黑龙江日报朝文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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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사랑, 나눔"으로 피여오른 우리 글 향기 (소학조 수상작)

2023-11-10 13:29:07

대상-아빠는 속으로 운다

녕안시조선족소학교 5학년 1반 동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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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요. 엄마없는 아이는 풀과 같아요”라는 노래가사가 있다.

하지만 우리 형제는 풀이 아니다. 엄마의 빈자리를 정성과 사랑으로 채워주시는 아빠가 계시기때문이다.

우리는 쌍둥이형제로 세상에 태여났다. 하지만 그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태여난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억장이 무너지는듯한 현실앞에서 울고 또 울고싶어지는 아빠는 눈앞에서 철모르는 우리 쌍둥이들이 울어대는 모습에 더 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아빠는 엄마로, 아빠로, 할머니 할아버지의 아들로의 부동한 역할을 맡아해야 했다.

젖달라고 우는 우리들에게 분유를 타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모든 일들은 엄마몫이였지만 우리집은 아빠몫이 였다.

너무 힘들어서 울사이도 없었다며 그래도 너희들이 무탈하게 자라주어서 고맙다고 하신다.

엄마가 되여 주방에서는 료리사의 솜씨로 정성들여 밥상을 차려주시고 세탁소 주인이 되여 우리 형제의 옷이며 신발들을 깨끗이 씻어주시는가 하면 집안의 구석구석도 알뜰히 청소하신다.

또 아빠는 진짜 아빠가 된다. 남자의 너그러움과 도량으로 우리에게 인내를 가르치시다가도 우리가 싸웠을때면 무섭게 화를 내기도 한다.

아빠는 또 효자이기도 하다.

농촌에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돌보느라 일철이면 가서 일손을 도와주기도 하고 건강이 안좋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밤중에도 아프다고 전화하시면 총알처럼 달려가신다. 우리들이 무서워할가봐 걱정하시는것도 아빠몫이다.

이렇게 하루종일 팽이처럼 돌아가는 아빠를 보면 우리는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하다.

우리를 돌보는 사이에 아빠도 많이 늙으셨기에 말이다. 아빠의 유일한 휴식시간은 담배 피울때이다.

가끔 한가닥 한줄기로 사라지는 담배연기를 보면 아빠의 한숨 같기도 하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 같기도 하고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 삼키는 아빠의 애타는 마음 같기도 하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시느라 애쓰시는 아빠의 옆자리를 우리 형제가 건강하고 밝게 커가면서 공부를 잘하는것으로 보상해드리고 지켜주려한다.

엄마가 없어도 풀이 아니라 화초처럼 곱게 가꿔주시는 아빠가 있어서 행복하다.

다역을 맡고 분주히 돌아쳐도 힘든 내색들을 쓱싹 닦아버리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가족들에게 사랑을 충전해주는 아빠 사랑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지도교원 김영희

금상-엄마의 가방

오상시조선족실험소학교 6학년 강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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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들고다니는 핸드백, 어깨에 메고 다니는 멜끈 가방,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미니가방, 이건 구찌, 저건 샤넬... ... 우리 엄마의 명품가방 사랑은 참 대단합니다.

비가 올 때면 “우리 애기 젖으면 안되지.” 하면서 비닐로 씌워다니고 집에 둘 때는 꼭 보호용커버를 씌워서 보관합니다. 그리고 들고 다닐 때도 가방모양새가 변한다고 꼭 필요한 것만 넣고 다녔답니다. 하지만 어느날부터인지 엄마의 명품가방도 내 물건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답니다.

제가 태여나자 엄마의 가방은 휴대용가방으로 변했습니다. 혹시나 내가 배가 고파서 울가봐 혹시나 기저귀가 젖을가봐 걱정이 되여서 매일 우유통이며 물통이며 기저귀를 가방에 넣고 다녔답니다. 거기에다 자주 아팠기에 약이며 체온계까지 등장했답니다.

제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자 엄마의 가방은 또 옷가방, 과일가방으로 변했습니다. 개구쟁이로 소문이 난 저는 하루에도 옷을 2벌 이상 갈아입어야 하였기에 옷을 더 가져다니는 것은 필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애들과 달리 몸이 약했기에 엄마는 이것저것 골고루 먹어야 몸에 좋다고 과일도 종류별로 사서 항상 가방에 채워다녔답니다.

제가 소학교에 입학하자 엄마의 가방은 움직이는 서점이 되였습니다. 저학년급일 때는 매일 이야기책을 갖고 다니면서 학교를 오갈 때 보거나 저녁에 꼭 한시간이상 독서시간을 갖게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대충 읽는 척 하다가 그만 두었는데 엄마랑 함께 저녁독서를 하면서 독서사랑을 갖게 되였습니다. 하여 이제는 집에 들어서기 바쁘게 손이 엄마가방으로 들어갑니다.

고학년급이 되자 엄마의 가방안에는 여러가지 류형의 시험지며 복습제강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우리 조선말교재가 한족교재로 바뀌면서 공부가 많이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여 엄마는 류형별로 중점을 뽑아서 밤에는 시험지를 검사하고 틀린 부분을 상세히 설명해주신 후 다시 그 문제를 풀게끔 하였습니다. 틀린 문제가 많은 시험지는 가방에 넣어서 출근한 후 이튿날 다시 타자해서 주말에 한번씩 더 공고하게 복습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매일과 같이 시험지를 한두장씩 하다보니 저의 한어성적도, 한어로 된 수학문제 리해능력도 눈에 띄이게 제고되였습니다.

모두다 엄마와 엄마가방의 헌신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곧 소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이제는 더는 엄마의 소중한 “애기”를 뺏지 않고 엄마한테 돌려드리겠습니다. 엄마가방에게 진 신세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갚겠습니다. 예쁜 가방 든 멋쟁이 엄마로 돌아가는 울 엄마 모습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엄마도 자신의 애호를 가지고 엄마만의 공간에서 실컷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엄마 사랑해요.

/지도교원 박태화

은상-행복한 인연

녕안시조선족소학교 5학년 1반 황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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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은 분필로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그리는 위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에게도 내 성장의 발자취마다에 찍혀있는 선생님 한분이 계신다. 행복한 만남이 준 나와 조선어문 선생님의 행복한 인연.

한족인 엄마 아빠의 딸이니까 난 엄연한 한족이다. 그런데 조선글 조선말을 하나도 모르는 나를 엄마는 조선족학교에 입학시켰다. 아빠는 엄청 반대하였지만 엄마는 한번 먹은 마음을 굽히지 않는 왕고집이여서 아빠는 투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엄마의 소원대로 일학년에 입학하던 날 아침 엄마는 눈물을 글썽이며 “널 조선족소학교에 입학시키는것이 과연 잘하는것인지?”라고 울먹이였다. 그후부터 매일 아침 학교에 갈때마다 똑같은 말을 하던 엄마는 하학하고 돌아오는 길에서는 “조선어를 배울수 있겠니?”하는 걱정을 하면서 늘 불안해하였다. 근데 엄마의 이런 걱정을 안심으로 전환시키신 분이 바로 조선어문선생님이였다. 발음도 똑똑하고 입모양도 바르게 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난 조선어문에 흥취를 가지고 열심히 배웠다. 선생님을 존경하고 숭배하는 마음이 어쩌면 내가 노력할 수 있는 큰 힘으로 되였을 것이다. 받아쓰기에서도 백점을, 발음이 똑똑하게 과문랑독을 하는 나를 보면서 엄마는 드디여 얼굴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집에 돌아오면 난 엄마의 조선어문 선생님이 되여서 엄마를 가르쳤다. 우리 모녀가 한창 조선어문공부에 빠져있을때 느닷없이 국가통일편찬교재를 사용하고 조선어문이 부과로 되는 현실앞에서 엄마는 또 한번 방황을 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아주 단호하게 한족학교로 전학하자고 했다. 그런데 조선어문선생님과 정이 들대로 든 나는 안된다고 하면서 내 주장을 고집했다. 이를 안 조선어문선생님은 내가 한 선택에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며 더 열심히 일기쓰기를 견지하고, 랑독지도에 심혈을 기울이였다. 그 덕분에 난 여러 랑독, 랑송시합에서 특등상을 받았고 학교의 꼬마아나운서로 활약하고 있는가 하면 조선말 일기쓰기를 다년간 견지한 덕분에 조선어작문수준이 많이 제고되였다. 글을 가르치는 동시에 인성도 갖추어야 한다면서 우리들에게 사람됨됨이도 가르치기에 우리반 친구들이 매일 손꼽아 기다리는 조선어문시간이다. 그 주인공인 조선어문선생님과 함께여서 우리반 조선어문 시간은 열기가 뜨겁다. 엄마의 불안과 걱정을 안정과 안심으로 바꿔준 선생님은 영원히 내 마음속의 별이다. 엄마도 나도 선생님께서 나한테 쏟은 노력과 그 열정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께서 잘 가르쳐준 덕분에 조선말을 할때면 내가 한족인지를 누구도 모른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난 당신의 가장 우수한 학생은 아닐 수도 있지만 당신은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생님입니다. 선생님과의 만남, 조선글, 조선말과의 만남 그 인연을 영원히 아끼고 사랑하렵니다.

/지도교원 김영희

동상-나야, 나!

할빈시 동력조선족소학교 3학년 4반 박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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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하계동계올림픽은 우리의 백년올림픽꿈을 실현시켰고 항주아시안게임 ‘디지털 성화주자’는 중화인민의 자신과 강함을 보여주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폭발하였다. 상업거리는 이왕의 시끄러움이 없어지고 우리 사회는 점차 느려지고 조용해졌다. 뉴스와 tv로 많은 백의 천사가 앞장서서 최전선으로 달려들어 조국과 인민을 위해 자신의 힘을 바치는 것을 보았다. 우리 학교 어느 학부모님이 확진자의 접촉자로 판정받을 때 그제야 나의 주변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인민을 위해 묵묵히 자신의 힘을 바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사, 선생님, 그리고 동네 자원봉사자… 이들은 우리 주위의 너와 나였다.

우리 엄마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집에서 쉬게 됐는데 나는 인터넷수업땜에 바쁘고 엄마는 동네 위챗채팅방에서 자원봉사자를 구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한치의 고민도 없이 지원하여 매일 팽이처럼 돌았다. 매번 핵산검사를 할 때마다 엄마는 항상 제일 먼저 발벗고 나서서 준비물을 준비하고 주민들을 검사해 주고 밤낮없이 바삐 돌아쳤다. 또한 격리방호복을 입고 매 아빠트를 돌아다니며 자가격리하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것을 봤을 때 나는 너무 안쓰러웠지만 한편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러웠다. 오늘, 전국인민들이 한마음으로 싸워 끝내 아름답고 조화로우며 행복한 우리 삶을 다시 반겨왔다. 나는 크게 외치고 싶다. 커서 엄마처럼 나라를 위해 인민을 위해 헌신하고 싶은 사람은 나야, 나!

2023년 5월 18일 오전 9시 31분, 우리는 학교에서 ‘신주 16호’ 유인우주비행선 발사를 다 함께 시청하였다. 장정로켓이 리륙하는 순간 나는 너무 격동되었다. 뒤이어 연 반급 회의시간 우리는 선생님과 함께 중국 항공항천 력사 과정을 다시 되짚어 봤다. 로켓으로 하늘을 날고 싶은 첫 사람 - 명나라 ‘만호’, 중국 우주 개발 력사상 첫 리정표 - 1970년 중국 최초의 인공위성 ‘동방홍1호’, 드넓은 별하늘에 중국홍을 한점 더한 유인 우주기술을 습득한 - 2003년 ‘신주5호’, 중국 최초의 월면차 - ‘옥토끼호’, 중국이 자주 개발연구한 - ‘중국 우주 정거장’까지. 우리나라 우주 영웅의 부단한 노력아래, 나는 우리 나라 우주 사업은 반드시 발전하여 더욱더 좋아 질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나는 크게 외치고 싶다. 우주 꿈을 키우고 있는 나, 미래에 그 꿈을 이룰 사람은 나야, 나!

청나라말기 정부의 부패로 외국침략자들은 국경을 넘어서 마구 짓밟았다. 원명원도 그 피해로 사흘이나 불탔다. 그리하여 량계초는 이렇게 외쳤다. ‘소년이 강해야 나라가 강해진다. 소년이 지혜로우면 나라가 지혜로워진다. 소년이 진보해야 나라가 진보한다’ 세월은 잊지 않고 력사는 잊지 않으며 인민은 더더욱 잊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신시대 훌륭한 소년이고 조국의 꽃봉오리이며 조국의 미래이다. 우리는 마땅히 좋은 시간을 저버리지 않고 조국을 위해 공헌하며 조국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는 다시 한번 크게 외친다. 조국의 희망은 나야, 나!

/지도교원 김길봉

동상-나와 조선어공부

목단강시조선족소학교 6학년 1반 함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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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두분의 조선족 교원 사이에서 태여났습니다. 부모님께서 사업이 바쁘시다보니 어릴 때부터 많은 시간을 할머니와 함께 보내게 되였습니다.

할머니는 녀자애는 조선족 학교에 다녀야 한다면서 소학교 입학전에 나에게 조선어 공부를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나는 조선어공부와 인연을 맺게 되였습니다.

처음 조선어공부를 시작했을 때 할머니는 재미나는 동요부터 배워주셨습니다.

“앞다리가 쑥~ 뒤다리가 쑥~”

“머리 어깨 무릎 발”...

지금도 할머니의 개구리동작을 보며 깔깔대던 그 웃음 소리가 귀에 쟁쟁하고 내가 어깨 무릎을 엉터리로 가리켜 할머니께서 쯧쯧 혀를 차며 웃으시던 모습이 눈에 삼삼합니다.

그 뒤로 할머니께서는 조선전래동화, 창작동화, 세계명작 등 재미나는 이야기를 많이 읽어주셨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더 읽어달라고 조르면 할머니는 글을 배워서 나절로 읽어야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다며 “곰 세마리”노래 한곡으로 자모음과 받침소리를 아주 쉽게 재미있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게 나는 조선어공부에 흥취를 갖게 되였습니다.

‘노력과 성과는 정비례 된다’는 말처럼 조선어공부는 나에게 적지 않은 영예와 성취감을 안겨주었습니다.

나의 조선어 성적은 학년에서 시종 앞자리를 차지했고 어떤 친구들처럼 “할머니를 데리고, 아빠 밥 먹어요. 조선족 숙제...” 이런 황당한 말 실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글짓기콩클에도 여러차례 참가하여 우수한 성적을 따냈으며 내가 쓴 글도 여러번 잡지에 발표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학기부터 조선어 수업시간이 한주일에 2교시로 줄어들었습니다. 시험도 아주 간편하게 보았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좋아했습니다. 나도 례외가 아니였습니다. 당연히 조선어공부를 소홀히 했습니다.

이것을 눈치 채신 할머니는 습관적으로 혼자 조용히 쓰시던 일기를 일부러 내앞에서 보란듯이 내놓으며 돋보기너머로 나를 건너다보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러다가 너도 언젠가는 어떤 애들처럼 말 실수를 해서 동네를 웃기겠구나!” 그러시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습니다.

나는 그 긴 한숨속에 담긴 뜻을 다는 아니여도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눈앞에 계시는 할머니는 프랑스어로 마지막 수업을 한 아멜 선생님처럼 보였고 나 자신은 열심히 강의를 들었던 프랑쯔처럼 느껴지면서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조선어공부와 손을 잡았습니다.

지금 나와 조선어공부는 손을 놓을 래야 놓을 수도 없고 또 놓아서도 안되는 “혈육의 정”과 같은 끈끈한 사이가 되였습니다.

조선언어문자로 된 도서도 읽고 재미나는 일화는 할머니께 읽어드리기도 하며 이렇게 가끔 작문공모에도 참가하였습니다.

올해는 조선언어문자의 말을 꼭 기억해 두었다가 양로원이나 독거로인들을 찾아뵙고 조선어로 이야기를 읽어드리는 봉사활동도 할 예정입니다.

/지도교원:최연매

우수상-만남과 바램

녕안시조선족소학교 5-1반 최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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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행복한 날이다. 작문시합에서 동상을 받아 조선어문선생님과 엄마와 함께 연길에 상을 타러가기 때문이다. 차창밖으로 바라보는 가을풍경은 그렇듯 아름다웠다. 울긋불긋 단풍든 산과 들이며 풍년든 벌판에서 벼수확을 하는 농민들, 노랗게 여문 마른 옥수수 따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글수확을 떠나는 내 마음도 기쁨과 흥분이어우러져 가는 길이 얼마나 즐거운지 몰랐다.

시상식장은 전국 각지에서 상을 타러 온 중소학생들로 들끓는 분위기였다. 나도 그중의 한명이였다. 우리는 책임자의 안내에 따라 조선어문선생님은 지도교원수상자명단이 적혀있는 이름표란에, 나는 동상수상자명단이 적혀있는 이름표란에 각기 서명을 하고 우리 이름이 적혀있는 자리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순간 1학년부터 지금까지 조선어 읽기, 쓰기, 말하기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우리들로 하여금 알차게 배울 수 있도록 온갖 심혈을 기울여주신 조선어문선생님이 오늘따라 더욱더 우러러 보였다. 인터넷수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힘든 코로나시기에도 선생님은 1대1 지도를 하시다싶이 하면서 우리들이 정확한 발음과 철자관을 넘길 수 있도록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영상통화, 메시지 등 여러가지 수단을 통해 가르쳐주신 덕분에 우리반 친구들의 조선어문 발음은 전 학교에서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한족친구들도 발음이 아주 정확하다. 랑독을 하면 조선족 못지 않게 발음이 정확하고 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해낸다. 선생님의 끈질긴 가르침이 없었더라면 내가 과연 전국을 상대로 펼치는 "룡하컵"이야기경연에서 금상을 받을 수 있었을가? 여기저기에서 조선어 발음이 정확하다고, 감정기복도 잘 소화낼뿐만아니라 표정관리도 참 잘해낸다며 혀를 내두르며 아낌없는 칭찬을 받을 수 있었을가? 오늘은 또 제1회 "나와 조선어" 작문공모 시상식 무대에 서게 되고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오르며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드디여 시상식이 시작되였다. 동상수상자--최윤하. 낯선 지역에서 귀에 익숙한 내 이름 석자를 듣는 순간 가슴이 떨리고 다리가 떨렸다. 비록 동상이지만 나에게는 대상과 같은 영예였다. 난 흥분된 심정을 안고 무대위로 올라갔다.

찰칵! 찰칵! 엄마는 제일 뒤좌석에서 수상한 나를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엄마가 활짝 웃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나는 먼저 시상을 끝내고 자리에 돌아와 지도교원상을 받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선생님곁으로 다가갔다. "선생님, 고마워요. 선생님 덕분에 이렇게 상을 타게 되였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시며 "윤하야, 오늘 이 상은 선생님 혼자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란다. 물론 선생님 노력도 조금있기는 하지만 부모님의 지지, 너 자신의 꾸준한 노력과도 갈라놓을 수 없는 거란다.돈을 벌어보내주시는 아빠, 휴식일이면 학원에 널 데려가고 데려오는 엄마가 없었다면. 그리고 배움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너이기에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꽁꽁 배긴 석류씨처럼 똘똘 뭉쳐있기에 이런 성적을 따낼수 있는게 아니겠니?" 그랬다. 늘 우리 가정을 위해 묵묵히 일하시는 아빠, 교원사업을 하시는 엄마는 주말에도 나의 뒤바라지를 해주시느라 휴식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리움을 영상통화로 달래며 오직 나를 위하는 아빠의 신근한 노력과 지지가 없었다면? 아빠가 번 돈을 흥청망청 쓰면서 술마시고 도박만 노는 엄마였다면?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나서 돌이켜보니 엄마 아빠의 사랑을 먹으며 커가는 내가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빠 엄마의 사랑이 없었더라면 과연 오늘날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을가?노래시합에서 금상을, 피아노시합에서 특등상도 거머쥘 수 있었을가? 이미 받았던 영예들이 엄마의 얼굴로 일에 지친 아빠의 모습으로 다가온다.또 가끔은 학원에 가기 싫다며 투정을 부리던 내 모습도 떠올라 고개가 숙여진다. "최윤하! 정신 차리고 더 열심히 잘하자!" 엄마, 아빠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더 많은 노력을 가하자." 비록 퍼즐처럼 딱 맞춰진 틀에서 살고 있진 않지만 더 멋진 퍼즐을 만들기 위해 서로 배려하면서 살아가는 우리 가족에 즐거움을 선사하는데는 내 몫이 크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시종 웃음을 머금고 계시는 선생님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조선어문선생님과의 만남, 훌륭한 부모님과의 만남이 나에게 있어 오늘 받은 상보다 더 큰 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한 우리말 우리글을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는 나를 있게 해준 것이다. 아름다운 만남들과의 소중한 인연. 그 인연들속에서 배려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 늘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였어...

조선어문선생님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귀전에 들려오는듯하다...

/지도교원 김영희

우수상-행복

할빈시동력조선족소학교 5학년 5반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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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그것은 마치 따뜻한 물줄기처럼 우리의 마음 속에 소리없이 밀려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할머니의 손끝에서 자랐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언제나 나를 지켜주시고 나의 뒤심이 되여주시지만 나의 자립성에 대하여선 엄격하십니다. 할머니께서는 늘 앞으로 사회에 발을 붙이려면 무엇보다 자립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절로 척척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와 함께 음식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음식을 시작하기 전에 할머니와 나는 시장에 가서 신선한 야채, 고기, 해산물을 사고 밀가루와 닭알도 샀습니다. 집에 돌아온 우리는 모든 식재료를 하나하나 다듬고 씻었습니다. 나는 할머니가 가르치는 대로 야채도 썰고 밀가루 반죽도 하였습니다. 나는 평시에 할머니와 채소 다듬는 일은 해보았으나 오늘처럼 썰고 반죽하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야채를 썰자니 크기가 고르지 않았고 반죽을 하자니 자꾸 그릇에서 튀여나왔습니다. 특히 반죽을 하다가 땀을 닦느라고 얼굴에 밀가루를 하얗게 묻히기도 했습니다. 할머니는 알락알락해진 나의 얼굴을 보고 환하게 웃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나에게 불을 조절하는 방법도 알려주었습니다. 우리는 맛나는 떡도 하고 토마토 소스도 끓이고 고소한 볶음밥도 만들었습니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한 음식을 맛보며 행복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어느 음식점에서 한 음식보다 맛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정성껏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와 함께 료리를 했던 이 경험은 나에게 행복의 참뜻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행복은 얼마나 많은 돈과 물질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삶의 작은 부분을 나누고 아름다운 순간 하나하나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지도교원: 손혜란

우수상-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상시조선족실험소학교 5학년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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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영양을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며 맛나는 반찬을 내 밥그릇에 얹어놓을 때나 선생님이 공부에 열중하지 않는 나를 엄숙히 타이를 때 나는 어떤 생각을 가졌든가? 그리고 길가의 꽃들이 나를 보고 미소 지을 때, 시원한 바람이 땀투성이인 나의 몸을 식혀줄 때, 빠알간 딸기가 나의 입안에서 사르르 녹을 때, 하얀 눈송이가 나의 어깨에 내려앉을 때 나는 무엇을 생각했던가?

부끄럽긴 하지만 며칠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모든 것이 응당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무조건 부모는 자식을 사랑해야 하고 선생님은 학생의 성장에 관심을 돌려야 하며 자연은 인류를 위해 복무해야 한다고 굳게 믿어왔다. 그러나 이것이 곧 사랑이고 관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이였다.

무더운 여름날, 할머니와 함께 거리에 나갔다가 너무 더워 그늘을 찾아 나무아래에서 땀을 들이는데 할머니가 나무를 어루만지면서 말씀하시는 것이였다.

“나무야, 네가 그늘을 만들어주어 참으로 고맙구나.”

“할머니두 참, 듣지 못하는 나무와 다 대화를 나누시네.”

내가 옆에서 불쑥 한마디 하자 할머니가 웃으시면서 말씀을 이으셨다.

“그런게 아니란다. 사람은 항상 주위의 고마운것들에 감사를 드릴줄 알아야 한단다.”

그날 나는 할머니의 말씀을 곰곰히 생각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때까지 맛있는 음식은 집의 공주인 내가 먼저 먹어야 하는게 응당한 일인가 했고 선생님은 무조건 가정의 일을 제쳐놓고 우리를 돌봐야 하는가 했으며 길가의 나무, 풀들은 무조건 인류의 생존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줄로 만 알았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가슴속에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 있어야 다른 사람의 고충을 리해할 수 있고 남을 위해 사랑을 베풀 수 있고 또 남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는 도리를 깨달았다.

매일마다 자식의 성장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밥 짓는 어머니,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 늦게 퇴근하면서 우리들에게 지식을 전수해주시는 선생님, 이제야 그들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내가 이만큼 성장했음을 알아차렸다. 하여 나는 지금부터라도 나의 학습과 생황에 도움을 준 모든 사람들한테 항상 머리 굽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다. 그러면서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생각해주고 도와주는 착한 마음도 지니겠다.

자연이든 사람이든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 때 우리의 마음속에는 사랑과 우정의 꽃이 필 것이고 세상은 더욱 아름다와질 것이다.

/지도교원: 김미화  

우수상-혜자와 나

치치할시조선족학교 6학년 김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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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자야, 난 네 핸드폰인데 오늘도 하루종일 선생님 서랍에 갇혀있었어. 답답해 죽겠네. 난 너 친구가 아니니? 나를 좀 동반해주면 안되니? 집에 갈때야 너한테 다가갈수 있어서 내가 속이 탄다. 집에 가서도 넌 나와 한참을 놀아주고 있지. 그러다가 숙제 생각이 나면 나를 두고 숙제를 하지. 그런데 내가 보기엔 너도 나와 놀고 싶어 대수 해치우는 같아. 나도 옆에서 카톡! 카톡! 하며 방해를 하거든.

숙제가 끝나면 난 너와 게임을 할 수 있지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고 나를 휘두르고 할때면 내가 제일 행복한 시간이거든. 아무튼 난 네 없이는 못 살것 같아. 그런데 학교의 서랍안에서 너희 선생님의 잔소를 내가 들었어.

“성운이, 혜자, 집에 가서 핸드폰부터 들지 말고 숙제부터 하고 책을 좀 봐요. 쉬는 날에도 청소년모드로 해놓고 긴 시간 게임을 하지 말아요. 연구에 의하면 핸드폰을 오래 들고 있으면 뇌신경이 손상을 받아 회복할 수 없거나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했어요. 그러니......”

아휴! 잔소리가 길기도 길더라. 내가 짜증나. 너희들은 그래도 순순히 대답은 잘하더라. 그런데 집에 와서 선생님 부탁을 잊어버린건지 나부터 손에 들고 쓰다듬었잖아. 참 고소한 보복이였어.

저녁엔 내 쪽으로 네 언니가 소식을 보냈더라. 네보고 조금만 참고 공부하라고 입국수속을 하고 있으니 기다리라고, 아버지를 잘 돌보라고 부탁도 했지. 봐, 내가 얼마나 중요한데. 내가 없으면 언니와도 련락할 수 없지. 난 너의 딱친구이자 소식통이고 주인거야.

하지만 요 며칠은 넌 내가 싫어졌는지 나를 내버려두고 혼자 일을 하는 시간이 길어졌어. 수학공부 시간도 길어졌고 책도 손에 쥐고 읽고 있더라. 그리고 무슨 그림을 그리 열심히 그리고 있는지. 그린 그림을 보니 제법 그럴듯 해. 너희 선생님은 네가 화가가 될수 있다고 하시던데 내가 보기에도 일반 그림 정도는 아니였어. 볼만 했어. 나를 들고 있을 때는 눈에 정기가 없는데 수학공부를 할때는 진지한 모습이였고 그림그릴때는 눈에서 빛이 났어. 그런 너를 보니 내가 멀어지는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좀 너와 멀어지기로 했어.

그래, 너를 놓아줄게 열심히 해봐. 혜자야!

지도교원: 리연춘

우수상-여름안에서

흑룡강성해림시조선족실험소학교 6학년 리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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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노래를 흥얼거린다.

“하늘은 우릴 향해 열려있어. 그리고 내곁에는 너희들이 있어...”

와, 여름이다! 아니 여름방학이다!

방학동안 나와 찐친들은 숙제를 잽싸게 끝내고 우리 집에서 모여 놀기로 약속하였다. 매일매일 머리를 맞대고 호호호 보내는 것이 참 질리지도 않고 재미있었다. 삼륙구게임 끝말잇기 보물찾기 등등 다양한 놀이들이 시간 가는줄 모르고 우리를 불렀다. 매번 어머니들 할머니들이 전화로 너무 늦었다, 빨리 집으로 와라, 래일 또 놀거라... 재촉해야만이 아쉬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어느 하루,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같은 시간에 생글생글 웃음이 매력인 해진이와 목소리가 우렁찬 다희, 그리고 예쁘고 큰 눈이 매력인 민서랑 만났다.

“얘들아 오늘은 날씨도 좋으니 밖에서 노는 놀이를 하는게 어때?”

다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좋아. 우리 오랜만에 술래놀이 하자. ”

내가 제의를 하자 친구들이 모두 재미있겠다고 신나하였다.

맨 먼저 해진이가 술래였다. 나는 아파트단지내에 있는 큰 버스뒤에 숨었다. 해진이가 찾으러 오면 버스를 빙빙 돌면서 잡히지 않을 계획이였다. 해진이가 찾기 시작하였다. 긴장하여 숨을 참고 있는데 해진이가 버스밑으로 나의 신발을 보았다.

“서빈이 찾았다. 호호호. ”

“아이쿠! 이걸 생각 못했구나. 힝! ”

판단 착오로 내가 술래가 되였다. 이렇게 재미나게 잘 놀고 있었다. 이번엔 다희가 술래였다. 나는 발각되지 않으려고 명당자리를 향해 뛰였다. 아뿔싸! 민서도 뒤따라 오고 있었다.

“안돼. 내가 먼저 차지할거야. ”

뒤를 돌아보니 민서가 거의 쫓아 오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힘껏 뛰려는 찰나 눈앞에 노란 별이 반짝하더니 눈에 강력한 통증을 느꼈다. 나무가지가 나의 눈을 찔렀다. 피가 살짝 나고 눈물이 주르륵 끊임없이 흘렀다.

“서빈아 괜찮아? ”

민서가 피나는 나의 눈을 보더니 자신의 잘못이라도 되는듯 왕방울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괜찮아 ,민서야. 일단 엄마랑 병원에 가봐야겠어. ”

병원에서는 다행히 눈동자를 빗겨지나서 눈꺼풀이 벗겨졌다며 파상풍치료와 염증방지치료로 며칠간 주사를 권하고 눈이 피곤하지 않게 많이 쉬라고 하였다. 집으로 오니 엄마가 숙제와 독서는 눈이 나을 때까지 하지 말라고 하셨다.

‘오~ 그다지 심각하게 아픈거 아닌데.. 아싸 푹 쉬자.’

이튿날 민서할머니께서 찾아오셨다. 두 손 가득 토종계란과 우유를 들고 오셨다.

“서빈 엄마, 서빈이 눈 괜찮은가요? 민서한테서 들었어요. 빨리 나아야겠는데요. 미안해요. ”

“아니예요. 할머니, 애들이 놀다보면 다칠 때도 있고 그런거죠. 민서야,며칠만 기다리면 같이 놀수 있을거다. ”

엄마가 선물을 간곡히 거절했지만 아플 땐 많이 먹어야 빨리 회복된다면서 기어코 놓고 가셨다. 좀 있으니 해진이와 다희도 왔다. 이번엔 내가 좋아하는 사과랑 과자를 들고왔다. 우리는 맛있는걸 실컷 먹으면서 또 신나게 놀았다.

저녁이 되여 친구들이 다 돌아갔다.

“엄마, 아프니깐 좋은점도 있네요. 관심도 받고 맛있는것도 실컷 먹고 공부도 쉴 수 있어서요. ”

“아이구, 이 철부지야. 언제 철 들겠니? 널 위하는 친구들이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 엄마는 너희들 사이가 참 부럽구나.”

개학이 되였다. 학교근처에 사는 해진이는 굳이 더 걸어서 다희네 집으로 와서 넷이 모여 다시 학교로 간다.

“해진아, 우리가 십분이라도 더 빨리 보고 싶니? 호호호”

“그래그래. 심심하단 말이야. ”

“우리도 그래. 보고 있어도 보고 싶어. ”

“하늘은 우릴 향해 열려 있어. 그리고 내곁에는 너희들이 있어. 환한 미소와 함께 서있는~ 그래 우리는 푸른 바다야... ”

흥얼거리는 사이 벌써 학교에 도착했다.

“얘들아 우리 영원하자. 우리 사이 영원히...”

매일매일이 즐거운 하루가 되였다.

/지도교원: 김봉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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