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순한 시골 색시인가
머리 풀고 멱 감네
돌돌 흐르는 개울물보다
더 맑은 눈동자에 어린 사연
님이 쓰다듬고 간
함치르르한 머리채에
행여 티 먼지 묻을 세라
씻고 헹구고
헹구고 씻으며
오늘도 휘휘
눈물 씻어 내리네
떠난 님 오시려나
그리움 씻어 내리네
과수원 할머니
양지바른 언덕 아래
오두막집 짓고
과수원에 뿌리 내리셨던
작은 할머니
흰 저고리 단아히 입고
배꽃같던 얼굴에 환한 미소
고개 넘어 할머니 댁에 가면
뜨거운 밥그릇에
고봉으로 떠 주시던 기장밥
사과배처럼 이쁘게 크라
덕담 하시며 듬뿍 주시던 과일
저기 옹송그린 배나무 한그루
할머니의 화신인가
나무 아래 흰 고무신 자국마다
추억이 흥건히 발목 잡고
부엉새 울던 밤
석유로 불 밝힌 등잔불 아래
들려 주시던 옛 이야기 두런두런
과일 나무에 걸려있네
까치소리
봄내음 싱그러운 아침
나를 따라오며 말 거는 까치
그렇지, 그때도 네가 울자
우리 집에 경사 났었지
오늘은 무슨 소식 갖고
나를 찾아온 거냐
그래, 맞춰 보라고?
어제 저녁
시상이 나래쳐 쓴 시가
시평에 통과되여서일가
바다 건너 돈 벌러 간
랑군님 오시려나
하늘 나라 계신
어머니가 설기떡 보내 올랑가
괜시리 들뜬 나를 골려주 듯
까치가 더 크게 소리친다
까~ 까~ 무슨 소식 올랑가
까~ 까~ 누가 누가 올랑가
진달래꽃 사랑
분홍분홍 연분홍
내 님 치마자락 나부끼며
수줍음 타는
진달래꽃 피네
하롱하롱 못다한 사랑
님 그리워 진달래꽃 지네
멀어져 간 세월
님의 발걸음 소리 애처롭네
보이지 않는 길 우엔
먼지만 이네 바람만 부네
무말랭이의 변신
내 이름은 무우
운명과 싸우는 순간이다
싹싹 채 써는 소리
칼날의 날렵한 춤사위에
온 몸이 부서진다
몸 던져
한번 죽는다
허공의 해가 굴리는
수레바퀴 따라
소쿠리에 편안하게 누워
일광욕에 바쁘다
작열하는 해빛에
후줄근하게 힘 빠져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두번 죽는다
새로운 이름의 미이라
무말랭이로 부활한다
별명
바우, 개똥, 돌쇠......
이름보다 더 이름다운
별별 별명들
저녁밥 때 되면 엄마들이
부르는
소리에 마을이 떠나갈 듯
쪼르르 집으로 달려 가던
똘망똘망한 아이들
이름이 촌스럽다고
발버둥 쳤던 그 시절 뒤로
딱지처럼 붙어 온
개똥애
자손이 귀한 집이라
퇴색하지 않는
천한 별명의 은혜일까
요리조리 구을며
용케 잘 버텨 온 이름
고향에는 지금도
개똥이 부르며
저녁 노을이 붉게 익어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