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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워낭소리 (외 7수)- 김정권

2022-09-20 15:28:59

달구지 방틀에 비스듬히 기대여

죽음의 문을 노크하는 삶을

잠깐 재워주는 농부의 자장가다


비를 싣고 눈을 싣고

바람을 싣고

그리고 땀과 세월을 고쳐 실어

진실한 력사를

세상과 가댁질하는

록음되지 않은 생소리다


숨 붙어있는 짐도 모자라

숨 떨어진 짐도 달갑게

천당으로 보내주는

먹임자 없는 장송곡이다



양계장


한치의 발톱으로도 디딜 땅이 없구나

한뼘의 고개를 들어

우러를 하늘도 없구나

가로세로 삼십센치미터의 공간에서

비틀어진 부리로 고통을 쫏는

한조각 자유마저도 그리워

산란의 기계로 살아가는 운명을

닭알로 생겨났을 때는 어찌 알았으랴

너 지지리도 불운한 운명이여,

다시 태여나거든

너의 자궁부터 버리고 태여나거라

그리고 솔개의 날개를 가지거라!



납설수


해 지기전

꼭 오마하던 님이

달 차가워도

그림자 한점

보이지 아니 하니

내내 얼어붙은

고드름으로

지아비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백발이 내려앉은

아낙네의 눈물이다



야구공


이손 저손에 뿌리워져도

눈물 한방울 없다

단단한 방망이에 맞아

하늘을 솟치면서도

그저 단절의 소리뿐

아파도 아프다는 말은 못하고

뒹굴려도 어지럽다는

말도 못하고

오로지 엇갈린 함성 속에서

세상에 팽개쳐지는 삶으로

만인의 즐거움이

포도알처럼 주렁지다



사인


자야,

네가 시집가던 날부터 나는 썼다

사랑시를 썼다 너를 못잊어...

드디여 시집이 출판 되였다

맨 처음 주고 싶은 사람은 너였다

사인을 하려고 첫장을 번졌다

그리고 굵은 필로 썼다

그런데 ‘선’하고는

‘혜존’이라고 써야 할 자리에

그만 ‘사랑한다’고 써버렸다

참, 나는 왜 이다지도 너를 못잊는지…



중매


도리깨 아들이

똥 오줌 못가리는

아버지에게

쥐며느리를 소개한다

쥐며느리는

‘아싸’하며

최고의 리상형을 만났다고

화장실거울 앞에서

싱글벙글 웃다가

홀딱 벗은채 변기물에

들어가 목욕을 한다



모정의 일기


팔십도 훨씬 넘긴 엄마가

시간이 날 때마다

어린 손녀에게서 글을 배웁니다

이제 글을 배워 뭘 하느냐

만류했지만서도

엄마는 한사코 말을 듣지를 않습니다

어느 날

무심코 엄마의 일기를 펼쳐보니

철자도 틀리고 받침도 틀리고

맞춤법도 다 틀렸지만

왠지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가슴이 울컥해났습니다

엄마가

그렇게 그렇게 쓰고싶었던

글은 바로

‘내새끼! 내새끼! 내새끼!’였습니다



나의 시는 가까운 곳에


시는 비너스의 가슴에만

붙어 있는줄 알았더니

내 엄마의 발바닥

갈라터진 틈새에도 있더라


시는 마릴린먼로의 치마 속에만

매달려 있는줄 알았더니

내 안해의 겨드랑이에 흐르는

땀방울 속에도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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