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10일 저녁 6시 33분,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의 황금 시간대가 한 조선족 최고경영자(CEO)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저명한 앵커 동천(董倩)의 진행으로 방영된 '신용 중국(信用中国)' 프로그램은 실시간으로 국내 200여개 지역 방송국을 통해 중계되였다.

중앙CCTV 스튜디오의 대담석에 앉은 광동 두원정밀기술유한회사의 장걸(张杰 43岁) 총경리는 전국 시청자를 향해 조용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를 전했다. 흔히 '무겁고 차갑다'고 여겨지는 철강업계, 그중에서도 전기아연도금강판(电镀锌钢板)이라는 다소 낯선 분야에서 그가 일군 이야기는 기업 성공담을 넘어 격변하는 중국 제조업의 현장을 생생히 살아 숨쉬게 하는 드라마였다.
고향을 등지고 남쪽으로 향한 뜨거운 피
그의 이야기는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동북부, 두만강이 흐르는 길림성 도문시에서 자란 조선족 소년 장걸은 장춘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자 마자 단돈 만원도 채 안되는 돈을 쥐고 남쪽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의 목적지는 중국 개혁개방의 최전선 광주였다.

광동 두원 장걸 대표
그곳에서 그는 갓 설립된 한국계 기업인 광동두원(당시 명칭은 광주두원)에 입사했다. 마땅한 공장 시설도 체계적인 시스템도 없던 초기 상황속에서 장걸은 가리지 않고 일했다. 인재가 필요하고 인력이 부족하면 직접 사람을 구하러 다녔다. 마치 불이 난 곳으로 달려가는 소방수처럼 회사의 빈틈을 스스로 메우며 '철강인'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그의 도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대학 시절 품었던 '삼성(三星)'이라는 세계적 기업에 대한 꿈을 향해 그는 잠시 두원을 떠나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동관(东莞) 삼성강재가공센터 영업부 과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누구나 팔기 어렵다는 철강재 영업 현장에서 그는 남다른 전략을 펼쳤다. 단지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 수요를 분석해 '맞춤형 판매 방식(量身定制销售方式)'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것이다. 각 기업이 필요로 하는 자재를 통합적으로 추천하고 때로는 경쟁사 제품이라도 고객의 상황에 맞게 련결해주는 그의 독특한 영업 방식은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고 련속 매출 1위라는 눈부신 성과를 만들어냈다 .
다시 돌아온 곳 짊어져야 할 운명
영업일선에서 최고의 성과를 낸 그에게 두원은 다시 러브콜을 보냈다. 그리고 2010년 7월 그는 광동두원으로 복귀해 영업부장 자리를 맡았다. 그가 몸담은 업계는 '전기아연도금강판'. 가전제품과 자동차의 내구성과 내식성을 결정짓는 핵심 소재였지만 당시 중국 시장은 한국과 일본 등 수입산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장걸은 "우리가 해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달려들었고 그의 지휘 아래 광동두원은 2012년부터 가전용 전기아연도금강판(EGI) 부문에서 매출 전국 1위를 석권하며 국내 자급률을 높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기업인 진광표와 함께 담소하고 있는 장걸(오른쪽) 총경리
운명은 그에게 또 다른 시련을 내렸다. 2020년, 회사의 한국인 지분이 중국 자본으로 전환되면서 장걸은 중요한 주주이자 최고경영자(CEO)로서 회사의 운명을 통째로 떠안게 된 것이다. 외국계 기업에서 토종 기업으로의 변신은 순탄치 않았다. 경영방식의 충돌, 기술이전의 벽 그리고 전통 제조업이 안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들 – 높은 원자재 의존도, 환경 압력 등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변화를 넘어 혁신으로 무채색 철판에 물들인 꿈

그러나 그의 진짜 승부수는 기술에 있었다. 장걸은 한국의 선진 공정 기술을 중국의 경영 지혜와 융합하고 중산대학 등 국내 우수대학 연구팀과의 협력을 통해 연구개발(R&D)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중국 내 최초로 '무니켈(無 Nickel) 전기아연도금 기술'을 상용화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 기술은 제품의 친환경성을 높이고 불량률을 획기적으로 낮춰 업계를 선도하는 주력 기술로 자리 잡았다. 현재 광동두원의 생산 라인은 분당 100미터의 초고속으로 철판을 코팅하며 국내 모든 경쟁사들을 압도하고 있다.
기업이 아닌 가족을 경영하다
장걸의 경영 철학은 '사람'으로 귀결된다. 삼성시절 익힌 체계적인 관리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인간 중심'의 조직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회사에 직원들을 위한 체육시설을 확충하고 매년 간부들과 함께 국내외로 휴가를 떠나는 것도 그가 만든 문화다. 그는 직원들에게 "나는 혼자 잘 살려고 회사를 경영하는 게 아니다. 나를 믿고 따라주는 모든 사람을 부자로 만들겠다"는 말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이런 진심은 말뿐이 아니다. 어느 날 오후 6시, 한 거래처에서 긴급하게 소량의 제품을 요구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주문량이 워낙 적어 받아들일 경우 오히려 손해가 확실한 상황이였다. 그러나 장걸은 망설임 없이 주문을 승인했고 퇴근길에 접어든 직원들을 다시 불러 모아 밤샘 생산에 돌입했다. 그리고 약속한 시간 안에 제품을 고객에게 전달했다. 이러한 그의 '진심'이 광동두원은 단 한번의 광고도 하지 않고도 화위, 소미, BYD, TCL, 하이얼 등 중국을 대표하는 수많은 기업들과 굳건한 신뢰를 쌓아올린 비결이다.
다시 쓰는 신용 세계를 향한 발걸음
현재 광동두원은 국내 시장 점유률 1위의 자리를 굳건히 다지며 년간 매출 15억원을 넘나드는 기술집약형 강소기업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장걸의 시선은 이미 중국 너머의 세계를 향해 있다. 국내 주문이 생산 능력을 초과하는 상황속에서도 그는 값싼 제품으로 가격 경쟁에 뛰어들기보다 국내 동종 업계와의 협력과 련합을 통해 함께 바다로 나가자는 구상을 그리고 있다.


전국 기업가대회 "10대 인물 대상 수상자"로서 대회에서 선진경험을 발표하고 있는 장걸 대표
앞서 장걸 총경리는 지난 2월 5일 복건성 복주시에서 열린 '2025 전국 기업가 신년회 및 제9회 전국 기업가 브랜드 인물 시상식'에 참석해 '중국 과학기술 혁신을 선도하는 10대 인물' 대상을 수상하고 기업 운영 성공 사례를 발표했다. 아울러 광동 두원정밀기술은 '과학기술 혁신 10대 브랜드 기업'과 '전기아연도금강판 정밀기술 산학연구 브랜드'를 동시에 거머쥐는 영예를 안았다.


CCTV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가 파는 것은 철판만이 아니라 고객을 향한 진심"이라고 말했다. 이 진심이 바로 '신용(信用)'의 다른 이름이다. 차갑고 무겁기만 한 철판 우에 '사람의 온기'와 '기술의 꿈'을 새겨온 장걸. 그의 이야기는 기업 성공담뿐만 아니라 중국 제조업이 진정한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꼭 간직해야 할 가장 뜨거운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뜨거움은 CCTV의 황금시간대를 통해 전국인민의 심금을 울리며 '메이드 인 차이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강빈 길림성 특파원, 영상:신용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