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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시대 | 담대한 도전으로 창업의 고봉에 올라

천진시기달(琪达)자동차부품유한회사 박병민 동사장

2023-05-15 13:53:09

박병민(朴炳民), 남, 1971년 3월 생. 길림성 도문시 장안진 출신이며 1993년 길림공정사범학원 전자공정학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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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민 사장

박병민씨는 대학 졸업 후 도문의 한 국영기업인 곡수(曲水)정유공장에 배치돼 판매과 업무원으로 일했다. 대학을 갓 나온 그는 국유기업에 출근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고 부지런하고 착실하게 맡은 일을 해나갔다. 

그러나 출근한지 약 1년 이후에는 기업의 일에 대한 노력이 부족하고 지루함을 느끼면서 늘 하는 일이 없이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고 신문을 보며 시간을 보내군 했다. '젊은 대학생인 내가 이렇게 허송세월만 보내야 하는 걸가'라고 고민하고 있을 때 우연히 기회 하나가 찾아왔다. 

마침 연변텔레비전방송에서 일부 한국기업들이 천진에서 조선족 직원을 채용한다는 인재 모집 공고를 보았던 것이다. 그는 대도시로 가서 자신을 단련하고 자주적으로 창업을 하기로 계획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집안 식구들에게 알렸는데 일부는 그를 위해 걱정하기도 했다. 

천진은 고향에서 천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게다가 가족도 친구도 없는 상황에 어떤 때는 일부 위험도 무릅써야 했다.

박병민씨는 가족에 대한 끈질긴 설득으로1994년 봄 국영기업의 '철밥 그릇'을 그만두기로 작심하고 부모님이 주신 돈 200원으로 천진행 렬차에 올라 길고 긴 창업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낯선 대도시에 처음 왔는데다 고향을 등진 고독감과 부모,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늘 마음이 괴로운 나날을 보내군 했다. 하지만 미래의 희망에 대한 아름다운 동경은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는 튼튼한 버팀목이 되였다.

박병민씨는 천진삼성전기기계, 천진LG화학 등 대형 한국기업에 취업해 10여년간 일했다. 특히 1996년 천진LG화학에 입사한 뒤 처음에는 컴퓨터 부문에서 공장의 자동화 시스템 관리를 맡았다.

현대화 된 외자 대형기업에서 일하면서 박병민씨는 배워야 할 과학기술지식이 많을 걸 느꼈고 업무에 몰두하면서 반년도 안돼는 사이에 업무상 능수로 되였다.

현대기업관리의 경험을 배우고 쌓기 위해 그는 부지런히 책을 읽었고 매일 추가 근무를 했으며 명철, 휴일에도 거의 휴식하지 않았다. 2년간 노력한 결과 그의 업무기능은 날로 정밀해졌고 관리수준은 갈수록 강해졌으며 회사에 대한 공헌도 더욱 커졌다.

그는 사업상 업적이 뛰어나 회사 리사회로부터 종합관리부문 총책임자로 임명됐고 기업의 인사, 총무와 자동화관리 등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외자기업의 고위층 관리로 승급했다. 

이 기간 그는 또한 LG화학 중국 총본부의 핵심 육성 대상자로 선정, 선후로 3차례나 한국에 연수를 다녀왔으며, 련속 몇 년간 LG 중국 총본부로부터 우수직원으로 평의됐다.

위험 무릅쓰고 대담히 창업

기회는 항상 준비된 자에게 돌아간다. 10여 년간 한국 기업에서 일해 온 박병민씨는 한 편으로 선진기술과 경영 경험을 배우고 쌓으면서도 자기절로 회사를 차리고 사장이 돼 자주적으로 창업하는 길을 걷겠다는 초심을 잊지 않았다.

그는 천진LG화학에서 인사관리를 하는 동안 직원 모집에 항상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는 다른 외자기업의 인력자원 상황을 주의 깊게 조사해 보았는데 모두 구인난과 관리난이 있었으며 직원 모집에서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기가 더 힘들었다.

이때 외자기업의 채용·관리·사고를 책임지고 해결하고 원스톱 서비스를 전담하는 회사가 있다면 꼭 외자기업의 환영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천진LG화학에서 쌓은 인력자원관리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적으로 외자기업의 로무서비스를 담당하는 회사를 세우면 장래가 유망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로무인원관리에는 많은 난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만일 외자기업의 소재지·로동력 원적지 정부의 로동관리부문, 사회보장부문, 공안부문 및 외자기업과 왕래하자면 혼자 힘으로 가능할가? 그는 한동안의 고민과 시장조사 끝에 전문 외자기업을 위해 로무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했다.

'한다고 작심했으면 해야지' 박병민씨는 2005년 초에 과단성 있게 사작하고 자기 첫 회사인 천진시새달(赛达)로동서비스유한회사를 설립, 로동력을 전문 모집해 한국기업에 파견,취직시켰다. 

이 회사는 천진시 무청(武淸)구의 첫 민영로무파견회사로 선후로 무청구의 10여개 한국기업을 위해 봉사했다. 

회사는 박병민씨의 량질의 서비스와 엄격한 관리로 많은 한국기업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또한 그는 서비스 범위를 점차 천진시 전체로 확대하고 천진지역 외자기업의 로동력 사용 수요를 만족시키는 기초 우에 선후로 남경, 북경지역에 달새(达赛)인력자원관리유한회사를 설립하여 강소성과 북경지역 외자기업에 충분한 로동력 자원을 제공하여 외자기업들의 호평을 받았다.

국내 국영대형기업들이 점차 고용제도를 개혁하면서 정식편제 안의 직원제도를 로무파견회사와 협력하는 방향으로 개혁하고 로무회사의 로동력을 고용했다. 

박병민씨는 로동력시장 변혁 정보를 제때에 포착해 대형 국유기업의 로동력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는 지금까지 천진회사와 상해보강(宝钢)과 련계를 취해 천진에 있는 공장 2곳과 협력하고 그들에게 수천 명의 기술자와 일반 로동력을 파견, 로무 파견업무를 한층 업그레이드했다.

박병민씨의 인력자원회사는 직원이 가장 많을 때 1만2500여 명, 현재 파견인력만 8600여 명으로 국내 로동력 취업과 외자기업 고용에 크게 기여했다.

2008년 박병민씨 회사는 천진시로동및사회보장국으로부터 4A급 성실 로무파견기업으로 선정됐고 현재 그의 새달로동서비스유한회사는 무청구 나아가 천진시에서도 최대 규모의 민영인력자원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재창업으로 한층 높은 목표 향해 매진

박병민씨는 로동서비스 업무에 결코 만족하지 않고 한층 높은 차원의 사업을 향해 매진하기로 했다. 그는 대기업에서 쌓은 경영·관리 경험과 간고한 창업 시절에 축적한 실천경험을 바탕으로 2차 창업의 목표를 제조업으로 돌렸다.

로무를 파견하는 한국기업에는 자동차 부품회사가 많았기에 그는 자동차 부품 제조업에 진출하려 결심한 것이다. 

처음에 공장을 짓을 때 장소가 없어 장소를 임대했고 기술이 없어 스스로 제조업기술을 배웠으며 기술력이 있는 공정사, 기사, 숙련 로동자를 초빙해 같이 기술 난관을 극복해 나갔고 기성설비가 없으면 먼저 몇대를 구입해 소규모로부터 어렵게 창업해 나갔다. 하지만 막상 상품을 내놓으니 판로가 좋긴 했지만 규모가 작고 제조원가가 높아 수익을 얻기 어렵고 주문서를 받는데도 매우 힘들었다. ‘시작한 일은 끝을 보라’. 그는 자체로 땅을 사고, 공장을 짓고, 생산 능력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2011년 5월 천진시 무청구에 자동차부품산업단지에 2만평방미터에 가까운 땅을 사들여 자체로 1만여평방미터의 공장건물을 짓고 등록자금 인민페 4000만원을 들여 천진시기달(琪达)자동차부품유한회사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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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거액을 들여 선진적인 자동화 생산라인 수십개를 사들여 프레스, 용접, 도장을 일체화한 자동차 부품 전문 생산 기업을 차렸다.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새 생산공장을 건설한 뒤 박병민씨는 제품의 고품질을 간판으로 거래처를 끊임없이 늘려왔다. 기업 설립 초기만 해도 회사가 생산한 자동차부품은 8가지 뿐이고 거래처는 한, 두개에 자동차기업에 불과했다.

그러나 각고분투 끝에 한국의 현대, 기아, 일본의 도요타, 독일의 폭스바겐, 북경의 벤츠 등 유명 자동차생산업체에까지 거래처를 늘렸고 차체, 섀시, 엔진, 좌석 등 400여개에 가까운 각가지 자동차 제품을 제공해 자동차부품생산 규모가 비교적 큰 중형기업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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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민(오른쪽)씨가 한국 기술자들과 연구 토론 중이다. 

그는 생산규모를 확대하고 생산원가를 낮춘 기초우에서 과학 혁신, 생산공예 개진, 엄격한 기술관리, 품질 향상에 힘썼다. 이 가운데서 그는 어떤 공예품들은 인력가공에 의존하면 고급첨단기술 수준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1100만원을 투입해 로봇 생산라인 3개를 건설해 인위적인 조작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그 결과 제품의 기술표준을 높였을 뿐더러 가공원가를 절감하는 동시에 제품의 품질도 크게 향상됐다. 

일부 생산과정중 고도의 자동화 실시에 재미를 얻은 박병민씨는 생산과정을 한층 개선하고 생산설비를 업데이트하며 대톤급(大吨位) 부품의 제조능력 향상 등을 통해 동일업계중 경쟁력을 일층 강화했다.

이와 동시에 인공지능 첨단기술을 도입해 작업현장의 생산라인을 모두 자동화를 실현함으로써 기업은 무인 기업으로 변신해 첨단기술기업의 목표를 실현하는 데 큰 걸음을 내디뎠다. 

박병민씨는 “기업의 생산성이 부단히 고봉에 오르려면 선진적 생산설비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세계 선진기업을 본받아 기업의 생산리념, 관리모델, 직원자질 등 소프트웨어 건설 분야에서 글로벌 선진기업과 접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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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부터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천진회사 협력가운데서 박병민씨는 도요타자동차의 경영리념, 생산관리, 제품품질, 기업 신뢰도, 직원자질 등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자체 기업의 소프트웨어 구축을 도요타자동차의 선진관리에 접목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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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박병민씨는 도요타자동차회사를 방문해 겸손하게 가르침을 청했고 일본 도요타 천진회사의 관리층도 기달회사에 대해 높이 평가를 주었으며 그런데다 박병민씨의 성실한 태도에 설복돼 도요타의 세계 가장 선진적이고 가장 과학적인 제조업체인 '도요타 TPS 관리 모델'을 기달회사에 접목시키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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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장(왼쪽)이 공장장과 함께 

그 후 도요타회사의 전문가들은 기달회사를 찾아 약 1년 동안 현장 학습과 훈련을 진행해 기업의 생산관리 모델을 크게 향상시켰으며 기달회사는 기업관리, 제품품질, 원가절감, 직원자질 등 방면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었다. 뿐더러 기달회사는 천진시 민영기업 중 유일하게 도요타 TPS 관리 모델 시점으로, 정착기업으로 되였다.

박병민씨의 현대화, 과학화, 정규화된 기업관리는 기업의 경제효률을 끊임없이 끌어올려 매년 매출액이 억원 이상이였다. 

동시에 그의 기업은 각 품질, 안전, 기술, 환경보호 관리 부문으로부터 높은 인정을 받았으며 TSI16949와 ISO9000의 국가인증을 획득했고 북경현대자동차의 용접SQ 등 인증을 획득했다. 

2017년 회사는 천진시 과학기술형기업으로 선정됐고 천진시자동차산업단지의 표창과 장려를 받았다.

고도의 사회책임 사심 없는 사회공헌

박병민씨는 자신의 사업이 성공을 거듭할 때 기업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그는 “기업의 발전과 개인의 성장은 사회의 지지를 떠날 수 없다. 기업이 발전했으니 사회에 공헌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며 사회적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늘 말하군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을 뿐더러 자신의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의 회사가 있는 곳 - 천진시 무청구의 조선족로인회에는 조선족 로인 30여 명이 있다. 이들은 매일 노래를 배우고 민족무용을 추고 각종 체육활동을 펼치며 풍부하고 다채로운 로년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로인들은 해마다 행사장을 빌려야 하는 등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경비래원이 없어 그냥 회비로 각종 활동을 유지해 나가야 했다.

어느 한 명절에 조선족의 효도를 중시하는 박병민씨는로인협회 전체 회원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로인들이 한창 술잔을 나누고 즐기고 있었지만 일부 개별적인 로인들은 회비 납부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박병민씨는 "절대다수의 로인들이 모두 동북 농촌에서 대도시로 진출해 퇴직금도 없고 고정수입도 없는 상황이다. 평상시 자식들이 주는 용돈으로 소비를 하는데 언제 집까지 마련할 수 있겠는가”고 생각했다. 박병민씨는 로인들을 위해 행사장 임대료 문제를 해결하기로 은근히 다짐했다.

그는 1년 임대료가 약 1만 5000원이 든다는 사실을 알고 올 상반기 무청구 조선족친목회 행사에서 "앞으로 해마다 로인협회 활동실 임대료는 제가 책임지겠다"고 하며 그 자리에서 현금 한 뭉치를 꺼내 로인협회 회장에게 넘겨주었다. 이때부터 로인협회는 회비를 걷는 일이 없었고 로인들의 경비 부담은 해결됐다.

박병민씨의 회사에는 운남, 내몽골 등 외딴 소수민족 지역의 직원도 있었다. 이들의 가정생활은 특히 어려웠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명절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박병민씨는 기업인으로서 직원의 생활뿐 아니라 직원 가족들의 생활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생활이 가난한 가정에 편법으로 생활보조금을 지급하기 위해 해마다 효도상(孝道奖) 선정 명목으로 해마다 빈곤가정 평균 20가구에 가구별 보조금 1500원씩 발급하는 자선활동을 수년째 해오고 있다.박병민씨가 해온 여러가지 선행은 너무 많아서 다 헤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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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는 천진시가 신강 빈곤지역의 빈곤퇴치를 책임진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자발적으로 5만원을 기부했다. 올해 상반기에 그는 천진시에서 조선족예술단을 설립하련다는 소식을 듣고 자발적으로 예술단에 현금 1만원을, 고급 전자기타 2개도 기부했다. 

올해 무청구 조선족대련환활동 개최에 1만원을, 천진시조선족단오축제운동회 개최에 5000원을, 올해 무청구 조선족주말학교 봄철 수료식 거행에 2000원을...

박병민씨는 기업경영 실적이 뛰어나 천진시 경제건설에, 사회공익 자선 사업에 많은 기여를 하면서 여러차례 각종 영예를 받았고 또한 일부 중요한 사회단체의 지도자 직책을 맡기도 했다. 

그는 여러 번 천진시와 전국조선족우수기업인으로 꼽혔고 2017년 회사는 천진시과학기술형 기업으로 선정돼 천진시자동차산업단지로부터 표창과 장려를 받았다.  

박명민씨는 올해 천진시조선족친목회 부회장, 천진시 길림성상회 부회장, 천진시조선족기업가협회 상무부회장 등으로 선출돼 천진시의 경제건설과 사회건설에 계속 기여하고 있다. 

/리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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