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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낟가리- 마성산

2022-08-19 14:47:24

고향마을 하면 떠오르는 건 나지막한 토벽집, 이집 저집으로 이어진 좁은 길, 바자에 둘러싸인 채마전, 말끔히 쓸어놓은 마당과 돼지우리, 그리고 집집마다 가리여놓은 낟가리들이다. 고향의 이러한 이미지들 가운데서 낟가리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낟가리는 가장 흔하게 봐오던 고향의 이미지였으나 90년대 이후에 태여난 젊은이들은 아마 낟가리를 보지도 못했거나 낟가리의 뜻을 알고있을는지도 의문이다. 낟가리는 털지 않은 곡식을 그대로 쌓은 더미를 말하기도 하고 나무, 풀, 짚따위를 쌓은 무지를 말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나무를 쌓은 무지를 가리켜 하는 말임을 지적하는 바이다.

예로부터 밥을 짓거나 방을 덥히거나 모두 땔나무의 신세를 보지 않으면 안되였는데 당시의 땔감은 주로 새나무나 벼북데기였다. 한해의 땔나무를 마련하는 것은 동네 집집마다의 대사로 꼽힌다. 7, 8 월에 들에 나가 양낫으로 새나무를 베여넘겼다가 마른 후 단으로 묶어 무져둔다. 초겨울이면 그것을 실어들여 집주위 높은 지대를 선택하여 낟가리를 가린다. 낮은 지대는 여름철 비물이 고여 나무가 썩기때문이다. 나무 낟가리는 아무렇게 쌓아서 되는게 아니다. 나무단을 빼내 쓰기에도 편리해야 하거니와 큰 바람 불어도 끄떡없고 비가 와도 비물이 속으로 새지 않게끔 엄밀해야 한다. 성의 없이 대충 쌓았다간 비물에 썩어버리는 수가있어 세심하게 쌓아야 한다. 어떤 집들에서 가린 낟가리는 그야말로 경탄을 자아낸다. 나무단 그루터기가 층이 나지 않고 가쯘하게 쌓아올리는데 마치 작두로 뭉청 잘라놓은듯 일매지기로 기막힌다. 우로 올라가면서 좀씩 바깥으로 넓혀가다가 다시 차츰좀혀가는데 꼭대기엔 아예 지붕에 얹는 용마름을 틀어 얹는 집도 있다. 이런 낟가리는 너무도 미끈하여 "이 집에서는 이 낟가리를 영원히 헐어 때지 않으려고 작정한거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낟가리에 신경 쓰는 분들은 낟가리를 쌓는 도중 내려와서 층이 난 곳은 없는지 가쯘한지를 확인한 후에 다시 올라가 쌓는다. 아무튼 낟가리는 농가의 주요한 재산으로 손꼽혀왔고 누가 더 훌륭하게 쌓는가를 비겨보는 대상물이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낟가리만 보고서도 이 집의 생활 풍격과 생활 방식을 보아낸다. 어떤 집의 낟가리는 몇년을 지나며 봐도 좀체로 축나는 기미가 없는것 같은 감을 준다. 비바람에 풍화되여 희뿌연 색갈의 낟가리는 오래 동안 묵었음을 알수 있는데 이런 낟가리의 주인집에서는 불을 때기나 하는지, 하루에 얼마씩 때는지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런 집들은 대체로 구두쇠가 아닐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낟가리가 큰 것은 살림이 유족하다는 상징물로 되기도 했었다. 새나무 낟가리 외에 또 생산대에서 주는 벼북데기도 낟가리를 이룬다. 북데기는 새나무 낟가리처럼 산뜻하지 못하고 옥수수떡(窝窝头)모양으로 무지고 꼭대기엔 비닐을 씌워 비물을 방지하였다. 집집이 북데기를 무져놓으니 팔자 고친 놈은 동네 돼지들이였다. 북데기는 북방의 엄동설한에 뜨뜻하게 과동할 수 있는 돼지의 천연적 요람으로는 둘도 없는 곳으로 선택될만 하였다. 하지만 드센 주인집 량반과 맞다들게 되는 날엔 안심하고 좋은 꿈을 꿀수 없었다. 두세마리씩 북데기 속에 파고 들어가 쿨쿨 달콤한 꿈을 꾸다가 주인 량반에게 들키면 사정없이 얻어맞고 쫓겨난다. 쫓겨난 놈들은 멀지 않은 곳에 대기하고 있다가 주인량반이 들어가면 다시 찾아온다. 끈질긴 주인이 다시 나와 더 사정없이 굴면 그놈들도 안되겠다 싶은걸 인식했는지 다른 북데기요람을 선택한다. 드센 주인량반과 맞다들면 십중팔구는 꿈자리가 사나웠을 것이다. 어찌 됐건 북데기 덕에 돼지들은 팔자 좋은 겨울 한철을 보낼수 있었다. 그러니까 농가에서 기르는 돼지들은 여름철보다 추운 겨울을 더 선호했을 건 두말할 것 없이 불보 듯 뻔하다. 간혹 낟가리에 옴폭한 둥지를 만들어놓고 거기에다 닭알을 수북이 낳아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것을 발견할 땐 웬 떡이냐 싶기도 하다. 북데기는 바람에도 쉽게 날리고 정주간에 들여올 때도 불편하여 농가에서는 비료포대를 쪼개여 무어 큼직한 북데기 보자기를 만들어 북데기를 싸서 집안에 들여오기도 하였다. 벼북데기를 때면 재가 엄청 많이 나온다. 하여 가마 후렁의 재를 매일 끄집어내야 하는데 여기의 필수적인 살림 도구로는 삼태기가 있고 재불의 세련을 받아 네귀가 둥그스름하게 닳아빠진 T모양의 긁데기가 있다. 말이 나온 김에 몽당 부지깽이, 아궁이 주위를 떠나지 않는 쪽걸상도 이 계렬의 살림도구에 포함시킨다. 다음 날에 땔 북데기를 들여놓는 날엔 부뚜막에까지 북데기가 널려 귀찮기 그지없고 그보다 더 한심한 건 자칫하면 화재가 발생할 수 있어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농가의 낟가리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적지 않은 농가에서 가마후렁을 장작이나 석탄을 때게끔 개조하기 시작했기때문이다. 따라서 며칠에 한번씩 재를 끄집어내니까 삼태기나 부지깽이도 력사의 고물로 되여버렸고 고간에 정히 간수해두었던 양낫도 헌신짝 버리듯 팽개쳐지는 비운을 면치 못하게 되였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농가에선 장작더미나 석탄무지도 사라져가는 추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불을 때지 않는 세상이 다가오기 시작했으니까. 지금 세월은 전기화의 시대이다. 그래서 농가에선 집을 지을 때 아예 굴뚝이 없는 집을 설계한다. 굴뚝이 없어짐에 따라 불 때는 일이 사라졌고 나무 낟가리는 하등의 필요가 없는 존재로 되여버렸다. 낟가리의 멸망으로 하여 비료포대로 무은 큼직한 보자기, 삼태기, 닳아빠진 긁데기, 몽당부지깽이, 쪽걸상 등도 멸망의 비운을 면치 못하게 되였다.

난 지금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밥은 전기밥가마로 하고 반찬은 가스렌지로 하며 구들은 전열막(电热膜)로 덥힌다. 그러니까 나무 낟가리를 보았던 기억도 자꾸 희미해지려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딱지 같은 토벽집과 낟가리 등 고향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가슴 속에 그토록 완강히 자리잡고 사라질줄 모르는 건 무엇때문일가?

시대어(时代语)란 머나먼 과거의 일정한 력사 시기에서만 쓰이던 말로서 이를테면 암행어사, 정승, 임금 등 따위와 같은 말을 일컫는 말이다. 낟가리란 말은 시대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시대에선 별로 쓰이지 않을 뿐더러 그 뜻을 모르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자칫하다간 시대어의 감투를 뒤집어쓸 위험성이 존재할수도 있지 않을가 하는 걱정이 앞서는 건 뭣때문일가? 하필이면 낟가리를 들고 나와 수다를 떠는 건 또 무엇때문인가? 고향 마을에 대한 떨어질수 없는 애착때문인가?

돌이켜보면 원시적 생활에 가까운 락후한 삶의 궤적에서 몸부림쳐왔던 우리였었다는 감개가 무량하기만하다. 아, 정녕 산뜻함을 탐내지 않았어도 내 삶의 믿음직하고도 정다운 동반자, 때 묻고 허물없이 친근함을 느끼게 하는 털털하고 소박한 낟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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