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나는 일본에 있는 아들의 초청으로 한달간의 휴가를 내여 도쿄를 찾았다. 아들과 며느리는 틈나는대로 나를 데리고 여러 명문대와 부속병원을 견학시켰다. 그들을 따라다니며 나는 늦은 나이에라도 류학을 해보고 싶다는 욕망을 가졌다. 자식들이 모두 해외에서 석박사 학위를 딴 원인도 컸을 것이다.
그 욕망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 잠까지 설치게 만들었다. 결국 나는 아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일찍 귀국, 정년퇴직을 신청했다. 일본어보다는 한국어가 익숙한 내게 한국 류학이 더 현실적인 길로 판단되였다. 2018년 가을, 서울에 도착한 나는 여러 대학을 살펴본 끝에 한국 한의학의 정수라 불리는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원전학 전공에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2019년 7월 나는 필기와 면접을 마쳤으며, 2020년 1월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총장 장학생'으로 선발되여 천만원(한화)에 달하는 입학금 전액을 면제받은 것이였다. 그러나 학점을 일정 수준 유지하지 못하면 다음 학기 장학금이 취소될 뿐만 아니라 등록금을 전액 부담해야 했다. 부담도 컸지만, 기회도 놓칠 수 없었다.
그때는 코로나19가 한창이였으며 대부분 수업들이 비대면으로 진행되였다. 그러나 우리 전공만은 매주 수요일 등교 수업이 유지되였다. '일주일에 하루뿐인 수업'은 학비 마련을 위한 아르바이트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소중한 틈이였다.
나는 광명시의 한 순대공장에서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새벽 4시에 기상, 심야버스를 타고 7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고된 일정이였다. 그런데다가 나흘째 되던 날, 뒤에서 청소하던 직원이 실수로 끓는 물을 내 허벅지에 쏟는 바람에 찢어진 살과 견디기 힘든 통증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였고 두주간의 치료 끝에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그후에도 구로의 전기회사, 여의도의 재활용품 분류공장 등에서 일을 이어갔다. 동시에 료양보호사와 경비원 자격증, 승강기 관리 면허까지 따내며 나는 생계와 학업을 병행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남서울료양병원의 24시간 교대 근무였다. 치매 환자와 중증 환자 다섯명을 홀로 돌보며 밤새 눈을 붙일 수 없는 날들의 반복이였다.
하루 일과는 전쟁과 같았다. 아침 6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한 후, 9시까지 료양보호사 교육을 받고 기숙사에 돌아오면 이미 10시. 간단한 라면으로 허기를 때운 뒤,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론문 준비와 과제를 했고, 졸리면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으며 버텼다. 잠은 하루 세시간 뿐. 피로가 극에 달할 때면, 아들이 일본 류학 시절 하루 세시간만 자면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들이 해낸 것을 아버지가 못해?'라는 생각으로 버티곤 했다.
힘들었지만 학업의 성과는 빛났다. 첫 학기 중간발표에서 "간장과 신장의 동원에 관하여"라는 론문을 발표했을 때, 교수님과 동료들은 나의 류창한 한국어와 치밀한 론증에 감탄했다. 주임 교수는 "총장 장학생답다"며 최고 점수를 주었다. 그 후 4년반 동안, 나는 석사 과정을 평균 98.33점, 박사 과정을 평균 99.67점으로 조기 졸업하며, 학과 력사에 남는 기록을 세웠다.
그때 가장 큰 고난은 잠의 유혹이였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가 종점까지 가버리는 일도 비일비재였다. 안양, 수원, 평택, 어느 새엔 경기도 끝자락 소요산역까지 가버리기가 일쑤였다. 마지막 차를 놓쳐 비싼 택시비를 내며 기숙사로 돌아오던 밤들은 지금도 생생하다.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 같았다'는 생각이 들만큼 고달팠다.
이 모든 과정을 나는 비밀로 했다. 가족, 친지, 친구,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동창회장이자 병원 당지부 선전위원으로서의 일도 모두 위챗으로 처리하며 잠적하다싶이 했다. 그들이 내가 한국에서 류학 중인 것을 알게 된 건, 박사 모자를 쓴 졸업 사진을 보냈을 때였다.
지난 4년 반, 입에 맞는 중국 음식을 사 먹을 시간도, 옷가게를 둘러볼 여유도 없었다. 나는 그야말로 하루 세시간의 잠과 씨름하며 장학금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 대가로 약 7천만원(한화)의 학비를 면제받을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세상에 어려운 일이란 없다. 오직 하지 않으려는 마음만이 있을뿐이다. 마음으로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기면 모든 고난은 스스로 물러날 것이다. 박사 학위증을 손에 쥐였을 때, 그간의 모든 고된 과정과 쓴맛은 꿀보다 더 달콤하게 느껴졌다.
불굴의 의지와 꾸준한 노력이 있다면 반드시 빛을 보는 날을 맞게 된다. 이는 의심할 바 없는 진리이다. 기회는 노력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그 기회를 소중히 여겨라. 놓치면 남는 것은 오직 후회와 쓴 눈물뿐이니. /남걸
(작자는 1953년 생.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원전학 전공 의학박사 학위 취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