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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아줌마는 밥심으로 산다- 김향려

2023-02-28 10:19:26

주부경력이 20년을 훌쩍 넘은 분들하고 대화를 나눌 때면 품 안에 있을 때가 자식이라며 장성한 자식들로부터 느끼는 소외감을 한탄하거나 옛날 운동선수처럼 탄탄하던 다리 근육이 다 풀리고 어느새 늘어진 군살에 행동마저 어정쩡해진 남편을 대하며 인간적인 련민과 안쓰러움,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신다는 그분들… 그러나 나에겐 아직 꽤 아득한 일같이 느껴진다.

결혼한지 한참 되였지만 여전히 나를 새댁이라고 부르는 그분들에게 아직도 엉망인 내 살림 솜씨를 보이는 게 창피하고 행여 어제 남편하고 다툰 눈치라도 들킬가봐 괜히 주눅이 들기도 하지만 밥심으로 산다는 그분들 이야기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안그래도 요사이 내가 먹는 밥 한그릇에 집착이라고 할 만치 열성을 보이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스스로 놀라군 한다.

어릴 적에는 먹음직스러운 반찬이 상에 보여야 투정없이 밥 한공기를 게 눈 감추 듯 비우군 했었는데 이젠 반찬이 좋은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에너지원으로서 탄수화물이 대부분인 이밥에 무한정 의지하게 된다.

학교 때만 해도 밥 한끼 굶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였다. 그러나 잠은 아무리 자도 부족한 듯 했고 이튿날 시험이라도 치르게 되여서 스파르타식으로 밤샘 공부를 하는 날에는 그 잠이란 것이 어찌나 고픈지 손등을 꼬집어가며 그놈하고 싸웠다. 쥐 죽은 듯 고요한 밤에 쏟아지는 잠은 주체할 길 없는데 고군분투해야 하는 시간은 지독하게 처량하고 외로왔다. 그런 밤일수록 하필이면 얼마나 길었던지…

그래서 결혼하기 전의 나는 잠과 밥 중의 하나를 고르라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잠에 한표를 던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기를 키우면서 잠버릇이 안 좋은 두 애를 어르고 달래고 하면서 그 많은 밤을 하얗게 보내며 살다보니 잠에 대한 면역력이 어느 정도 길러진 듯 했고 어느 순간부터 배고픔이 더 참기 어렵다는 걸 터득하게 되였다.

끼니를 거르거나 밥을 조금 부족한 듯 먹은 뒤에 영락없이 따라오는 허기는 허리를 펼 기운조차 없게 만들었고 심지어 그 배고픔으로 인한 짜증과 원망스러움 때문에 죄 없는 애들까지 다그치게 되는 걸 느끼면서 내가 먹을 밥에 은근히 신경을 쓰게 되였다.

좋은 반찬도 필요없다. 밥을 대충 물에 말아 김치 한쪼각에 허겁지겁 먹더라도 충분했다. 그리고 일단 뇌 신경으로 포만감만 전달되면 세상이 그다지 불편하지 않음을 흐뭇하게, 감사하게 생각하게까지 된다.

어떻게 해도 티가 나는 아줌마 타이틀을 거부 못하는 나에게도 아직 소녀의 감수성이 남아 있음에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봄이 오면 장롱 깊숙이 숨어 있던 치마를 뒤지며 이상하게 맘이 설레고 추풍에 락엽이 흩날릴 때면 괜스레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것처럼 서럽고 허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다행이랄지 슬픈 일이랄지 모르겠지만 이때도 텅 빈 내 맘을 달래줄 아는 밥 한공기가 제격임을 알게 된다. 배만 부르면 세상 시름사는 다 녹두알만하게 느껴지는 법이던가. 밥이 이렇게 여러모로 요긴하게 쓰인다는 걸 알게 된 거도 내가 아줌마이기 때문이 아닐가.

살면서 무시로 허전할 때, 사람한테 참으로 서운하고 슬플 때, 그리고 지치고 화가 날 때도 누구한테 간절한 하소연에 앞서 이밥 한공기가 나에게 주는 위로와 만족감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수걱수걱 숟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여 배가 든든해질 무렵에는 허기도 우울함도 가슴 시린 것도 어느덧 중화되고 많은 것이 채워진 느낌이다.

단순히 탄수화물 자체가 갖는 열량만으로 인간이 이렇게 복합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건 분명 경이로운 일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걸 알려나 모르겠다. 밥이 이렇게 위대하다는 건 사실 내가 발견한 게 아니다. 단지 원래부터 존재했던 그 사실을 살다 보니 터득했을 뿐이고 그대로 인정했을 뿐이다.

우리에게 밥과 관련한 단어나 표현이 유독 많은 것 또한 농경민족의 밥에 대한 관찰과 애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가 싶다.

과거 왕이나 왕가에서 먹는 밥은 수라라고 했고 조상이나 신령이 먹는 밥은 메, 어른에게는 진지, 반찬 없이 먹는 밥은 맨밥, 설익은 밥은 선밥, 남의 눈치를 보며 먹는 밥은 눈치밥이라고 했다...

밥에는 잡곡밥, 보리밥, 오곡밥, 찰밥, 비빔밥, 콩나물밥, 가지밥, 송이밥, 약밥… 등 주방을 장악한 녀인네의 상상력에 따른 다양한 재료와 형태의 밥들이 라렬할 수 없을 만큼 많다.

“밥이 약보다 낫다.”, “찬밥 더운밥 안 가리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때린다”, “급히 먹는 밥이 목이 멘다”, “다 된 밥에 재 뿌리기”, “빨리 먹은 콩밥 똥 눌 때 보자 한다”, “밥인지 죽인지는 솥뚜껑을 열어보아야 안다”… 등 재치있는 속담들도 많다.

밥 먹는 주체에 따라서도 “드시다”, “잡숫다”, “먹다”, “때우다”… 이렇게 동사를 따로 하는데 물론 더 상스러운 표현도 있다.

밥도둑, 밥벌레, 밥병신, 밥자루, 밥주머니, 밥술, 밥자리, 밥잔치, 밥투정 밥벌이, 밥줄, 밥걱정, 밥물림, 밥빼기, 밥받이, 밥쇠, 밥시간… 이렇게 많은 단어들도 생명의 양식과 직접 관련을 갖는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밥은 우리에게 끼니로 먹는 주식일 뿐이지만 밥과 관련된 이러한 언어의 다채로움은 생명의 풍성함으로까지 직결이 되며 가장 근원적인 것으로부터 후대들에게 세상 사는 리치를 깨닫게 하려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소박한 믿음이 들어있다.

한창 배고픈 나에게 유럽의 딱딱한 빵을 먹으라고 하면 나에게 빵은 눈물 없이 먹을 수 없는 빵이 되겠지만 서양인들에게 있어서 그 빵 또한 내가 밥을 대하 듯 친근함을 넘어 경외심까지 들게 하는 음식 이상의 의미와 존재일 것이다…

세월이 제법 흘러 옛날에는 아줌마들의 버스 안에서의 용기백배한 모습과 살벌함에 한심해하던 나도 어느새 그때 본 아줌마들의 나이에 점점 다가가고 있다. 남자친구하고 같이 서있는 저 이십대의 파릇파릇한 생동함과 싱그러움과 수줍은 미소를 지켜보면서 저 애교 속에 숨은 투정과 리기와 단순함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어서 재미있고 내심 남의 작은 비밀을 도청했을 때와 같은 은밀한 즐거움까지 있다… 본능에 충실해지고 삶의 록록지 않은 무게를 느끼게 된 나 자신이 더이상 창피한 생각이 들지 않고 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인정해도 누구 하나 겁날 거 없는 아줌마가 된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될 때가 많다.

밥 한공기의 유혹은 절대 뿌리치기 힘듦을 그리고 뿌리쳐서도 안 됨을 오늘도 느끼고 있다.

기호식품으로서 마시는 그 순간만큼은 공주가 되고 왕비가 되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 커피를 나는 기막히게 즐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항상 나의 현재를 잊지 않게 하는 든든한 밥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순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말하고 나니 지극히 당연한 상식을 곱씹은 느낌에 갑자기 허무해진다. 순간순간 기억상실증에서 비롯되는 멋 없는 잔소리 또한 나이 들어가는 과정 속 본연의 모습이겠다.

아줌마는 본디 밥심으로 산다.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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