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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성공원, 내 령혼의 고향

2022-11-18 10:28:41

대구 달성공원.

나이 들어 하는 이국 생활은 편치가 않다. 나의 '북경(北京) 살이' 역시 편치는 않다. 많은 한국 지인들이 한국 정치의 혼란상을 전하면서 그곳에 있으니 맘이 편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난 의례적으로 모든 게 좋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인터넷으로 실시간 전 세계가 련결되는 이른바 '초련결 사회'에 마음 편히 피할 곳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내가 애써 뉴스를 찾아보지 않더라도 그들은 내게 매일 수없는 한국 소식을 전한다. 여야 정치갈등과 '이태원 참사' 소식은 거의 실시간으로 북경에 있는 내게 전해진다. 그러니 어찌 북경이라고 맘 편히 지낼 수 있을까?

북경의 상황도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중국 친구들이 가족 처럼 모든 것을 챙겨주지만 그래도 생활습관으로 인한 불편한 점이 많다. 그나마 휴일이면 호텔에만 있는 것도 편치 않으니 아침에 레스토랑에서 조식을 하면서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를 들고 후해(後海)나 원명원(圓明園)을 찾아 호수가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것이 유일한 호사이자 락이다.

그럴때 떠오르는 곳이 있다. 바로 대구 달성공원이다. 그것도 5m 정도 되는 높이의 담벼락 밑이 생각나고 그립다. 그곳에 앉아 지난 세월 그리고 떠나간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커피든 소주든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소울 플래이스(soul place)', 즉 령혼이 위로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곳에 가서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정신과 약을 먹지 않아도 심리치료가 되는 곳, 그곳이 바로 '령혼의 공간'이다.

필자에게 그곳은 바로 대구 달성공원이다. 내가 태여난 곳도 아닌데 그곳은 나의 령혼의 고향이 되였다. 그래서 힘들고 외로우면 눈을 감고 가만히 그곳을 떠올려 나의 지친 령혼을 그곳으로 보낸다. 달성공원의 담벼락에 앉아 나의 령혼은 위로를 받고 다시 삶의 활기를 얻는다.

나는 1971년 봄 버느나무 가지가 늘어진 대구 비산동 방천길을 따라 삼륜차를 타고 '대구 살이'를 시작했다. 수도도 전기도 없는 미나리꽝 한복판에 지어진 가건물이 우리 일곱 식구의 보금자리였다. 바로 옆집에는 마부 가족이 살았다.

택시회사에 취직한 아버지가 몇달 되지 않아 강도를 당해 사경을 헤매면서 장남인 나는 길거리로 나섰다. 어린 사내아이가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고물을 주워 파는 것 뿐이었다. 지금도 동남아나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아이들은 그렇게 먹고 산다. 이제는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도 1970년초에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고 국가는 국민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알아서 생존해야 했다.

당연히 그 당시 국민학교로 불리던 학교는 중단을 했다. 고물을 주워 고물상에 판 돈을 녀동생들에게 주고 나면 나는 6km가 넘는 길을 걸어서 달성공원을 찾곤했다. 그곳에 앉아 뱀장수와 약장수의 원맨쇼(?)를 보는 것도 좋았지만 가족끼리 손잡고 소풍오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좋았다. 어린 마음에 내 처지가 슬프다는 느낌 보다는 나도 언젠가 가족과 함께 소풍와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것 같다. 지금은 무료개방이지만 그 당시는 달성공원에 입장료가 있었고 키가 2m가 넘는 키다리 아저씨가 정문을 지키고 있어 어린 내게는 담벼락에 기대어 해볕을 쬐는 것이 락이였다. 공원 안은 행복이 있는 사람들의 공간이었고 담벼락은 나 처럼 힘든 사람들의 공간이였다. 거기에는 늘 술에 찌든 부랑자와 로인, 장애인들이 모여 술추렴을 했다. 고성과 몸싸움이 오가는 드잡이가 다반사였다. 그래도 난 그곳이 좋았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좋은 곳을 많이 다녔다. 권부(權府)의 상징인 청와대도 있어봤고 미국과 중국, 일본의 좋은 대학 캠퍼스에도 있어봤다. 뉴욕의 타임스퀘어도, 도쿄의 시부야도, 북경의 천안문(天安門)광장도 좋은 곳이다. 그러나 내게는 돌아가신 어머니 처럼 늘 생각나고 그리운 곳, 그곳은 달성공원 담벼락 뿐이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ㆍ북경대학 방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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