수심이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순식간에 깊은 물 속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수영을 잘하던 나는 여유만만하게 팔다리를 흔들어댔다. 평시같으면 이내 밖으로 헤여나와야 했는데 오늘따라 몸이 앞으로 나가질 않았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소용돌이 치는 강물에 휩쓸려 강가에서 점점 더 멀어져갔다. 나는 당황하여 사람 살리라고 아우성을 쳤다. 같이 놀던 아이들은 무서웠는지 사처로 도망을 쳤다. 기진맥진한 나는 점점 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입으로 코로 물을 몇모금 마시고 그렇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야! 정신이 드니?”

내가 정신이 들어 눈을 떠보니 같이 놀던 아이들이 나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또 낯익은 얼굴이 걱정어린 모습으로 나를 애타게 불러 댔다.

나를 구한 사람이 바로 똥퍼아저씨였다. 하루 일을 마치고 강에 와서 똥통을 씻고 있다가 물에 빠진 나를 구한 것이였다. 내게는 운이 좋은 하루였다.

“자네 고맙네!”

“자네가 없었다면 어쩔뻔 했어!”

그날 저녁에 우리집에서는 술상을 차리고 똥퍼아저씨를 크게 대접하였다. 나는 멀찌감치에서 똥퍼아저씨를 훔쳐보았다. 똥퍼아저씨가 오늘처럼 이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은 처음으로 보는 것 같았다. 더럽다고 코를 막고 똥퍼아저씨를 괴롭혔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런 나를 강물에서 구해준 똥퍼아저씨가 참말로 고마워졌다.

이 일이 있고부터 나는 똥퍼아저씨를 괴롭히는 말과 행동을 더는 하지 않았으며 다른 아이들이 똥퍼아저씨를 괴롭히는 것도 말리군 했다. 그러나 나보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아이들이 행패를 부리면 나는 못본 척 조용히 에돌아 지나쳐 버리군 했다. 똥퍼아저씨가 모욕을 당하는 것을 보기가 싫었고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이였다. 나는 하루종일 놀다가 저녁끼니가 한참 지날 쯤에야 배가 고파 집으로 들어왔다.

“꼬맹아, 빨리 와서 밥 먹어!”

희미한 초불 속에서 아버지와 똥퍼아저씨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며 아무말도 없었고 똥퍼아저씨는 독한 술만 마시고 다시 부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무슨 날이지? 나는 어머니의 눈치만 살폈다.

오늘 따라 평시에 먹지 못하던 두부찜도 있었고 돼지머리수육도 한접시 있었다.

“래일은 왕씨아저씨가 상해로 돌아가는 날이다.”

어머니가 작은 소리로 나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똥퍼아저씨를 힐끔 쳐다 보았다. 똥퍼아저씨가 술을 마시다 말고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들먹이며 울기 시작했다. 작은 울음소리는 금세 큰 울음소리로 변했다. 똥퍼아저씨는 어린애처럼 목놓아 울고 또 울었다.

“실컸 울게, 그동안 고생이 참 많았지!”

아버지가 똥퍼아저씨의 술잔에 술을 가득 부어 주었다.

오늘 따라 나는 똥퍼아저씨랑 아무런 거부감이 없이 조용히 밥을 먹었다.

평시와 달리 더부룩하던 수염도 깔끔히 면도하였고 깨끗한 새옷으로 갈아입은 똥퍼아저씨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이튿날 아침 밥상에서 어머니가 나한테 새 필통 하나를 건네주었다. 똥퍼아저씨가 기념으로 나한테 사준 것이라고 했다. 필통을 열어보니 새 연필 몇개와 글쪽지 하나가 있었다. 눈에 익은 글씨였다. 똥퍼아저씨의 멋진 글씨였다.

“好好学习,天天向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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